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한 마디 말의 위력


                                                                                                                     최영철

  

말솜씨가 어눌한 나는 말 잘 하는 사람이 부럽다. 소박한 재료를 가지고도 맛깔스런 음식을 빚어내는 요리사처럼 흔한 일상어로 그럴듯한 말의 성찬을 빚어놓는다. 그런 사람들의 재주가 있어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그와 달리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로 곤란한 지경에 처하는 경우도 있다. 잠시 의절을 하기나 평생 반목하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심하면 살인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웃끼리 무단주차를 시비로 사냥총을 난사한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명절 날 사소한 말다툼으로 형제간에 칼부림이 일어난 사건도 있었다. 사업상 크고 작은 거래를 결정하는 일에도 한마디 말이 가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불리한 조건을 성심을 다한 성의 있는 말로 극복하는 경우도 있고 너무 자신만만하게 방심하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 앞뒤를 가늠하는 과정이 주어지는 글과 달리 엉겁결에 제어할 겨를도 없이 튀어나오기 말 때문에 빚어지는 불화들이다. 글은 다시 읽고 고칠 여유를 주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 방식이 너무 조급하고 폭력적이며 예의가 없고 무책임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상대방을 따뜻하게 배려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가만히 감싸주는 언술이 아니라 그저 상대방의 허점과 결점을 들추어내고 이간질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 자극에 충동적으로 대응해서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 요즘의 소통방식이다.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뜯어말려 진정시킨 뒤에 그 연유를 들어보면 지극히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된 경우가 많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금 나라 안은 온갖 허장성세가 난무하고 있다.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데 치중하기 보다는 남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일에 더 열심이다. 누가 더 나은 후보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덜 부패된 후보인지를 판가름해야 할 지경에 처해 있다. 많은 유권자들은 또 잠시 정치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영양가 있는 말이 그리운 이즈음천마디를 이긴 한마디(헬게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북스코프)|는 소크라테스에서 조지부시에 이르기까지 26백년동안의 명언에 얽힌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시간은 돈이다처럼 누구나 좌우명으로 삼을만한 금언, ‘주사위는 던져졌다처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한마디, ‘나에게는 꿈이 있다처럼 전 인류의 가슴을 울린 말 등 총 70인의 한마디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엮었다. 그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어원을 문제 삼은 부분도 몇 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알고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서양 철학의 출발을 알린 탈레스의 말이라는 것.

이와 달리 설화, 역사를 뒤바꾼 치명적 말실수(이경채 지음. 현문미디어)는 한 마디 말로 화를 자초했던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는 책이다. 앞의 책이 한마디 말의 위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경우라면 이 책은 한마디 말로 화를 자초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묻혔던 사람들의 경우이다. 태종의 처남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 기개가 하늘을 찔렀던 남이 장군, 신숙주의 아들 신정, 잘못된 선택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연산군의 처남 신수근,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등 우리 역사에서 세치 혀의 말실수로 불행한 말로를 보낸 인물들을 소개했다.

한편사람이 따르는 말 사람이 떠나는 말(히구치유이치 지음. 홍성민 옮김. 대교베텔스만)이 꼽고 있는 말실수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도덕적인 설교, 근거 없는 결론, 트집, 추상적이고 어려운 말, 자기 자랑, 허세, 흔한 말, 차별의식, 쉽게 감동하고 지나치게 친절한 말 등을 예로 들었다.

또 다른 책 직장인이 자기 발등을 찍는 말 한마디(오쿠시아유미 지음. 정은지 옮김. 예문|는 현대판 설화를 방지할 여러 가지 조언을 담은 책이고,내 말에 상처 받았니(상생화용연구소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는 한국식 말하기의 종류를 무심코 말하기, 자존심 긁기, 권위로 누르기, 배려하여 말하기, 상황 바꾸어 말하기 등 재미있는 사례 중심으로 소개한 책이다.

 


'詩와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걷는다  (0) 2020.05.19
위기의 시대, 새로운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  (0) 2020.04.17
너나너나너나너  (0) 2020.01.12
연장론 생각  (0) 2019.11.26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0) 2019.10.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