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아침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큰언니한테서 전화 왔다. 지난 달에 엄마 봉안당에 가기로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모님 모시고 응급실에 다녀오느라 파토를 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 제삿날도 기억이 안난다. 다음 주에 시모님 생신이 있고, 뭐가 있고 뭐가 있는데 다 기억하면서, 주말엔 전복죽 끓여서 요양병원 면회도 다녀왔으면서. 엄마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없다. 내 세대는 그렇게 살았다. 도요 살 때 엄마가 요양병원에 가셨는데 나는 자주 들르지 못했다. 시모님이 집에 와 있었고, 몇 달 뒤 요양병원으로 가시는 등의 여러 일들을 치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변명을 하는데, 그 모든 변명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해서 그만두기로 한다.) 이러구러 세월은 지나고 엄마는 가셨다. 엄마가 가셨을 때의 안도감이라니. 내가 서울에서 부산에 와 막 기장읍에 내렸을 때(그날 따라 부산역에서 버스를 탔다), 큰언니에게서 전화가 왔고, 아무래도 엄마의 마지막이 온 것 같다고 했었다. 소설처럼 그렇게 엄마는 내게 마지막의 기회를 주셨는데, 제삿날도 기억이 안 나다니. 큰언니 말로는 아버지 제사와 합해서 지낸다고 했다. 엄마가 없어지자 덩달아 친정도 없어져서 제사를 맡은 동생한테 전화 한 번도 안했으니 무슨 말을 보태랴. 시모님 돌아가시면 우리도 그렇게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전화기의 스피커를 켜놓고 스트레칭을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큰언니와 오래 수다를 떨었다. 동네 친구 만나러 갔다가 리즈 시절 사진을 받았다는 얘기(내게 보내달라고 해서 받았다), 형부 귀가 안 좋아서 병원에 며칠 모시고 다녔다는 얘기, 발목은 괜찮은데 무릎이 아프지만 꾸준히 파크골프장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들을 했다. 관절에 좋다는 주사를 맞아도 그때뿐이었어. 맞아 언니. 나도 침 맞으러 다니다가 관두고 요즘 걷고 있어. 재잘재잘.  마지막에 언니가 며칠 전 벌어졌던 에피스도를 말해주었다. 나, 실종신고 당할 뻔했다. 빨래까지 해서 널어놓고 파크골프 치러 갔는데, 늘 몸에서 떼놓지 않는 전화기가 그날따라 종일 조용하더란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집에 와 씻고 자려니 누가 문을 쾅쾅 두드리잖니. 경비 아저씨가 올라왔더라. 늦은밤에 무슨 일이냐 했더니 글쎄, 종일 전화를 안 받아서 일산 사는 큰딸과 캐나다 있는 작은딸과 일본에 있는 막내딸이 난리가 났더란다. 가까이 사는 사돈이 비밀번호를 전해 받고 집에 다녀갔고, 경비 아저씨도 몇 번이나 와서 벨을 누르고 확인하러 다녔고, 급기야 제일 가까이 사는 일산의 큰딸이 비행기를 타고 내려오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낮 내내 통화가 안 되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는가. 오후 다섯 시 무렵에는 실종신고를 하자는 쪽으로 딸 셋의 의견이 모아졌다더란다. 그제서야 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비행기 모드로 되어 있더라네. ㅋㅋ.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자 전화가 수십 통 카톡이 150건이나 와 있더란다. 일단 큰딸에게 전화해서 응, 나 여깄는데 했다니, 종일 걱정이었던 딸, 아마도 울컥 했을 거다. 몸이 안 좋은 아빠  더불어서 딸 셋 대학 다 보내고 이제 좀 편히 지내는가 했는데,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쩔 뻔했냐고. 

언니는 치매 보험을 들었다고 했다. 딸들이 뭐라하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돼서. 잘 했어, 언니. 오늘 언니 치른 거 비슷한 거 나 전에 소설 쓴 적 있거든. 난리가 아니지. 어, 그래? 응. 나는 소설 얘기를 좀 더 하려다 그만두었다. <엄마는 죽지 않는다>는 엄마와 시모님, 그리고 주변 여러 상황들을 조합해서 재구성한 치매노인 실종기이자 요양간호사의 처절한 생존기이며, 마지막을 앞둔 환자의 참혹한 현실이 담겼다. 그 소설을 쓰면서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는 말을, 언니에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언니는 아마 딸들에게 번갈아가며 혼이 날 거라고 해주었다. 안 그래도 난리더라. 엄마 또 이러면 그때는 뭐 어쩐다나 저쩐다나. 이럴 때 이모랍시고 있으면서 비상연락망이 되지 못하다니, 미안한지고.우리야 둘이니까 이쪽 전화 안 되면 저쪽 전화 하면 되는데 형부가 병원에 계시니 언니는 혼자 사는 거나 마찬가진데. 좀더 자주 전화해야겠다.

품에 안고 키우던 일, 부모 품을 떠난 일 같은 게 엊그제 같건만 이제 자식들의 걱정거리가 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  우리는 둘이 있는데도 아들이 매일 전화를 한다. 지가 직장에 있어 못하면 손자가 한다. 아니 대부분의 전화는 손자가 한다. 내가 아들보다 손자를 더 좋아하니까 그렇다. 추석에 양평 리조트에서 아들 식구와 같이 보냈는데, 아들이 제 아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듣고 콧등이 시큰했다. 준아. 네가 매일 할머니 할아버지께 전화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아들은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손자가 못하면 며느리가 한다. 아들은 주말에 어쩌다 한다. 우리가 이제 자식들의 걱정거리가 된 거다. 미국 있는 딸네는 시차 때문에 서로 엇갈려서 주말마다 전화가 온다. 별일 없냐는 말을 나는 달고 사는데 저는 저대로 별일없냐고 한다.  딸네 꼬맹이들이 이제 십대가 되니 카톡으로 온갖 아양을 떨어도 생까기 일쑤다. 그래도 줄기차게 시비를 걸어 귀찮은 할머니 행세를 하게 된다. 그제는 아들네 아들이 음성 메시지로 "할머니. 사랑니는 언제 나나요?" 하고 뜬금없이 물어왔다. 어이가 없어서 "몰라" 우선 보내고 나서 "사랑하게 되면 나겠지." 했더니, 알았다고 척 경례를 붙이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이 사랑도 잠시, 꼬맹이들은 곧 자기네들 세상으로 날아가겠지.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해야지. 화이팅! 우리 꼬맹이들,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 

이렇게, 결국에 자매들의 이야기는 아이들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쁘게 시작하는 새해  (0) 2023.01.05
쉽지 않구먼  (0) 2022.12.13
두 개의 tea pot  (0) 2022.10.17
오해하는 사이  (0) 2022.10.12
수공업자의 고백  (0) 2022.10.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