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나의 데뷔작] 2020, 대산문화 가을

 

 

1986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연장론 -

 

 

연장론

 

최영철

 

 

 

우리가 잠시라도 두드리지 않으면

불안한 그대들의 모서리와 모서리는 삐걱거리며 어긋난다

우리가 세상 어딘가에 녹슬고 있을 때

분분한 의견으로 그대들은 갈라서고

벌어진 틈새로 굳은 만남은 빠져나간다

우리가 잠시라도 깨어 있지 않으면

그 누가 일어나 두드릴 것인가

무시로 상심하는 그대들을 아프게 다짐해 줄 것인가

 

그러나 더불어 나아갈 수 없다면

어쩌랴 아지 못할 근원으로 한쪽이 시들고

오늘의 완강한 지탱을 위하여 결별하여야 할 때

팽팽한 먹줄 당겨 가늠해 본다

톱날이 지나가는 연장선 위에

천진하게 엎드려 숨죽인 그대들 중

남아야 할 것과 잘려져 혼자 누울 것은

무슨 잣대로 겨누어 분별해야 하는가를

 

또다시 헤어지고 만날 것을 빤히 알면서

단호한 못질로 쾅쾅 그리움을 결박할 수는 없다

언제라도 피곤한 몸 느슨히 풀어 다리 뻗을 수 있게

一字十字로 따로 떨어져

스스로 바라보는 내일이 있기를

수없이 죄었다가 또 헤쳐놓을 때

그때마다 제각기로 앉아 있는 그대들을 바라보며

 

몽키 스패너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이스 프라이어의 꽉 다문 입술로

오밀조밀하게 도사린 내부를 더듬으며

세상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제나름으로 굳게 맞물려 돌고 있음을 본다

 

그대들이 힘 빠져 비척거릴 때

낡고 녹슬어 부질없을 때

우리의 건장한 팔뚝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누가 달려와 쓰다듬을 것인가

상심한 가슴 잠시라도 두드리고

절단하고 헤쳐놓지 않으면

누가 나이와 부단한 오늘을 일으켜 세울 것인가

 

 

-------------------------------------------------------------------------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

 

최영철의 '연장'은 그 두 편의 그림과는 달리 목수가 사용하는 연장의 존재 이유를 밝혀보려 한 특이한 시이다. 그것은 서정적 시도 아니며 서사적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추억이라는 서정적 공간을 마련하지도 않고 사건의 계기성을 중요시하는 서사적 공간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아귀를 맞추는 연장들의 기능과 그 기능을 가능케 하는 해체된 대상들의 있음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보는 사람과 보이는 것의 긴장 위에 세워져 있는 특이한 시이다. '연장'은 해체와 복원, 무질서와 질서의 긴장을 시적 주제로 내보이고 있지만, 세상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제 나름으로 굳게 맞물려 돌고 있다. '연장'의 시인은 그 어느 한면에서는 앞의 두 시인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들을 종합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시인이다. 심사위원들은 투표를 하기로 하였고, 만장일치로 - 세 사람인데 만장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약간 쑥스럽지만 - 최영철의 '연장'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정진하여 대성하길 바란다. - 심시위원 / 김남조, 황동규, 김현

 

 

-----------------------------------------------------------------------

 

[등단작 관련 산문]

 

 

시 연장론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198512월 초에 쓰여진 시다. 삼십년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 시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좋은 일의 반추가 주는 안락한 평화나 좋지 않은 경험이 주는 불길한 환기를 나는 똑같이 싫어한다. 어떤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고 어떤 것에서도 자유롭고 싶지 않은 것이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나의 다짐이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것과 자유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 반대로 익숙한 것과 자유를 동일선상에 놓고자 한다. 무엇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그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고 그럴 경우 이것과 저것 사이의 긴장관계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남에게 관대하고 나에게 혹독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 무엇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하고 또 그 무엇에도 자유롭지 않아야 한다. 그런 다짐은 무엇보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고 납득할 만큼 내 시나 삶이 호사스럽지 않다는데 있다. 신춘문예 마감 전날 밤 나는 이 시를 썼다. 부산에서 나오던 무크지 <지평>1984년 작품발표를 시작한 뒤여서 신춘문예의 꿈을 접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198512월의 어느 아침, 집으로 배달된 한국일보 1면 하단에 박아놓은 <신춘문예 내일 마감>이라는 활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것은 늦잠을 자고 있어난 나를 두드려 깨운 매운 회초리였다. 그만 적당히 주저앉고 싶었던 나를 향해 날아든 느닷없는 돌팔매질이었다. 나는 울화가 치밀어 신문을 내던졌지만 붉은 바탕의 흰 글씨는 더 선명하게 눈을 치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10년 동안 연례행사처럼 투고 해 한두 번 최종심에 오른 것이 고작이었다. 나의 재능은 거기까지였다. 나의 재능은 우둔했고 나를 재치고 나온 당선작들은 충분히 유려하고 장대했다. 신춘문예는 하늘이 점지한 자에게나 내리는 축복이었다. 시를 보내놓고 한 보름 정도 막연한 기대로 가슴이 설레고, 그것이 더 큰 실의로 이어지면서 연말연시의 나는 초췌한 패잔병의 몰골이 되어야 했다. 그 진저리나는 경험들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는 이미 서른이었고 변변한 살림살이조차 없는 단칸방과 아내와 두 아이들 사이에서 이제는 정말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했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면 시가 보장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시가 없다면 살아갈 방도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생각이 참으로 우매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라도 쓰지 않았다면 세상을 살아낼 방도가 도대체 없었을 것이므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이었다. 그날 본 신문 하단의 붉은 글귀는 최후통첩과도 같이, 망망대해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다가온 한 올 지푸라기처럼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한 번 더 안간힘으로 몸부림을 쳐서 그 지푸라기를 붙잡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날 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단칸방 윗목에 엎드려 이 시를 썼다. 나는 서른을 넘기고 있었고 수중에는 동전 몇 닢뿐이었다. 나에게 온 죄로 온갖 박대와 가난을 견디고 있는 아내와 아무 호사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잠든 머리맡에서 나는 이 시를 썼다. 이제 지랄 같은 신춘문예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이것으로 더 이상의 기대와 몽상은 버리기로 약속하며, 이 시를 썼다. 식구들이 잠든 그 막바지의 시각,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도통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진퇴양란의 그해 겨울이 또 한 편의 시를 쓰게 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게 온 모든 절망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나의 절망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 겨울의 절망이 나를 두드려 깨우지 않았다면, 그 겨울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나를 들쑤셔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만 중도에 시의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내게 온 그 많은 절망들에게 빚지고 있다. 마감 당일 원고를 부치고 나니 홀가분했다. 애썼다. 나는 허탈해지려는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책방을 하다 말아먹고, 첫 직장으로 1년 넘게 다닌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친척 형님이 만들어 팔던 미니카 몇 대를 빌려 영업을 다닐 때였다. 공터를 골라 전을 벌리면 한 며칠 호기심으로 아이들이 들었지만 곧 썰물처럼 삐져나가 버려서 기계 값도 못 건질 형편이었다. 그리고 1223일인가 24일쯤, 궂은 겨울날씨에 장사를 공치고 연장통을 들고 털레털레 돌아온 내 방으로 막내 동생이 찾아와 부모님 댁으로 걸려온 전화를 알려주었다. 한국일보 문화부 당래부 기자라고 했다. 당래부? 이상한 이름도 다 있네. 일러준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장명수 문화부장이 받아 축하한다고 했다. 장명수칼럼을 보려고 나는 한국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통일호 첫차를 타고 서울로 가 한국일보사 건물 꼭대기 송현클럽에서 당래부 기자가 아닌 박래부 기자와 마주 앉았다. 11일자 신문에 시와 인터뷰 기사가 나오고 며칠 뒤 부산의 한 텔레비전 프로에 얼굴이 나갔다. 미니카 장사는 계속 시원찮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형편도 아니었다. 잠시 일손을 놓고 공터 앞의 중국집에 들어가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 앉아 있는데 여주인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어제 저녁 텔레비전에 아저씨하고 영판 닮은 사람이 나옵디더.’ 그래서 내가 그랬다. ‘닮은 사람이 어디 한들입니꺼.’

 

 

대산문화 2020 가을호

 

'詩와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성길 시인을 추모하며  (0) 2022.10.24
나는 속는다, 늘  (0) 2022.10.12
걷는다  (0) 2020.05.19
위기의 시대, 새로운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  (0) 2020.04.17
한마디 말의 위력  (0) 2020.04.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