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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토

고구마를 심다

 

 

어제 아프리카 시인들을 돕는 자선 시낭송 하고 좀 고단했지만 고구마 심을 욕심에 일찍 집을 나섰다. 시기적으로 좀 늦은 터라 하루라도 서둘러야 할 판이고, 장맛비가 이쁘게 오시니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 고구마는 동절기 우리의 중요 양식인데다 마당 한편의 밭에 딱히 다른 걸 심을 형편이 아니었다. 도요의 토질은 모래땅이라 감자와 고구마밖에 심을 게 없다. 고구마 모종을 구하는 게 관건이었다. 김감독에게 고구마 줄기를 좀 구해달라 부탁해놓았지만 극단 일이 바쁜지 소식불통이다. 김 감독 부인을 만나 물어보니 이순신 공연 때문에 일본에 갔다고 했다.

 

삼랑진읍에 차를 멈추고 종묘사도 가보고 농기구 파는 아저씨에게 수소문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장날까지 기다리기에도 그렇다. 농기구점에서 호미 한 자루를 샀다. 어떻게 수소문 하든 오늘 중에 고구마를 심고 말리라. 읍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선지국밥 한 그릇씩을 먹고 도요로 들어갔다.

 

추적추적 비오는 도요 입구에 할머니 몇 분이 정자에 한가롭게 놀고 있어 고구마 줄기 얻을 곳을 물었다. 대여섯분의 할머니가 왠 젊은 사람, 하는 표정으로 반갑게 우리를 반겼다. 이장 집에 가보라는 말에 이장집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무작정 들어간 집에서 허탕치고 나와 포기할까 하다가 다시 집을 나서 마을회관을 찾아갔다. 주인아주머니가 전화로 수소문해 보더니 고구마 줄기를 구할 수 있는 집을 가르쳐주었다.

 

연극촌 바로 옆집이었다. 아저씨를 따라 강쪽의 밭으로 갔다. 아저씨의 밭도 4대강에 수용되어 밭이 많지 않다고 했다. 얼마씩 보상 받았느냐 물으니 위치에 따라 평당 10만원에서 30만원까지 받았다고 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고 싶었지만 초면에 시건방진 질문인 것 같아 참았다. 아저씨를 따라 비닐하우스로 들어서니 아주머니가 고구마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심을 밭이 얼마나 되느냐기에 마당에 붙은 서너 고랑이라고 했다. 사실 그보다 더 되지만 그렇게만 말했다. 도시에서 흘러온 초보자 주제에 일곱 여덟 고랑쯤 될 거라 말할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가 재빠른 솜씨로 고구마 줄기를 낫으로 끊어주었다. 나는 연극촌 사람들이 한밤중에도 고함을 지르며 연습하고 새벽부터 풍물을 치고 하는데 시끄럽지 않으냐 물었다. 무척 시끄럽다고 했다. 그런데도 도요 사람들의 항변은 아주 온순하다. 연극촌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한밤에 찾아와 우리 대장에게 ‘교수님, 우리 집에 한번 가보십시다. 여기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우리 집에 한번 가보십시다’ 하고 점잖게 말했다 한다.

 

며칠 전에는 새벽부터 풍물을 두드리는 바람에 나도 잠을 설쳤다. 도시 같았으면 몇 번이나 진정과 고발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웃간의 사소한 시비로 칼부림까지 나는 게 도시의 인심이다. 순하고 착한 도요 사람들이 고맙다. 나는 7월 10일 새집 마당에서 잔치가 있을 것이니 그때 오셔서 흥겹게 노시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것도 좋지만 예술촌에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 면민 체욱대회 할 때 꼭 좀 참가해 달라고 했다. 도요에는 제일 젊은 사람이 오십 중반이라 늘 꼴찌만 한다고 했다. 그건 걱정 마시라고 했다. 힘 좋고 발 빠른 배우들이 수두룩하니 1등은 이제 도요가 따 놓은 당상이다.

 

고구마 순을 한 아름 받고 돈을 얼마나 드려야할지 몰라 주머니에 있는 만 몇 천원을 다 꺼냈더니 아주머니가 질색을 하신다. 동네 사람끼리는 받는 게 아니란다. 이웃이 된 정으로 드리는 것이니 막걸리 한 잔 드시라고 했더니 그럼 오천원만 달라신다.

 

그렇게 구한 고구마 줄기를 신바람나게 들고 왔다. 아내가 대견해 했다. 평소 같았으면 자기가 나섰을 것인데 내가 어서 도요와 친해지라고 부러 내버려둔 듯하다. 윤주님에게 전화해 고구마 줄기 구해 놨으니 심으러 오라고 했다. 윤주님은 지금 건강이 좋지 않다. 흙을 만지며 이걸 심다 보면 대지의 기운을 온몸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한 보약이 없다. 가져가서 단원 숙소 근처에 심어보겠다고 해서 한 움큼을 덜어 주었다. 부지런히 밭고랑 일곱 개를 만들어 쉬지 않고 그것을 다 심었다.

 

 

 

단비가 오락가락, 비옷을 꺼내 입고 심었다. 아까 이장집을 물어보러 갔던 뒷집 아저씨가 지나가다 담 너머로 내가 일하는 걸 보고는 들어와 고구마 심기 시범을 보여주었다. 비스듬하게 심는 것은 맞지만 잎은 위로 치켜들도록 심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해를 봐야 고구마가 크지. 가까이 살게 되었으니 아저씨가 자주 보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

 

 

 

 

 

도요 사람들은 아마 며칠 동안 우리 이야기를 하며 웃을 것이다. 어중개비 도시 사람이 하나 이사를 왔는데 이건 어쩌고 저건 어쩌고…………. 심심한 도요 마을에 재밌는 이야기거리를 제공했으니 그 또한 큰일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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