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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중요한 일일수록 얼떨결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도요로 오게 된 것도 얼떨결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새로 짓고 있는 도요림에 언제 어떻게 이사할 것인가를 두고 망설이는 사이, 동네 안에 빈집이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둘러 수영 집을 내놓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팔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걸 극단 공금으로 사들였고 우리는 세입자 신세가 되었다. 원하는 동안 살 수만 있다면 세입자 신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가 도요에 들어오는 것을 지원해준 대장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 오후, 이보다 좋은 날이 없지 싶어 가마솥과 요강을 도요 집에 갖다놓고 막걸리 한 병 놓고 큰절을 했다. 이 의식으로 우리는 이미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 안양로 274번길 385호의 주민이 되었던 것이다.

 

 

 

주소를 확인하며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보니 대문 앞 우체통에 새알 여섯 개가 짚에 싸여 있다. 전에 봤을 때는 밀린 공과금 고지서가 들어 있었는데 누가 그걸 치운 사이 어미새가 재빠르게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은 모양이다. 우체통에 깃든 이쁜 새알들, 기분 좋은 조짐이 아닌가. 우리도 저 새둥지처럼 오순도순 살았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리고 6월 14일 청소, 6월 16일 이삿짐을 옮겼다. 밥그릇과 이부자리, 컴퓨터 같이 우선 필요한 작은 짐들만 챙겼는데도 1.5톤 트럭에 한 가득이었다. 배우 두 분이 극단 트럭으로 짐을 옮겨주었다. 전화국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인터넷을 연결해주었다. 단지 뚜껑이 하나 깨진 것 말고는 이사는 무사히 순조롭게 순식간에 끝났다. 거리패의 힘이었다. 안 되는 것이 없다. 모두 몸이 빠르고 제각각의 기술과 장기를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여서 거리패의 일 처리 속도는 신기에 가깝다. 예술촌에 있던 쳔여권의 잡지와 책꽂이, 책상, 의자, 소파 등의 용품들을 순식간에 옮겨서 방안에 배치해 놓았다. 미안하고 고맙다.

 

 

두 집 살림을 위해 짐을 나누고 챙기고 정돈하는 일을 혼자 도맡은 아내의 수고가 컸다. 그 또한 미안하고 고맙다. 좀 거드는 시늉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내가 손을 대면 여지없이 탈이 난다. 뭐가 부러지고 깨지든지 순서가 뒤죽박죽이 돼 더 손이 가게 만든다. 나는 그저 짐이나 날랐다.

미루어둔 일을 챙기느라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이 아내가 보이지 않아 찾았는데 그 사이 김해시내 중고 가구점에 가서 냉장고와 옷장을 사왔다. 지펠냉장고 25만원, 두 짝짜리 옷장을 16만원에 샀다고 했다. 배달 온 아저씨 혼자 그걸 기술 좋게 집안까지 넣어주고 갔다.

 

이것으로 우리의 세 집 살림이 시작되었다. 부산 수영에 한 집, 김해 마사에 두 집, 김해 도요에 세 집. 골고루 드나들려면 엄청 바쁘게 생겼다. 마사는 이제 휴가 때나 가는 별장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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