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금
어제는 송인서적에서 결제어음이 오는 날이어서 서둘렀는데 아내가 병원 갔다오는 바람에 출근이 좀 늦었다. 어제와 그제 서울 가서 현장평가하고 심의하고 녹음하고 하느라 강행군을 해서일 것이다. 그것으로 예술위 심의위원 1년 업무를 다 마쳤다고 했다.
마침 삼랑진 장이라 수박 한 덩이를 사 도요 고개를 넘어가는데 집배원 아저씨가 우편물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간다며 전화를 했다. 지난 달 초면에, 대문 앞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도로명 주소를 자기들은 모른다며 역정을 내 억장이 무너졌던 일이 있다. 한바탕 큰소리로 다투기도 했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새주소를 파악하고 있어야 할 집배원이, 그것도 대문 앞에 커다랗게 붙은 새주소를 모른다고 잡아떼기에 화가 났던 것이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촌의 유유자적이다. 그날 다툰 효과가 있었던지 집배원이 전화까지 한 것이다. 출발하며 내가 미리 전화를 해둔 탓이긴 하지만 놀라운 변화가 아닌가. 지난달엔 오기로 한 우편물이 도착하지 않아 담당 집배원 전화를 어렵게 알아내 여러 차례 전화해 겨우 통화가 되었었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세 번째 결제어음을 받았다. 쥐꼬리만한 금액이지만 1년만에 수확을 내고 있으니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받은 어음을 극단과 도요의 전체 살림을 사는 윤주님께 갖다주고 며칠전 자갈치에서 산 마른멸치와 매실 엑기스를 주었다. 요즘 서울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니는데 너무도 씩씩하게 병과 싸우고 있다. 메리놀병원에 방사선치료를 받으려고 입원했다는 처제 생각도 났다. 동서와 통화했는데 아직 암세포가 뼈까지는 전이되지 않았고 방사선치료가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처제는 말기암이지만 항암치료는 받지 않고 있다. 둘 다 씩씩하고 강한 여성들이니 병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꼭 이겨야 한다. 그런저런 생각에 우울해 여름밤을 뒤척였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집 여기저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 정돈이 거의 다 되었고 집기들도 제 자리를 잡았다. 중고 냉장고와 인덕션, 중고 옷장, 집들이 때 선물 받은 선풍기가 우리의 새살림이다. 나머지는 쓰던 것을 가지고 왔다. 오래전 정선생에게서 받았던 스피커처럼 그동안 수영집 구석에 잠자고 있다가 빛을 본 것도 있디. 출판사 업무용 책상 좌우로 주정이 선생의 판화 한 점과 도요 현판이 자리잡았다. 그 현판 아래 작은 창으로 신어산 자락이 보인다.
그 창 너머 우리 부부가 일군 텃밭이 있다. 고구마 줄기가 지금 무성하게 뻗어 나가고 있다. 도요 고개에서 텃밭으로 옮겨 심은 자귀나무가 죽은 듯 잎이 다 시들더니 어린 가지에 작은 새잎이 돋고 있다. 감나무 옆에 옮겨 심은 방아도 자리를 잡았다. 어디서 날아와 담벼락 귀퉁이에 뿌리내린 호박도 벌써 잎이 무성하다. 그 자리쯤에 호박을 심어 호박넝쿨이 담을 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귀퉁이 그 자리에 정확히 호박이 제 스스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오묘한 일이다.
군불 넣는 아궁이가 있는 아래채는 단원들의 피로를 푸는 황토방으로 만들려고 해체된 상태로 있다. 밀양공연축제가 끝나고 다른 일이 없어야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것 같다. 그바람에 마당 한쪽은 폐자재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군불을 넣기 시작하면 아궁이로 다 들어갈 것들이다.
대문 쪽, 편지함 속의 새알을 다른 데로 옮겼다. 어미새가 낳고 둥지까지는 만들어주었으나 그 뒤로 품으러 온 것 같지 않다. 어미새의 판단 착오일 것이다. 나무에 새긴 도요출판사 현판이 오른쪽 도로명 주소 밑에 붙었다. 저 현판이 비를 맞고 바람에 시달려 닳고 닳을 때까지 도요가 좋은 책으로 명맥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저녁에는 밀양공연축제에 넘어가려 했는데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가지 못했다. 윤주님도 몸이 안 좋아 가지 못했다. 축제에 가지 못한 사람들끼리, 아내, 윤주님, 향주님과 저녁을 먹었다. 막걸리 생각이 나 동네 가게에 갔더니 선곡 동서와 동기라는 아저씨가 다른 한 분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향주님이 차린 저녁, 막걸리를 사이좋게 나누며 아주 맛있게 먹었다. 축제에 가지 못한 주변부끼리의 단합대회라고나 할까. 향주님은 보기드문 애주가다. 우리 딸 온이 보다 한 살 아래라고 하는데 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 딸이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윤주님도 딱 한 잔 했다. 좋은 동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