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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와 목월, 그리고 경주

 

 

신라 천년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고도(古都) 경주는 언제 가 보아도 새롭다. 한두 번 걸음으로 경주의 진면목을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아직 땅 밑에는 무한한 보고가 숨겨져 있을 터이다. 경주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물 유적들과 고색창연한 사찰, 주춧돌 몇 개만 남아 전하는 절터, 갖가지 형상의 마애불이 발길을 멈추게 하는 남산은 우리에게 영원히 불가사의한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런 경주는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곳이며, 또 멀지 않은 날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가교 역을 하기도 할 것이다. 경상도의 문학인들에게도 경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 민족의 내면을 흐르는 정서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곳이며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려는 진지한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경주에는 역사의 고증으로 다 풀지 못한 옛사람들의 숨겨진 은유가 있고 언어의 힘으로 부활시켜야 할 묻힌 삶의 비밀들이 곳곳에 꿈틀거리고 있다.

그 경주에서 우리 현대문학의 우뚝한 봉우리 중의 하나인 시인 박목월과 소설가 김동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시와 소설에서 독보적인 세계를 개척한 문학적 업적도 그렇거니와 오늘의 문학이 아직 그 두 사람의 영향권 안에 있다는 사실이 경주를 역사 유적지뿐 아니라 빼놓을 수 없는 문학 순례지로 다가오게 한다.

김동리는 1913년 경주 성건동에서, 박목월은 1916년 건천읍 모량리에서 각각 태어났지만 이들은 등단 전인 10대 후반에 만나 이미 두터운 교분을 쌓고 있었다. 동리가 서울 경신학교를 중퇴하고 낙향해 동양의 고전과 세계문학 작품을 읽으며 독학으로 소설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고 목월이 대구 계성중학을 다닐 때였다.

이들이 고향 경주를 무대로 하여 쓴 작품은 여러 편에 이른다.

김동리의 잘 알려진 작품 무녀도, 바위, 황토기등 토속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소설들이 모두 고향 마을 주변을 실제 공간으로 하여 쓰여졌고 널리 애송되고 있는 박목월의 시 나그네, 산도화, 윤사월, 청노루, 경상도의 가랑잎등 대표작들이 고향 산천의 정서와 가락이 실린 것들이다.

이 중 김동리의 무녀도는 자신이 나고 자란 경주 성건동 일대와 인근의 못 예기소가 무대가 된 작품이다. 지금은 동국대학교 경주분교가 보이는 곳이다. 무당 모화의 집 역시 작가의 동네에 실재했던 무당 집이 모델이 되었다.

지금은 그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당시만 해도 예기소 주변은 무척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던 곳이었다고 전한다. 아들을 빼앗아 간 예수 귀신에 대한 원한으로 신령님의 영험을 증명해 보이려고 굿판을 벌이다 물에 빠져 죽은 무당 모화의 슬픈 통곡 소리가 한동안 들렸을지도 모른다.

김동리는 이 소설을,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문학을 통해 우리의 언어를 남기려는 의도로 썼다고 훗날 술회하고 있다. 조국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학 작품으로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남기려고 한 무녀도에 우리의 토속신앙인 샤머니즘을 가미한 것은 자연스러운 민족애의 발로로 여겨진다.

작가는 생전에 경주에 거주하는 제자를 앞세우고 모델로 삼았던 무당의 집을 찾아 나선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흔적은 고사하고 정확한 위치조차도 분간하기 힘들어 헛걸음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넉넉한 정신의 자산을 사장시키고 있는 우리의 무지함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경주는 문청시절의 김동리와 박목월이 조우한 곳이며, 청록파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박목월과 조지훈이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대면한 곳이기도 하다. 경북 영양 출생으로 목월보다 네 살 아래였던 지훈은 목월에게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봄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처럼 멋이 있으면서 단아한 기품의 필체로 네 장 정도의 긴 사연을 담았다고 하는 지훈의 편지에 목월은 이렇게 답했다.

󰡒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늘한 옥피리를 마음속에 그리던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

지극한 그리움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오래도록 멀리서 그리던 연인들의 첫 대면을 연상하게 한다. 목월과 지훈은 문장지에 나란히 추천을 받은 경력이 있는데다가 일제에 조국의 말과 얼을 빼앗긴 극한 상황에서 서로에게 깊은 동병상련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절망의 끝자리에서 붙잡은 진실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리라. ·조선일보가 폐간되고 두 사람의 문학 모태였던 문장마저 폐간된 시점이어서 그들이 붙잡을 수 있었던 유일한 끈은 비운의 길을 동행하고 있는 단 한 명의 시우였을지도 모른다.

지훈의 첫인상을 목월은 이렇게 쓰고 있다.

󰡒긴 머리가 밤물결처럼 출렁거리던 그의 첫인상은 시인이기보다는 귀공자 같았다. 티없이 희고 맑은 이마, 그 서글서글한 눈, 나는 서울에서 온 시우를 맞아,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렇게 뜬눈으로 정담을 나눈 식민지의 시인들은 다음날 토함산을 오르다 말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시를 쓴들 뭘 하느냐?’는 자조 섞인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며 탄식하기도 했다.

지훈과 목월은 빼어난 시로써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로도 유명하다. 지훈이 경주에 4-5일 머물다 간 뒤 목월에게 보낸 시가 낙화이고 그에 목월이 화답한 시가 나그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로 시작하여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로 끝맺는 지훈의 낙화에 목월은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로 화답한 것이다.

세간에 알려지기는 목월의 나그네는 지훈의 시 완화삼(玩花杉)에 화답한 시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완화삼에 화답한 시는 나그네가 아니라 밭을 갈아라는 시였다고 목월은 자신이 쓴 수필에서 밝히고 있다.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고/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 7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 저녁놀이여.’로 이어지는 지훈의 완화삼과 목월의 나그네가 전체적인 분위기와 운율에서 마치 짝을 이루듯이 흡사하여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다.

경주 현대호텔 앞 보문 인공 호수를 그윽이 내려다보는 자리에 목월의 시비가 있다. 어느 여제자에게 보낸 편지에 담았던 시 을 육필 그대로 각인한 것이다.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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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길 시집 2018

 

우리는 가슴이 뜨거웠던 시절에 길 없는 길을 배회하며 깡소주에 눈물 젖은 운동가를 함께 부르며 노숙한 시적 도반이었다. 그시절 우리의 꿈은 인간다운 삶이 존중되는 보다 나은 삶을 향한 갈망으로 뜨거웠던 것인데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안성길의 시는 여전히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구수한 계분 내 데불고 오르는 사람’과 ‘일곱 빛깔 캐럴송 흩뿌리며 아스콘바닥 기는 사람’과 ‘깨금알보다 구수한 땀내 풀풀대는 사람’과 ‘잇몸 다 보이도록 웃는’ 사람들이 있는 저잣거리에 그의 시가 있다. 그것이 참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라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영철 시인) 2018.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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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는다,

조명숙 

 

1.

아이들은 옛이야기에 속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에 더 심각하게 속는다. 어른들은 과학소설에 속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 잡지에 나오는 이야기에 속는다. 나는 늘 내게 속는다.

이제 좀 뭘 써야겠다고 마음먹어도 눈만 뜨면 보이는 게 자잘한 일이다. 하루종일 집안을 맴도는 나에게 그만큼 좋은 핑계는 없다. 내가 쓰든 못 쓰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쓰고 싶으면 언제 어디서든 쓰면 되고, 언제 어디서든 쓰지 못하면 안 쓰면 된다. 변명의 여지없이, 쓰고 안 쓰고는 내 문제인 것이다. 텔레비전이 시끄럽다, 밤에 불을 켜놓을 수 없다, 잡일이 많다 뭐 이런 것들을 들이댄다고 해서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을 거들어줄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이 내 일을 거들어줄 수는 없다.

몸을 핑계로 두 달을 어영부영하다가 황토방을 들여다보았다. 날이 더워지면 책이 있는 방(서재라고 한번도 불리지 못한) 보다는 황토방이 훨씬 시원할 것이다. 아이 둘이 왔다갔다 하면서 황토방에 남겨둔 짐들을 혼자 이리 옮기고 저리 치웠다. 버릴 거 버리고 보낼 거 보내는 데 며칠이 걸렸다. 시골에서는 필수품인 방충망만 설치하면 끝날 단계. 그런데 작년에 쓰던 커튼식 방충망을 꺼냈더니 문제가 있었다. 양쪽을 젖히고 드나들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다시 안 쓰려고 떼어낼 때, 고정용 벨크로까지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벨크로 주문하면 또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여닫이식 방충망을 설치하자니 돈도 돈이지만 그것의 시퍼런 색과 질감을 생각하니 썩 내키지 않았다. 그 시퍼런 방충망 안에 앉아 있으면 내가 벌레가 될 것처럼, 취향의 문제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그걸 피하려고 작년에도 꽤나 고민을 했던 터다.

이래저래 생각하다 문틀에 못을 박아 방충망을 고정해보기로 했다. 새시로 된 문틀에 망치로 못을 박을 수는 없는 일, 도움을 청했다. 늘씬하고 잘 생긴 배우가 와서 전동드릴로 구멍을 뚫어 못 네 개를 박아주었다. 배우는 천에도 구멍을 뚫어야겠고, 양 모서리를 고정시켜야 할 것 같다는 데까지 신경을 써주었다. 섬세함이 배우들의 성품이라는 걸, 좋은 배우는 남자든 여자든 아주 섬세하다는 걸 이곳에 와서 알았다. 자신을 내던지고 또다른 자신을 항상 창조하는 위대한 인간들이 배우다.

우여곡절을 거쳐 방충망이 설치되었다. 다이소에서 벨크로 조각을 사서 양옆을 붙이고, 통나무 다탁도 하나 얻어왔다. 한 동네 사는 화가들을 불러 방을 보여주고 막걸리도 한 잔 먹었다. 다실로 쓰거나 술 먹기에 딱 좋을 방이지만 손님이 그렇게 자주 오는 것도 아니어서 온전히 내 차지가 됐다. 숨어 있기 좋은 방, 글쓰기 좋은 방, 잠자기 좋은 방, 울기 좋은 방, 놀기 좋은 방에서 오랜만에 사지를 벌리고 늘어지게 잠을 잤다. 쪽창과 방충망을 통과한 바람이 시원했다.

꿈을 꾸었던가. 사방에서 물어뜯는 느낌에 눈을 뜨니 온 방이 파리였다. 바람이 불었고, 가벼운 방충망이 바람에 흔들렸고, 그 틈을 비집고 무수한 파리떼가 쳐들어온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봄부터 강가에 나가 이런저런 풀을 뜯어다 설탕에 재워둔 항아리가 바로 황토방 앞에 있었다. 이제 막 발효를 시작한 항아리에서 솔솔 풍기는 달콤쌉싸름한 냄새를 좋아라 했더니, 파리는 집중적으로 항아리에 달라붙어 있었고, 나머지는 내 몸을 마구 물어뜯고 있었다.

정신없이 파리채를 휘두르고, 에프킬러를 뿌리다 보니 내가 또 속았구나 어찌나 허탈하던지. 도대체 나는 얼마나 더 나에게 속아야 하는 걸까.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해도, 난관이 생기면 어떻게든 뚫고 나가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엔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것이다. 그냥 돈을 좀 쓸 걸. 그 한결같이 시퍼렇고 빤질거리는 방충망을 참아낼 걸…….

며칠 공들인 일이 억울했지만 황토방을 포기할 순 없었다. 포기는 나의 덕목이 아니니까. 죽든 살든, 덤비고 봐야 하는 게 내 인생이니까. 이튿날 항아리부터 손을 댔다. 찌꺼기를 거르고, 작은 항아리에 옮기고, 비닐로 봉하고, 주변을 닦고 하는 데 하루를 거의 다 썼다. 속으면 속을수록 오기가 발동하는 성미 탓에, 몸이 좋네 안좋네 하면서 계속 일을 만든다는 지청구를 들어가며, 쓰다 둔 망사천과 재봉틀을 꺼내 기다란 주머니를 만들었다. 작은 주머니 여러 개를 달면 좋겠지만 여러 개에 잡힐 일손이 겁나서 길게 두 개를 만들었다. 모래를 채우면 흙가루가 날릴 테고, 작은 돌은 주우러 가야할 테고, 멀쩡한 곡식을 넣자니 좀 켕기고……. 문득 누가 준 찜질용 팥주머니 생각이 났다. 준 사람에겐 미안했지만 아주 조금만 꺼내 쓰기로 했다. 주둥이가 좁은 주머니에 팥을 넣기 위해 페트병을 잘라 깔때기까지 만들었으니까 딴엔 엄청 머리를 썼다.

팥이 채워진 주머니 주둥이를 메운 다음 무명실을 바늘에 꿰었다. 방충망 아래 길게 팥주머니를 매달고 보니 낭창한 것이, 꽤 무게감이 있는 것이, 웬만한 바람에는 너끈히 견디는 것이, 딱 맘에 들었다. 팥이란 게 뭐 액을 막아주기도 한다니까. , 이제 됐구나. 방충망 밖에서 알짱대는 파리에게 메롱을 몇 번이나 해줬다. 여긴 내 방이야. 들어오지 마! 찌질한 날들이여, 안녕. 스피커 볼륨을 올리고 벨벳언더그라운드도 실컷 듣고 안나 비샤도 실컷 들을 거야. 도어즈나 너바나도 볼륨을 높일 거야. 폐인 만세. 난 딱 폐인 체질인데, 이렇게 폐인으로 있을 때 생각도 되고 상상도 되고 공부도 되고 글도 되는데, 그동안 너무 오래 사거리 난장에 앉아 있었지 뭐야. 눈 감고 귀 닫고 입도 닫고 살아 보자, 이제.

때맞춰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세수를 안 해도 되고, 썬크림을 안 발라도 된다. 세수 한 번 안하는 것뿐인데도 엄청 일이 줄어든다. 하루는 비가 얼마나 오나 보려고 내다보는데 방충망이 왠지 묵직했다. 짧은 추녀를 넘어온 비가 팔주머니를 적시고 있었다. 팅팅 불은 팥이 금방이라도 주머니를 뚫고 나올 기세였다. 콜드플레이를 듣고 있을 때였다. Viva la vida! 인생 만세!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함정이 없으면 인생도 없다더니, 나는 또다시 함정에 빠진 거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판 함정에 빠져, 난감한 채로, 혼자 어쩔 줄 몰랐다. 그 모든 것이 내가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팥주머니가 장마를 견딜지 못 견딜지 아직은 모르겠다. 어느 날 아침 우수수 쏟아진 팥을 쓸어담으며 내가 쓴 웃음을 지을지, 햇빛이 팅팅 불은 팥을 가슬가슬 말려줄지, 그 누가 알겠는가.

 

2.

개 한 마리가 벌레처럼 죽어 있었다. 산책하러 가던 길에 개의 주검을 보았다. 내장이 항문으로 비져나와 널브러져 있는 것이 꼭, 벌레였다. 작은 벌레가 자전거바퀴에 깔렸을 때 저런 모습이리라. 내장이 터져나오고 머리가 으깨지고, 짧거나 긴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벌레의 주검은 자세하지 않고 개의 죽음은 자세해서 더 놀랐을 뿐이겠지.

하루 종일 개 한 마리가 벌레처럼 죽어 있었다를 입에서 굴렸다. 머릿속에서도 같은 문장이 굴러다녔다. 목숨에는 차이가 없건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차이 때문에 가볍거나 무겁게 느낀다. 동그란 집을 지고 천천히 길을 가로질러가는 달팽이를 내 자전거바퀴가 깔아뭉갠 것이나, 조심성없이 지나가는 개를 자동차바퀴가 깔아뭉갠 것이나 다를 바 없건만 개의 죽음은 참혹하고 달팽이의 죽음은 조금 덜 참혹한 듯.

개의 주검은 하루 넘게 방치되었다. 하루 넘는 시간 동안 세 번 더 개의 주검을 지나쳐야 했다. 파리가 들끓는 주검이 쨍쨍한 햇빛 아래 누워 나를 고문했다. 내 죽음을 잘 보아두라고 죽은 개가 계속 짖었다. 개 짖는 소리가 쟁쟁, 묵은 상처를 후볐다. 죽는다는 거, 죽음을 기다린다는 거, 담담해야 하건만 한 번도 그 담담을 보지 못했다. 과정도 그렇거니와 여러 면에서 죽는다는 건 엄청 일이 많다. 노인들일수록 죽음을 더 겁내는 것이 아마 과정의 어려움과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열 달을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출생과 달리 죽음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또 해결하지 못한 채 치러진다. , 지랄 같은 것이다.

로드 킬은 흔한 일이라고, 나는 개의 죽음을 견뎠다. 개와 뱀, 벌레와 고라니, 난데없는 꿩과 까마귀들이 길에서 죽는다. 태풍이 왔던 어느 밤, 밤새도록 개가 울부짖은 적도 있지 않았던가. 아침에 나무 아래 죽어 있는 개를 보았지. 나도 개처럼 어느 순간에 비명을 지르겠지. 고통을 잠재우기 위한 주사약을 꽂고 호흡기를 매단 채 헐떡거릴지도 모른다. 원래 그런 것이었는데 알지 못하고 있을 뿐. 내장이 튀어나오는 사고를 피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작년에는 정면으로 대면한 임종 때문에 오래 아팠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모습, 고통 때문에 허공을 맴돌던 눈동자, 아쉽고 아까운 것이 많은 이곳으로부터 저곳으로 끌려가는 강제 앞에서 발버둥치던 몸. 감당할 수 없는 그 임종의 일을 내색 못하고 감당하는 동안 내 몸도 요동을 쳤다. 나는 쑥쑥 가라앉았고, 가라앉은 채로 꿈틀꿈틀 숨을 쉬었다.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고 수없이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한편으로는, 깔끔하게 사라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사는 게 꼭, 내기 같다.

 

3.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을 뒤늦게 읽었다. ‘라고 하기엔 뭣한 일상의 기록이었다. 시에는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선생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깊은 외로움과 대적하면서 살을 저미고 뼈를 깎았을 선생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많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글이란 것이 이런 뼈저림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대작(大作)도 유명(有名)도 사양하고 싶었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생. 그 갈피를 아주 조금 들여다보기만 했는데도 이런데, 정작 선생의 하루 하루는 어땠을까. 사방으로 달아나는 마음을 다잡아 컴퓨터 앞에 앉으면서 자전이란 말을 곱씹어 본다.

내게 자전이 있었나? ‘자전이란 것을 집어던지기 전에는 결코 소설가가 되지 못한다. 자전적이 되면 소설은 재미가 없어진다. 내 경우다. 나는 별로 재미가 없는 인간이고 상상력도 부족하고 재치도 없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힘들게 고개를 넘던 중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다. 간신히 고개를 넘었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그동안 쓴 몇 권의 책과 유명무실한 이름, 쓸데없는 자존심과 명백한 가난, 쓰다 만 작품들의 끄트머리에 적어둔 메모처럼, 후회만 남았다. 나는 자전적인 걸 좋아하지 않고, 소설에서 자전적인 냄새가 나면 실패했다고 친다.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하는, 그렇지만 아주 참람하지만은 않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진부하지 않고 답답하지 않은 그런 소설을 아직은 쓰고 싶다. 그렇지만 이젠, , 힘들지 않을까, 겁도 난다.

시골에 살러 갔다니까 누가 말했다. <토지> 같은 거 쓰면 되겠네요. 뉘앙스 끝에 왜 그런 거 못 쓰세요?가 매달려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자기는 황동규처럼 못 쓰면서 나더러 박경리처럼 쓰라니, 딴엔 격려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야유였다. 누구와 비교된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한참 술 잘 먹다가 느닷없이 소설가라고? 참 웃기네 하는 표정과 함께 나 오정희 좋아하는데를 늘어놓던 사람도 잊히지 않는다. 나도 오정희 선생을 좋아한다. 대목 대목을 외우고 줄줄 꿰찰 만큼 맹렬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

아직도 이런 경우에 마주쳐 참담하게 절망하는 나는 늙은 걸까, 늙지 않은 걸까. 아직 더 쓸 수 있는 걸까, 이제 그만 써야 하는 걸까. 내 벽은 박경리 선생이나 오정희 선생이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치졸하고 용렬하게, 번번이 독자 아닌 독자들인가. 나는 겁이 나는 것이다. 선생처럼 외로울 자신도 없고, 선생처럼 견딜 용기도 없어서, 겁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핑계를 대는 것이다.

문학은 내게 구원이었을까, 형벌이었을까. 구원도 형벌도 아닌 하나의 직업, 사소한 벌이, 경건하지 않은 삶 앞에서 경건한 체하는 사기술, 자기기만과 표현욕구 과잉의 허장성세 같은 말들이 계속해서 괴롭힌다. 알 수 없는 건 그래도 여전히 쓰려고 하고 쓰고 있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꼭 써야 할 대작의 계획도 없고, 미치도록 닦달하는 열망도 없으면서 담담하게, 그냥 살아 있고 싶어서.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는 내 소설을 속였고, 내 소설 또한 날 속였던 것이다. 속고 속이고, , 내 인생이 그랬다는 것이다.

이십 년만에 연락이 온 친구는 내가 쓴 소설을 보내주겠다고 하니까 아예 주소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사 보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섭섭하기는커녕,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아주 끔찍이 내 글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난 듯, 내 책 같은 건 읽지 않아도 내 사는 걸 훤히 보고 있는 것 같은, 보지 않아도 다 아는, 내 진짜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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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뷔작] 2020, 대산문화 가을

 

 

1986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연장론 -

 

 

연장론

 

최영철

 

 

 

우리가 잠시라도 두드리지 않으면

불안한 그대들의 모서리와 모서리는 삐걱거리며 어긋난다

우리가 세상 어딘가에 녹슬고 있을 때

분분한 의견으로 그대들은 갈라서고

벌어진 틈새로 굳은 만남은 빠져나간다

우리가 잠시라도 깨어 있지 않으면

그 누가 일어나 두드릴 것인가

무시로 상심하는 그대들을 아프게 다짐해 줄 것인가

 

그러나 더불어 나아갈 수 없다면

어쩌랴 아지 못할 근원으로 한쪽이 시들고

오늘의 완강한 지탱을 위하여 결별하여야 할 때

팽팽한 먹줄 당겨 가늠해 본다

톱날이 지나가는 연장선 위에

천진하게 엎드려 숨죽인 그대들 중

남아야 할 것과 잘려져 혼자 누울 것은

무슨 잣대로 겨누어 분별해야 하는가를

 

또다시 헤어지고 만날 것을 빤히 알면서

단호한 못질로 쾅쾅 그리움을 결박할 수는 없다

언제라도 피곤한 몸 느슨히 풀어 다리 뻗을 수 있게

一字十字로 따로 떨어져

스스로 바라보는 내일이 있기를

수없이 죄었다가 또 헤쳐놓을 때

그때마다 제각기로 앉아 있는 그대들을 바라보며

 

몽키 스패너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이스 프라이어의 꽉 다문 입술로

오밀조밀하게 도사린 내부를 더듬으며

세상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제나름으로 굳게 맞물려 돌고 있음을 본다

 

그대들이 힘 빠져 비척거릴 때

낡고 녹슬어 부질없을 때

우리의 건장한 팔뚝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누가 달려와 쓰다듬을 것인가

상심한 가슴 잠시라도 두드리고

절단하고 헤쳐놓지 않으면

누가 나이와 부단한 오늘을 일으켜 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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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

 

최영철의 '연장'은 그 두 편의 그림과는 달리 목수가 사용하는 연장의 존재 이유를 밝혀보려 한 특이한 시이다. 그것은 서정적 시도 아니며 서사적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추억이라는 서정적 공간을 마련하지도 않고 사건의 계기성을 중요시하는 서사적 공간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아귀를 맞추는 연장들의 기능과 그 기능을 가능케 하는 해체된 대상들의 있음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보는 사람과 보이는 것의 긴장 위에 세워져 있는 특이한 시이다. '연장'은 해체와 복원, 무질서와 질서의 긴장을 시적 주제로 내보이고 있지만, 세상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제 나름으로 굳게 맞물려 돌고 있다. '연장'의 시인은 그 어느 한면에서는 앞의 두 시인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들을 종합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시인이다. 심사위원들은 투표를 하기로 하였고, 만장일치로 - 세 사람인데 만장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약간 쑥스럽지만 - 최영철의 '연장'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정진하여 대성하길 바란다. - 심시위원 / 김남조, 황동규,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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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작 관련 산문]

 

 

시 연장론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198512월 초에 쓰여진 시다. 삼십년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 시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좋은 일의 반추가 주는 안락한 평화나 좋지 않은 경험이 주는 불길한 환기를 나는 똑같이 싫어한다. 어떤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고 어떤 것에서도 자유롭고 싶지 않은 것이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나의 다짐이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것과 자유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 반대로 익숙한 것과 자유를 동일선상에 놓고자 한다. 무엇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그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고 그럴 경우 이것과 저것 사이의 긴장관계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남에게 관대하고 나에게 혹독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 무엇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하고 또 그 무엇에도 자유롭지 않아야 한다. 그런 다짐은 무엇보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고 납득할 만큼 내 시나 삶이 호사스럽지 않다는데 있다. 신춘문예 마감 전날 밤 나는 이 시를 썼다. 부산에서 나오던 무크지 <지평>1984년 작품발표를 시작한 뒤여서 신춘문예의 꿈을 접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198512월의 어느 아침, 집으로 배달된 한국일보 1면 하단에 박아놓은 <신춘문예 내일 마감>이라는 활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것은 늦잠을 자고 있어난 나를 두드려 깨운 매운 회초리였다. 그만 적당히 주저앉고 싶었던 나를 향해 날아든 느닷없는 돌팔매질이었다. 나는 울화가 치밀어 신문을 내던졌지만 붉은 바탕의 흰 글씨는 더 선명하게 눈을 치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10년 동안 연례행사처럼 투고 해 한두 번 최종심에 오른 것이 고작이었다. 나의 재능은 거기까지였다. 나의 재능은 우둔했고 나를 재치고 나온 당선작들은 충분히 유려하고 장대했다. 신춘문예는 하늘이 점지한 자에게나 내리는 축복이었다. 시를 보내놓고 한 보름 정도 막연한 기대로 가슴이 설레고, 그것이 더 큰 실의로 이어지면서 연말연시의 나는 초췌한 패잔병의 몰골이 되어야 했다. 그 진저리나는 경험들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는 이미 서른이었고 변변한 살림살이조차 없는 단칸방과 아내와 두 아이들 사이에서 이제는 정말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했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면 시가 보장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시가 없다면 살아갈 방도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생각이 참으로 우매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라도 쓰지 않았다면 세상을 살아낼 방도가 도대체 없었을 것이므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이었다. 그날 본 신문 하단의 붉은 글귀는 최후통첩과도 같이, 망망대해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다가온 한 올 지푸라기처럼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한 번 더 안간힘으로 몸부림을 쳐서 그 지푸라기를 붙잡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날 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단칸방 윗목에 엎드려 이 시를 썼다. 나는 서른을 넘기고 있었고 수중에는 동전 몇 닢뿐이었다. 나에게 온 죄로 온갖 박대와 가난을 견디고 있는 아내와 아무 호사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잠든 머리맡에서 나는 이 시를 썼다. 이제 지랄 같은 신춘문예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이것으로 더 이상의 기대와 몽상은 버리기로 약속하며, 이 시를 썼다. 식구들이 잠든 그 막바지의 시각,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도통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진퇴양란의 그해 겨울이 또 한 편의 시를 쓰게 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게 온 모든 절망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나의 절망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 겨울의 절망이 나를 두드려 깨우지 않았다면, 그 겨울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나를 들쑤셔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만 중도에 시의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내게 온 그 많은 절망들에게 빚지고 있다. 마감 당일 원고를 부치고 나니 홀가분했다. 애썼다. 나는 허탈해지려는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책방을 하다 말아먹고, 첫 직장으로 1년 넘게 다닌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친척 형님이 만들어 팔던 미니카 몇 대를 빌려 영업을 다닐 때였다. 공터를 골라 전을 벌리면 한 며칠 호기심으로 아이들이 들었지만 곧 썰물처럼 삐져나가 버려서 기계 값도 못 건질 형편이었다. 그리고 1223일인가 24일쯤, 궂은 겨울날씨에 장사를 공치고 연장통을 들고 털레털레 돌아온 내 방으로 막내 동생이 찾아와 부모님 댁으로 걸려온 전화를 알려주었다. 한국일보 문화부 당래부 기자라고 했다. 당래부? 이상한 이름도 다 있네. 일러준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장명수 문화부장이 받아 축하한다고 했다. 장명수칼럼을 보려고 나는 한국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통일호 첫차를 타고 서울로 가 한국일보사 건물 꼭대기 송현클럽에서 당래부 기자가 아닌 박래부 기자와 마주 앉았다. 11일자 신문에 시와 인터뷰 기사가 나오고 며칠 뒤 부산의 한 텔레비전 프로에 얼굴이 나갔다. 미니카 장사는 계속 시원찮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형편도 아니었다. 잠시 일손을 놓고 공터 앞의 중국집에 들어가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 앉아 있는데 여주인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어제 저녁 텔레비전에 아저씨하고 영판 닮은 사람이 나옵디더.’ 그래서 내가 그랬다. ‘닮은 사람이 어디 한들입니꺼.’

 

 

대산문화 2020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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