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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일기 쓰는 게 참 쉽지 않구먼.

앉으면 다짜고짜 글자들이 튀어나와야 하건만, 이즘은 아예 컴 켜기도 듬성듬성이다. 

써야지, 써야지 하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 때마다, 힐끔힐끔 노트북을 쳐다보면서도 손과 몸은 계속 딴짓거리를 하고 있다. 

일기를 쓰는 것도 그렇고 소설을 쓰는 것도 그렇고 책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나에게 제일 중요했던 일들을 뒤로 미룬 채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고 무말랭이 감말랭이 같은 것들을 만지작거리면서 글을 쓰지 않으니 참 머릿속이 편하다는 생각을.... 음.... 하고 있었다. 그래도 되는 나이라고... 음....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치 뭔가 잔뜩 해 놓은 것처럼. 

책상 아래 펼쳐둔 무채를 바라보면서 이 글을 쓴다. 소설로부터 달아나려는 마음을 붙들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나는 아직 멀었어. 갈 길이 멀어. 조금 더 가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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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큰언니한테서 전화 왔다. 지난 달에 엄마 봉안당에 가기로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모님 모시고 응급실에 다녀오느라 파토를 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 제삿날도 기억이 안난다. 다음 주에 시모님 생신이 있고, 뭐가 있고 뭐가 있는데 다 기억하면서, 주말엔 전복죽 끓여서 요양병원 면회도 다녀왔으면서. 엄마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없다. 내 세대는 그렇게 살았다. 도요 살 때 엄마가 요양병원에 가셨는데 나는 자주 들르지 못했다. 시모님이 집에 와 있었고, 몇 달 뒤 요양병원으로 가시는 등의 여러 일들을 치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변명을 하는데, 그 모든 변명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해서 그만두기로 한다.) 이러구러 세월은 지나고 엄마는 가셨다. 엄마가 가셨을 때의 안도감이라니. 내가 서울에서 부산에 와 막 기장읍에 내렸을 때(그날 따라 부산역에서 버스를 탔다), 큰언니에게서 전화가 왔고, 아무래도 엄마의 마지막이 온 것 같다고 했었다. 소설처럼 그렇게 엄마는 내게 마지막의 기회를 주셨는데, 제삿날도 기억이 안 나다니. 큰언니 말로는 아버지 제사와 합해서 지낸다고 했다. 엄마가 없어지자 덩달아 친정도 없어져서 제사를 맡은 동생한테 전화 한 번도 안했으니 무슨 말을 보태랴. 시모님 돌아가시면 우리도 그렇게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전화기의 스피커를 켜놓고 스트레칭을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큰언니와 오래 수다를 떨었다. 동네 친구 만나러 갔다가 리즈 시절 사진을 받았다는 얘기(내게 보내달라고 해서 받았다), 형부 귀가 안 좋아서 병원에 며칠 모시고 다녔다는 얘기, 발목은 괜찮은데 무릎이 아프지만 꾸준히 파크골프장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들을 했다. 관절에 좋다는 주사를 맞아도 그때뿐이었어. 맞아 언니. 나도 침 맞으러 다니다가 관두고 요즘 걷고 있어. 재잘재잘.  마지막에 언니가 며칠 전 벌어졌던 에피스도를 말해주었다. 나, 실종신고 당할 뻔했다. 빨래까지 해서 널어놓고 파크골프 치러 갔는데, 늘 몸에서 떼놓지 않는 전화기가 그날따라 종일 조용하더란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집에 와 씻고 자려니 누가 문을 쾅쾅 두드리잖니. 경비 아저씨가 올라왔더라. 늦은밤에 무슨 일이냐 했더니 글쎄, 종일 전화를 안 받아서 일산 사는 큰딸과 캐나다 있는 작은딸과 일본에 있는 막내딸이 난리가 났더란다. 가까이 사는 사돈이 비밀번호를 전해 받고 집에 다녀갔고, 경비 아저씨도 몇 번이나 와서 벨을 누르고 확인하러 다녔고, 급기야 제일 가까이 사는 일산의 큰딸이 비행기를 타고 내려오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낮 내내 통화가 안 되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는가. 오후 다섯 시 무렵에는 실종신고를 하자는 쪽으로 딸 셋의 의견이 모아졌다더란다. 그제서야 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비행기 모드로 되어 있더라네. ㅋㅋ.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자 전화가 수십 통 카톡이 150건이나 와 있더란다. 일단 큰딸에게 전화해서 응, 나 여깄는데 했다니, 종일 걱정이었던 딸, 아마도 울컥 했을 거다. 몸이 안 좋은 아빠  더불어서 딸 셋 대학 다 보내고 이제 좀 편히 지내는가 했는데,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쩔 뻔했냐고. 

언니는 치매 보험을 들었다고 했다. 딸들이 뭐라하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돼서. 잘 했어, 언니. 오늘 언니 치른 거 비슷한 거 나 전에 소설 쓴 적 있거든. 난리가 아니지. 어, 그래? 응. 나는 소설 얘기를 좀 더 하려다 그만두었다. <엄마는 죽지 않는다>는 엄마와 시모님, 그리고 주변 여러 상황들을 조합해서 재구성한 치매노인 실종기이자 요양간호사의 처절한 생존기이며, 마지막을 앞둔 환자의 참혹한 현실이 담겼다. 그 소설을 쓰면서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는 말을, 언니에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언니는 아마 딸들에게 번갈아가며 혼이 날 거라고 해주었다. 안 그래도 난리더라. 엄마 또 이러면 그때는 뭐 어쩐다나 저쩐다나. 이럴 때 이모랍시고 있으면서 비상연락망이 되지 못하다니, 미안한지고.우리야 둘이니까 이쪽 전화 안 되면 저쪽 전화 하면 되는데 형부가 병원에 계시니 언니는 혼자 사는 거나 마찬가진데. 좀더 자주 전화해야겠다.

품에 안고 키우던 일, 부모 품을 떠난 일 같은 게 엊그제 같건만 이제 자식들의 걱정거리가 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  우리는 둘이 있는데도 아들이 매일 전화를 한다. 지가 직장에 있어 못하면 손자가 한다. 아니 대부분의 전화는 손자가 한다. 내가 아들보다 손자를 더 좋아하니까 그렇다. 추석에 양평 리조트에서 아들 식구와 같이 보냈는데, 아들이 제 아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듣고 콧등이 시큰했다. 준아. 네가 매일 할머니 할아버지께 전화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아들은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손자가 못하면 며느리가 한다. 아들은 주말에 어쩌다 한다. 우리가 이제 자식들의 걱정거리가 된 거다. 미국 있는 딸네는 시차 때문에 서로 엇갈려서 주말마다 전화가 온다. 별일 없냐는 말을 나는 달고 사는데 저는 저대로 별일없냐고 한다.  딸네 꼬맹이들이 이제 십대가 되니 카톡으로 온갖 아양을 떨어도 생까기 일쑤다. 그래도 줄기차게 시비를 걸어 귀찮은 할머니 행세를 하게 된다. 그제는 아들네 아들이 음성 메시지로 "할머니. 사랑니는 언제 나나요?" 하고 뜬금없이 물어왔다. 어이가 없어서 "몰라" 우선 보내고 나서 "사랑하게 되면 나겠지." 했더니, 알았다고 척 경례를 붙이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이 사랑도 잠시, 꼬맹이들은 곧 자기네들 세상으로 날아가겠지.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해야지. 화이팅! 우리 꼬맹이들,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 

이렇게, 결국에 자매들의 이야기는 아이들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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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고향 동네 가서 놀았다. 바구니에 먹을 거 담고 소주 2병 담고 고속도로. bts 공연이 일광에서 열렸더라면 옴짝도 못했을 텐데 아시아드 주경기장으로 변경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길은 한산하고 하늘은 적당히 맑음. 지난 봄에 다녀간 마당은 그 사이 나뭇잎이 떨어지거나 단풍이 들었다. 주인장이 방치한 장군차를 한 보따리 따다가 만들었던 황차가 몇 달 사이 잘 익었다. 따뜻한 물에 우려 시음을 하는데, 호, 내가 만들고도 놀라운 맛. 내년에도 찻잎을 따러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리고 상차림을 거드는데, 이렇게 이쁜 팟에 안주인께서 소금을 담아둔 걸 봤다. 에고 참. 화들짝 놀라는 내게 안주인은 당장 소금을 비우고 챙겨주셨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큼지막한 작품들이 있다. 물레를 별로 안 좋아해서 생긴 게 이렇다고 안주인은 말씀하시지만, 놀라운 안목에 감탄, 또 감탄. 바구니에 조심조심 모셔 담아두고, 뒤늦게 도착한 일행과 질펀한 점심. 가을 마당에 참숯 향기 국화 향기, 가을 대숲에 바람 소리 새 소리, 가을  대기에 하하 호호 웃음소리.... 꼬냑 한 병 비우는데 몇 잔 거들고 담배도 두 개비나 먹었다. 

돌아와 팟을 잘 씻어 포랑산 궁정보이 2006을 넣고 우렸다. 큼지막해서 좋다. 나는 많이 먹는 체질이라 큰 게 좋다. 내가 작년에 만든 티팟을 꺼냈다. (아래 사진) 작품이 곧 사람이라더니, 일흔에도 소녀처럼 단아하고 고운 안주인의 성품이, 어떤 어려움도 덮지 못하는 여리고 앳된 안주인의 성정이 담긴 작품. 남들은 다 괜찮다 괜찮다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시난고난 인생살이 말 한 마디도 누르고 또 누르고 살면서, 이제나 저제나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는 속내가 그대로 보이는 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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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과 ㄴ과 ㄷ과 이러구 저러구 만나게 되었다. 

자리를 주선한 사람은 ㄱ. ㄴ은 20대부터 아는 사이지만 썩 안다고는 할 수 없고, ㄷ은 초면이었다.

20대의 ㄴ은 잘 생기고 집안도 좋으며 바람 같이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했고, ㄱ과는 종교적인 이유로 친밀한 관계. 미국에 거주 중이지만 1년에 한 번 와서 2달 정도 머물다 간다고 했다. ㄱ이 이웃이 되고, ㄴ이 마침 미국에서 와서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만나게 되었는데 서먹하고 이상했다. 남편은 조금 아는 사이, 나는 멀리서 얼핏얼핏 본 사람, 그 정도였기에 종교인이 되어 이민간 ㄴ은 독실한 종교인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ㄱ만큼 뜨아한 존재였다. 첫 만남은, 실은 첫만남은 아니지만 아무튼, 서먹하게 시간을 보내다 헤어졌는데, 두 번째 또 한국에 왔다는 전갈을 받고는 자리를 사양했다.

ㄱ은 수십 년을 아는 사이지만 그 수십 년 동안 각자의 길을 돈독히 걷느라고 각자의 세계관이 확실하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지내는데, ㄱ와 흉허물없이 친하다고는 하지만 ㄴ까지 그래야 할까 싶었다. 사람 사이라는 게 한 번 보고도 썩 좋아져버리는 때도 있지만 열 번을 보아도 마음이 안 갈 때도 있는 법이니까. 글동네 생활 수십 년 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글을 통하지 않고 사람을 사귀는 일은 무척 조심스러운지라 우선 몸부터 사리고 들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다시 ㄴ이 와서 만나기를 청하니, 저번에 슬쩍 피했는데 이번에는 어쩌나? 망설이다 마침 밥때여서 밥이나 먹고 오자 하고 둘이 나갔다. ㄱ과 ㄴ 외에 초면인 ㄷ이 있었다. ㄷ과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한국에 오면 꼭 ㄱ을 방문하고 또 잠도 자도 술도 양껏 먹고 한다는 ㄴ과 마찬가지로 ㄷ의 세계관이나 인생관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그들은 종교적으로 일체이고 나는 종교가 다르니까. 종교뿐 아니라 정치적 성향도 달라서 말조심 행동 조심하지 않으면 사단이 난다는 걸 아는 터에, 오래된 사이를 늙은 나이에 깨트리지 않으려고 조신하게 굴었다.

밥을 다 먹고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이 좀 오가니 옛날 사람들 이름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아는 이름도 있었지만 모르는 이름이 더 많았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싶은 이름도 튀어나오고 해서 아, 내가 참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싶었다. 고등학교까지 족보를 더듬어 올라가고 어쩌고 하는 사이에 ㄷ이 자리에 없는 ㄹ을 가차없이 처단했다. 놀란 ㄱ이 여기 이 사람들 ㄹ과 엄청 친하니 그만하라고 했다. ㄹ이나 ㅁ이나, 같은 사람을 두고 이러구 저러구 다른 말 하는 거야 늘상 있는 일이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아슬아슬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ㄴ과 ㄷ은 ㄱ과 전혀 다른 부류였다. 알고 보니 ㄴ과 ㄷ은 나와 줄기가 같은 통속이었던 것이다.

엇. 어찌 이런 일이? 초면인 ㄷ은 몹시 놀랐다. 남편과 ㄴ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내가 놀랐다. ㄴ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아, 괜찮은 느낌인데. ㄱ과 너무 다르잖아. 진작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편하게 대화하는 건데 괜히 몸사렸잖아. 뭐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ㄷ은 뒤늦게 알아차림 나와 남편의 정체(?) 혹은 성향(?)에 감복했다. ㄴ과 ㄷ과 슬슬 대화가 풀렸고, 막힌 물꼬가 트인 듯 주거니 받거니 하자 ㄱ이 손사래를 치며 갈라놓았다. 친하게 지내지 마라. 다 빨강이여. 엥? 종교적 친화력 어쩌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젠 빨강? ㄴ이 우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ㄷ은 들은 척도 않았다. ㄱ이 일어나서 좌중을 정리하려 하자 ㄴ이 말했다. 마, 앉아라. 예수께서도 산상에서 설하실 때 앉으셨다. 말하는 사람이 서 있으면 듣는 사람이 쳐다보아야 하니 고개 아프다. 

으하하. 사람과 사람 만나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ㄱ과 절친해보이는(!) ㄴ과 ㄷ을 내가 경계했던 것처럼, ㄴ과 ㄷ도 ㄱ과 절친해보이는(!)은 우리를 경계했을 것이다. 다음 차를 가자는 걸 뿌리치자 ㄴ은 순순히 그러라 했고, 자상하고 부드럽게 남편을 배웅했다. ㄷ은 정말 정말 아쉽다고 언제 다시 또 만나자고 했다. 흐흐. ㄱ은 그러는 우리들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다는 듯... 사람 사이 오해하기 정말 쉽다. 유유상종이 유유상종이 아닐 수도 있다. (조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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