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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 처음으로 백일장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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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스님이 팔을 몹시 다쳤다는 소식을 박이 전해주었다. 다친 과정을 설명하는데 어찌나 조리있고 상세하며 리얼한지, 다친 사람 생각도 않고 마구마구 웃고 말았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도 박의 입담에 얼이 빠져 웃느라고 며칠 동안 안부 전화 넣는 것을 까먹고 말았다.

핑계를 대자면 아이들이 와서 7박8일을 지내고 가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할매 할배 가운데서 꼬박 일곱 밤을 자면서 할배 쪽 할매 쪽 번갈아 돌아누우며 얼굴을 맞대주는 것이, 아무리 애비 에미가 시켰다 해도 심성 타고 나지 않으면 못할 일이겠다. 아이가 가고 나니 허전하고 적막해져서 또 정신을 놓고 지냈다. 

그러다가 언제 경주 같이 가자던 박의 당부가 있었고, 마침 날짜가 잡히고 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 않았다. 어디서 뭘 하나. 일정을 맞춰야 하는데 싶어, 경주 가는 일 날짜 잡혔는데...까지 문자를 찍어 보내니 지금 병원, 나중에. 라는 답이 날아왔다. 지난 연말부터 올 연초까지 신병 관리 때문에 병원에 갔는데 결과가 엄청나게 좋다고 하더니 웬 병원이람? 부인이 탈이 났나.... 그래, 그런가 보다 하고 같이 가기로 한 정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이이는 또 듣느니 처음이라며, 가만 있어 봐, 내 일정 보고... 하더니 곧 연락 와서는 그날이 모친 생신이라 가족 점심 일정이 있다 했다. 그럼 경주는 나가리, 담에 가는 걸로. 박도 알고 있어야겠다 싶어 경주 나가리 됐음을 문자로 전했다. 

근데 저녁 쯤 되니, 병원 간 일이 슬슬 궁금해졌다. 부인이 얼마 전 코로나를 겪었다기도 했고, 또 혹 다른 병이 생기기라도 했나 싶어 은근 걱정되던 차. 다행히 전화를 받은 박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을 의사처럼 돌봐준(매일 강제 산책을 시켜준) 개를 끌고 나갔다가, 이 개님이 갑자기 마구 달리는 바람에  끌려가다가(진도임) 그만 커다란 참나무와 박치기하였더란다. 밤에 자려니 돌아눕지도 못할 만큼 아프고 하여 엑스레이를 찍으러 병원에 갔더니 갈비뼈가 부러졌다더라나. 스프린트도 못한다며 무조건 안정!을 권했단다. 그래 지금 숨만 쉬어도 아프다!고 했다. 아이유 무슨 일이래. 그럼 말 그만 해유. 어서 전화 끊으라고 했는데도 뭐라고 뭐라고 한참을 더 사고 과정을 설명했다. 병문안을 가기로 했으니 기다리라 하고 가만 생각해 보니, 스님도 개띠, 박도 개띠, 나도 개띠.... 뭐야.... 다음은 내 차례인가.... 큰일났네. 남편이 옆에서 거들었다. 나도 호적상 개띠다. 

조마조마하며 하루를 더 보냈는데, 토요일 후배들이 와서 점심과 술을 잘 먹고 커피 마시러 갔다가 박의 안부를 전했다. 후배가 당장 전화를 걸어 상태를 물으니 어쩌고 저쩌고 박이 떠드는데, 이쪽에선 또 와르르 웃어대는 것이었다. 뭐야, 지금 웃을 상황 아니라니까. 정말 심각하다고, 이럴 때 우리끼리 모여서 웃으면 어떻하냐고! 내가 소리쳤지만 도무지 효과가 없었다. 

국수며, 마스크, 쌀 한 자루까지 얻어서 집에 돌아와 멍때리고 있다가 내일은 일요일이니 가족과 보낼 테고, 화요일엔 문화회관 가야 되고 목요일은 병원 가야 되고 .... 월요일이나 수요일에 문병을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노느라고 몸이 고단해 주말 드라마도 안 보고 누웠는데 뭔가 수상한 기운이 느껴져서 일어났다. 지난 이주일 동안 혈액 검사를 하고 결과 보고 어쩌고 했는데, 다음주엔 피부 반응 검사를 할 것이니 복용중인 비염과 천식 약을 중단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러니까 사흘째 비염과 천식 약을 끊고 있었던 것인데 한 이틀 잘 넘기더니 마침내 콧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훌쩍거리며 일어나서 컴 앞에 앉아 있으니 나라는 개도 드디어 목요일까지 훌쩍훌쩍 비몽사몽 지내야 하는 수난에 처해졌다는 걸 알겠다.

매화 피고 산수유 핀 이 좋은 봄날에 개들은 왜 이리 난리들이람.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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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방학 맞아 손자가 왔다. 어찌나 살가운지 엿새 내내 할머니 할아버지 가운데 누워서 잤다.  사내 냐석이 어찌나 살가운지 넋이 빠질 지경.
애비는 주말에 왔다가 월요일 출근해야한다며 올라가고, 며느리는 손자 등쌀에 아직 붙들려 있다. 잠시 머라도 어긋나면 "용인 간다"고 협박당한다.
어제는 뭣하나 해야지 하고 며느리가 글쓰기를 시켰다.  방학 내내 놀기만 했으니 연필이라도 잡아보라고 말이다
. 손자는 <산문> 을 택했다. <시> 도 괜찮다고 했는데 기어코 <산문>ㅇ라 우기더란다. 며느리 말이, 내가 낮에 출판사 대표랑 투고된 원고를 두고 이렇고 저렇고 의논하던 걸  어이가 듣고는, 자기도 산문을 써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출판사 대표와 내가 나눈 이야기는 필자 입장에선 하나하나 소중한 것이겠지만 책으로 묶으려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 통일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듣등의 것이었고 세 차례 주거니 받거니 전화를 하면서 이를테면 회의를 한 셈이었는데 그걸 듣고 그런다는 것.
오호,  하고 기다렸더니 짧은 산문을 써 왔는데 '빛'에 대해 조목조목 끝까지 옆길로 가지 않고 써 왔다.
거 참. 아이들 키울 때 으레 그랬기에 그런가보다 했고, 그래도  며느리 보기 인색하지 않게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며느리는 다시 손자에게 글쓰기를 시켰다.  시나 산문 맘대로 써라 하고 저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손자가 종이를 들고 왔다. 시를 썼다고 했다 드럼 할배한테 보여드려, 했더니 할배가 그거 시 아니란다.
제목 ...레몬 생강 캔디
내용... 레몬 생강 캔디는 맵다
ㅋㅋ.
이건 그냥 사실인 거잖아. 그러니까 시가 아니야.
어, 그래요?
손자는 다시 책상 앞에 가서 끙끙대더니 잠시 후 나타나서 말했다.
"시가 어려워요, 산문이 어려워요?"
오잉?
손자의 질문에 시인 할배와 소설가 할매는  깜짝 놀랐어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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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앵거리던 것이 벌써 중학생이 된다.
처음 만난 3세. 첫사랑.
잘 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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