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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에서 전화왔다. 지난 달에 사촌동생네 혼사를 치렀는데, 이번에는 사촌동생네 남편의 부고다.손아래 누이라고는 딱 하나, 남편더러 오빠라 부르는 딱 하나의 사촌이라 놀람.벙벙해 있다가 빈소를 물어보려 아주버님께 전화했더니 양정이라고 한다. 지지난 달 고모님 돌아가셔 상가에서 만났고, 해맑은 모습 그대로더만 무슨 일이람요? 갑작스레 간이 안 좋아져서 한 달포 고생하다 가셨단다. 고인의 나이로 치면 남편보다 몇 살 많지만 하나뿐인 사촌 여동생이다 보니 꼭 나이 어린 사람이 가버린 듯 충격이다. 

아주버님 오시는 시각에 맞춰 상가에서 뵙기로 하고 막 전화를 끊는데, 마산 외삼촌 전화가 떴다. 목이 잠긴 듯, 울음이 맺힌 듯한 목소리다. 조카야. 엄마 어떠시노. 며칠 전에 대산 이모 장례 치렀는데 내가 몸이 안 좋아 가지도 못하고.... 한 동네 사시던 외숙모님 돌아가셨다고 동생들 다녀온지 몇 달 안 됐는데, 이모님까지 가셨다니. 황망해선지 부고도 받지 못했다. 너그들 엄마한테 면회 가거든 꼭 나와 통화 좀 하게 해 도고. 목소리라도 들어보게. 이모 가시고 하니 내 마음이 너무 그렇다. 외삼촌의 목소리는 거의 울음이다. 당부에 당부를 하신다. 내가 길을 나서 볼라 해도 어데가 어덴지 모르겠고, 몸도 안 좋고...  연세도 연세지만 코로나로 그동안 비대면 면회를 하느라 외삼촌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했다. 유리창 너머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어머니는 겨우 알아들으시고, 못 만나게 하는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러니 전화에 대고 외삼촌 목소리를 들려드릴 수가 없었다. 이제 대면 면회가 가능하다 하니 외삼촌과 전화라도 할 수 있게 되었건만, 사이에 어머님은 많이 안 좋아지셔서 이젠 며느리도 못 알아보신다. 지지난 주에는 갑자기 동의의료원 응급실로 달려가게 되었는데, 몇 시간을 옆에 있어도 끝내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러고 주말에 동생들이랑 면회갔는데, 휠췌어에 겨우 앉아 계실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신다고 했다. 

시월 초입부터 부고를 두 번이나 듣고 보니, 9월에도 두 부고가 한꺼번에 날라왔다. 송재 선생께서 가셨고,  후배 시인도 같은 날에 갔다. 후배와 같은 동네 살며 부대끼고 살아온 지읏 시인은 부고를 전하면서 자꾸 씨바 씨바 했다. 신장이 안 좋아 투석을 받고 있었는데 막판 코로나를 못 이겼다 했다. 누구에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을 만큼 아까운 분들, 안타까운 분들. 상가에서 만난 지읏 시인은 점심은 저 상가에서 묵고 저녁은 이 상가에서 묵는데 밥이 똑같다며 이번에는 실실 웃었다.  먼저 자리를 뜨는데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비읍 시인이 내 차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살아 생전에 만날 수 있는 횟수 중에서 오늘로 횟수가 한 번 줄어버렸다. 그러면서 조심해 가라는데, 휙 돌아서는 그의 입에서 에이 씨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제 언제 죽어도 빈자리를 아쉬워할 사람이 없을 나이가 되고 말았다. 사느라고 아등바등, 허둥지둥,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끝나버린 것 같다. 그래서 에이 씨바. 인제 좀 살아볼까 싶은데 가야할 때라니, 에이 씨바 하고 지읏은 목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욕으로 뱉었을 것이다. 그러게나. 시난고난한 시간들 거의 다 지나고 이제 좀 편안해지나 싶으니 가야할 때. 언제 또 어떤 부고가 날아올지 알 수 없다 싶어 둘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에이 씨바.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우리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러께 허리 아프다는 남편과 한의원 문앞까지 가서 옥신각신하다 돌아오고부터 심드렁해 있던 차, 내가 벌떡 일어나자 남편은 두 말이 없다. 가자. 이러다가 죽으믄 머하노. 우리도 밤새 안녕인데. 일단 나가고 보자. 에이 씨바.  

입은 옷 그대로 길을 나서 간절곶까지 갔다. 사는 게 뭐 이래 싶어서 나갔는데, 월내며 임랑이며 간절곶이며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사람이 바글바글하니 차도 바글바글하다. 오후 네 시. 모래밭이나 자갈밭에서 노는 아이들, 텐트에 누워 있는 사람들, 낚시하는 사람, 찻집과 횟집에 모인 사람들... 사람이 다 없어진 듯 조용한 집에 있다가 밖에 나가니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 신기했다. 바닷가를 좀 걷다가 뭘 먹을 마음도 나질 않아 집으로 오는데 노을이 붉게 서쪽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노을 앞에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거대한 송전탑이 얼기설기, 무슨 이물질처럼 어둔 산그림자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조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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