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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공감] ‘라라 오디오북’, 지역 작가를 조명하다
 2019-12-05 19:10:02
/ 황은덕 소설가


부산교통방송 주말 프로그램 〈주말의 가요데이트〉에 ‘라라 오디오북’이라는 코너가 있다.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작품의 주요 장면을 낭독하는 생방송 코너이다. ‘라이브로 듣는 라디오 오디오북’을 줄여서 ‘라라 오디오북’이라고 부른다. 매주 토요일 오후, 지금까지 두 차례 생방송을 마쳤다.

맨 처음 담당 PD로부터 출연자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땐 걱정이 태산이었다. 라디오 생방송이라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역 작가들을 소개하고, 작품 일부를 원작 그대로 낭독하는, 그야말로 갸륵한 기획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사실, 저 80년대 끝자락의 몇 년 동안 서울에서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한 적이 있다. 컴퓨터가 상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원고지에 대본을 써서 매일 지하철을 타고 방송국으로 가서 원고를 넘겼다. 그때 동료 작가들과 나눈 대화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집에서 쓴 대본을, 저절로 탁, 보내는 방법이 없을까?”

21세기의 라디오 방송국은 오래전의 그 시절과 시설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튜디오 부스 안에 진행자가 앉고, 부스 밖에서 피디, 엔지니어, 방송작가가 사인을 주고받으며 진행자와 소통했다. 가장 큰 변화는, 물론, SNS로 접수되는 실시간 청취자 반응이었다. 부스 안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진행자가 사연을 읽고 즉시 응답하는, 생생한 라이브 현장이었다.


방송 언어와 문학 언어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여겨졌다. 홀가분해지고 싶은 주말 오후, 실시간 교통 정보를 기대하는 운전자에게 지역의 리얼리즘 소설은 지나치게 비장하고 무거울 수 있다. 부산에서 융성한 모더니즘 계열의 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상 언어와는 다른 시어들이 청취자에게는 해독하기 어려운 기호로 여겨질 수 있다. 방송과 문학, 대중과 작가 세계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는 것. 방송을 앞두고 나름대로 정한 지향점이다.

첫 두 방송에서 김성종 추리작가와 최영철 시인을 각각 소개했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과연 어떤 걸 소개해야 하는가도 고민거리였다. 첫 방송이니만큼 인지도와 대중성을 고려했다. 김성종의 소설 ‘최후의 증인’, 그리고 최영철의 시 ‘금정산을 보냈다’와 ‘비밀’을 소개했다. ‘해운대의 소설가’와 ‘금정산의 시인’을 길잡이로 앞세워 방송을 마쳤다.

가장 큰 난관은 ‘라이브’로 작품 속 장면을 실감나게 낭독하는 일이었다. 프로그램을 맡은 한주형 진행자와 낭독 역할을 분담했다. 성우 출신의 전문 방송인과 나란히 비교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엉뚱한 데서 혀가 꼬이고 발음이 미끄러졌다. 집에서 남몰래 발성 연습을 하고, 성대 보호에도 신경을 썼다.

주변에서는 걱정과 응원을 동시에 보내고 있다. 매주 새로운 방송 내용을 준비하는 게 벅차지 않느냐, 한주형 진행자와 음성 톤이 너무 차이가 나더라, 그 에너지와 시간을 네 작품 쓰는 데나 써라 등등.


내가 정작 우려하는 건 혹시 작가의 작품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내용을 잘못 이해하거나 해석하게 되는 건 아닐지 하는 점이다. 그렇다 해도 당분간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읽고 경탄하며, 작가가 꿈꾸는 세계를 방송 언어로 들려주는 일을 즐기고자 한다.

삶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청취자나 독자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이 예민하게 포착한 일상, 소설가가 날카롭게 파악한 현실 세계는 유한한 삶에 가치와 의미를 더해 줄 것이다.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 많다. ‘라라 오디오북’이 더 많은 지역 작가를 소개하고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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