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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고향 동네 가서 놀았다. 바구니에 먹을 거 담고 소주 2병 담고 고속도로. bts 공연이 일광에서 열렸더라면 옴짝도 못했을 텐데 아시아드 주경기장으로 변경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길은 한산하고 하늘은 적당히 맑음. 지난 봄에 다녀간 마당은 그 사이 나뭇잎이 떨어지거나 단풍이 들었다. 주인장이 방치한 장군차를 한 보따리 따다가 만들었던 황차가 몇 달 사이 잘 익었다. 따뜻한 물에 우려 시음을 하는데, 호, 내가 만들고도 놀라운 맛. 내년에도 찻잎을 따러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리고 상차림을 거드는데, 이렇게 이쁜 팟에 안주인께서 소금을 담아둔 걸 봤다. 에고 참. 화들짝 놀라는 내게 안주인은 당장 소금을 비우고 챙겨주셨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큼지막한 작품들이 있다. 물레를 별로 안 좋아해서 생긴 게 이렇다고 안주인은 말씀하시지만, 놀라운 안목에 감탄, 또 감탄. 바구니에 조심조심 모셔 담아두고, 뒤늦게 도착한 일행과 질펀한 점심. 가을 마당에 참숯 향기 국화 향기, 가을 대숲에 바람 소리 새 소리, 가을  대기에 하하 호호 웃음소리.... 꼬냑 한 병 비우는데 몇 잔 거들고 담배도 두 개비나 먹었다. 

돌아와 팟을 잘 씻어 포랑산 궁정보이 2006을 넣고 우렸다. 큼지막해서 좋다. 나는 많이 먹는 체질이라 큰 게 좋다. 내가 작년에 만든 티팟을 꺼냈다. (아래 사진) 작품이 곧 사람이라더니, 일흔에도 소녀처럼 단아하고 고운 안주인의 성품이, 어떤 어려움도 덮지 못하는 여리고 앳된 안주인의 성정이 담긴 작품. 남들은 다 괜찮다 괜찮다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시난고난 인생살이 말 한 마디도 누르고 또 누르고 살면서, 이제나 저제나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는 속내가 그대로 보이는 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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