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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새로운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


                                                                                                                  최영철  

 

내 아는 후배들 중에는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도 혼자 사는 분들이 여럿 있다. 인사치례 삼아 더 늦기 전에 어서 결혼하셔라는 말을 건네보지만 묵묵부답이거나 단호하게 손을 내젖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를 물어보기가 뭣해 더 이상 말을 보태진 않았지만 내심 서운하고 아쉬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만큼 내가 구세대가 된 것 같은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독신으로 사는 게 부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세상에 결혼은 자유로운 진로를 가로막는 족쇄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부모님과 처자식들 사이에 에워싸여 힘겨운 가장 노릇을 하다보면 독신의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그들이 내심 부러울 때도 있다. 가족의 벽은 이중삼중으로 애워싼 울타리 같은 것이어서 생각하기에 따라 무척 힘겹고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기만 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고 보니 십여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나의 아버지는 시골의 가난한 농가 셋째 아들로 테어나셨는데 젊어 부산으로 나와 화물차 조수를 하셨다. 아는 사람을 대신해 가셨는지 군대를 두 번 갔다는 이야기도 하신적이 있다. 어머니와 결혼해 시골 큰집 부엌 문간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나를 낳았다고 하셨다.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얻은 첫 직장이 화물차 조수였는데 내가 태어날 즈음에는 부산 법일동 산동네에서 셋방살이를 하셨다. 그 방이란 게 작은 방 하나를 합판으로 나누고 벡열등 하나를 같이 쓰는 구조였다고 했다. 내가 울음을 터트리기라도 히면 어머니는 나를 업고 가파른 달동네 골목을 배회해야 했다.

이런 사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 세대 대부분이 겪은 성장사였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와 비슷하게 무작정 도시로 나와 공장 노동자가 되었던 우리의 누이들은 고향에 두고온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어엿한 소녀가장이었다.

 

어려운 시절을 버티게 한 힘

 

이 이야기를 아직 우리 아이들에게 해보지는 않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만큼이나 캐캐묵은 이야기인데다 그런 옛날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를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우했던 자기 세대의 경험을 다음 세대의 나태와 나약을 다스리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좋은 방식이 아니다. 그 시절 그렇게 살았던 것은 험난했던 시대상황과 무능했던 선조들과 무기력했던 자기 세대 탓이지 이제 태어난 자식 세대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대간의 거리는 세상의 변화 속도와 비례해 형성된다. 1920년대생 부모세대와 1950년대생 자녀 세대가 느꼈던 세대차보다 1970년대생 부모와 2000년대생 자녀 세대가 느끼는 세대차는 미교할 수 없을만큼 크댜. 이대로 가다가는 부모 부양이나 효도 같은 개념이 케케묵은 이야기를 넘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다. 내리사랑이라는 말대로 가족 사랑은 서로 주고 받는 게 아니라 계속 아래로 대를 물려 이어지는 게 맞다. 그렇지 않고 그 공덕을 보상받으려 한다면 예기치 않은 갈등과 파국을 자초할 수 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이니 효의 방식 또한 그에 맞춰 변화해 갈 것이다.

 

위기의 시대, 가족의 가치는 무엇인가

 

가족간의 사소한 말다툼이 끔찍한 참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가끔 보고 있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새상의 변화에 아랑곳없이 낡은 옛날 방식으로 신세대 삶의 방식을 제단한다는 반론에 부딫칠 수 있다. 세대 차와 세대 갈등은 자기중심적일 때 커진다. 1950년대 생이 겪었던 세대 갈등보다 2000년대 생이 겪는 세대 갈등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조부모와 부모님은 물론이고 다수의 삼촌 고모 사촌과 형제들 사이에서 성장한 나와,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주위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우리 손주들의 가치관과 인성이 같을 수는 없다.

가족의 구성은 삶의 방식과 보조를 맟추어 변화해 왔다. 농경이 주를 이루던 사회에서는 대가족의 협업이 필요했지만 오늘과 같은 정보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사회는 움직인다. 한 사무실에 근무하면서도 서로의 업무 공간은 개방형이 아니라 밀패형이다. 같은 부서에 일하면서도 동료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롸같은 구조는 가족 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의 가정은 단촐한 핵가족이어서도 그렇지만 서로 긴 이야기를 나눌만한 공통화재를 찾기 어렵다. 우스개말이지만 부부 간에도 밥 먹었나?, 애는?, 자자, 이 세 마디를 넘어서는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어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세 마디 말을 경상도식 가족 사랑의 축약된 표현으로 이야기한바 있다. 밥 먹었나?‘는 가정 경제를, ’애는?‘ 자녀의 무탈을, ’자자는 부부의 사랑을 담은 말로 풀어보았었다. 이 세 마디 말에 담긴 가족 사랑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책임을 공유하며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려는 가족 구성원끼리의 배려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속이 전제되지 않는 배려야말로 모든 공동체가 지향해야 말 최선의 규범일 것이다. 가족은 짐이 아니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최근 지구촌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공포스러운 전염력 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오랜 세월 인류가 유지해온 소통과 유대의 공동체 정신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나없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서로의 눈길을 피하며 바삐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공포심을 느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이 굳게 닫아 건 빗장을 활짝 열고 모두가 아름다운 대자연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과 맑은 헷살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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