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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배추 심다

 

반여동에서 비료 두 포대를 만원에 사서 차에 실었다. 배추 모종이 보여 지금 심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지금 마침 비가 오시니 안성맞춤이라 했다. 50그루 한 판을 만원에 샀다. 옷장에 넣어둔 여름 양복이 우기에 곰팡이가 서려있어 부산에서 삼랑진까지 오며 문을 연 세탁소를 찾았지만 허탕이었다. 일요일 휴무를 칼같이 지킬만큼 살림살이가 좋아졌다는 걸까. 목요일에 서울 시사사 표지 사진을 찍으러 가야 하는데 큰일이었다. 정 안되면 개량한복을 입고 가도 되겠지만 내일 아내가 김해시내 수영 가며 맡겨본다고 했다. 

 

 

도요에 들어와 정명이네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정명이네에 배추 모종과 비료 한 포를 주었다. 이걸로는 부족할테니 모종을 더 구해서 도요림 앞마당에 심어보라고 했다. 밥을 먹으며 이선생님이 어제 무척산 관광예술원에 간 이야기를 하셨다. 당장 극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더라며 같이 가보자고 해서 조인곤 이윤주 부부와 넷이서 무척산농원에 갔다. 10년 전에 여기서 황동규 선생님을 모시고 시낭송회를 연 적이 있는데 그 포스터가 아직 붙어 있었다. 농원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는데 수영장도 있고 오솔길 사이에 한옥들도 보였다. 아이들이 도자기 체험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노사장 부부와 같이 차를 마시며 이선생님이 연극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노사장 부인은 김해시 공무원인데 지난해 시인으로 데뷔했다고 했다.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많이 쓰시라고 했다.  

 

 

출판사 텃밭에 배추 모종 서른 포기를 삼열종대로 심었다. 배추를 심으려고 남겨둔 담벼락 쪽 한 고랑까지 고구마가 마구 줄기를 뻗어가고 있어 그것부터 잘라냈다. 땅에 몸을 착상한 지 얼마 안된 줄기들은 땅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줄기만으로도 땅에 착상해 뿌리까지 내릴 줄 아는 고구마의 생명력이 정말 놀라웠다.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연거푸 뚝뚝 흘러내리는 땀을 여린 배추잎이 받아먹었다. 땀을 거름으로 받아 마셨으니 이 배추들은 잘 자라줄 것이다. 모든 작물이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농부의 땀보다 좋은 거름과 추임새가 또 있겠는가. 지난번 옮겨심은 어린 자귀나무도 한달동안 애를 태우며 바라본 탓인지 믿음직한 새잎을 피워올렸다. 살아줘서 고맙다.

 

 

배추를 다 심고 샤워를 하고 있는데 이은주 시인 가족이 왔다. 올해 초에 입단했던 딸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극단을 떠난다고 했다. 이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온가족이 밀양연극촌으로 갔다가 도요에 계시다는 말에 부리나케 여기로 왔는데 대장님은 그 사이 밀양으로 가셨다. 뮤지컬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성공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살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된 지금 젊은 세대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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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저녁 모임이 있어 나갔다 돌아와 현관 앞에 들어섰는데 바닥이 미끈미끈하다. 불을 켜보니 며칠 전 자갈치에서 사온 마른멸치가 바닥에 흩어져있다. 아내가 도요에 가져가려고 일부를 현관 앞에 내놓았는데 그걸 고양이가 입을 댄 모양이다. 고양이가 입을 댄 멸치 한 묶음을 화단에 놓아두었더니 오며가며 고양이가 다 먹어치웠다. 오늘 아침에는 녀석이 담벼락에 앉아 또 없냐“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말뚱말뚱 쳐다보았다. 녀석들에게 우리는 완전 봉이다. 

 

 

도요에 딴 살림을 차린 뒤 수영집에 무심했던 터라 수영집 식구들에게 미안했다. 목련과 라일락 가지가 너무 무성해 이발을 해주고 새로 핀 상상화와 벌개미취를 어루만져 주었다.   

 

 

6년 동안 같이 살아준 것들이 작은 숲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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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벼르던 금국사 행을 오늘 단행했다. 산중 멀리 있는 절도 아니고 집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절을 오래 벼르기만 했다. 시멘트 포장이 된 산문을 오르다가 길에 수북이 떨어진 밤송이도 줍고 달개비 메꽃 애기똥풀꽃 달맞이꽃 나팔꽃 등을 만났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길부터 경사가 급해 오늘은 초입까지만 갔다.

 

 

 

 

 

 

 

금국사는 작고 단정한 절이었다. 수련이 크는 연못도 있고 황토 토굴도 있고 대웅전은 3층이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거기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니 아기자기하게 자리를 잡은 도요림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절 마당에 내려서니 조금 전에는 사납게 짖던 개가 오래전 벗인듯 자꾸 내 발치에 달라붙었다. 금동이라고 했다. 금국사의 금 자를 딴듯한데 우리 집 동물들의 애칭이 모두 동자 돌림이었으니(개동이 고동이 끼동이) 녀석은 우리와도 친척뻘이다. 요사채에 들어가 보살님이 내준 차 한 잔을 마셨다. 따님이 미술교사를 하는데 도요창작촌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15년 전쯤 직지사 해인사 등을 거쳐 지금의 주지스님이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시고 토굴생활을 시작한 뒤 금국사를 창건했다고 했다. 세수가 예순에 가까웠다는 스님은 오늘 뵙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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