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얼음 강을 건너다


                                      이 영 옥


강을 건널 때가 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부리를 담금질하던 천둥오리떼들도 떠날 때가 왔다

강은 조바심이 일어 가장자리마다 살얼음을 깔았다

중심을 향해 진을 쳐오는 얼음을 밤새 밀어내며

강은 오래 뒤척였을 것이다

날이 풀린다고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발밑에서 금가는 소리를 쩍쩍 밟으며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대를 건너왔다

하늘을 빈칸인 채로 두고

아직도 떨고 있는 갈대들의 마른붓끝을 보았다

떨림은 발밑에서 눈앞으로 점점 확장되었다

얼음 구멍은

격정까지 꽁꽁 얼리며 마음을 닫아걸었다

굽이치던 물결은 강의 늑골 깊숙이 박혀 있었다

마음은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강물은 녹았다

문득 제 가슴 열어젖히고 큰 소리로 우는 강

강이 스스로 울음을 모두 비워낼 때까지

나는 그대라는 혹한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시집 「사라진 입들」천년의시작


1960년 경주 생. 2004년 계간 시작 신인상.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

  또 다시 새로운 출발이다. 1월은 강의 상류에 자리한 강나루에 비길만하다. 나룻배를 타고 먼 여정을 떠날 수도 있고, 강 건너편 다른 세계로 갈 수도 있다. 1월은 그 진로를 위해 놓인 첫 징검돌이다. ‘부리를 담금질한 천둥오리 떼’처럼 우리는 여장을 챙겨 첫발을 내딛는다.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시간을 시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대’라 했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혹한’이라 했다.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는 말자. 그 깊이와 넓이는 알 수 없으나 저 강 건너 더 큰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최영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