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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08.1/

 

다른 경향의 시 읽기/ 김 언

 

 


토마토

 

                    최 영 철


  아무것도 없더니 아기 불알만 하구나 아기 불알만 하더니 아기 주먹만 하구나 아기 주먹만 하더니 아기 머리통만 하구나


  흙빛이더니 연초록이구나 연초록이더니 연분홍이구나 연분홍이더니 발갛게 발갛게 다 끓어 넘쳤구나


  몇 날 며칠 삼킨 해를

  한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터질 듯한 너의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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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시는 나의 시와 반대여야 한다

  모든 시는 나의 시와 반대여야 한다. 이 과도한 욕심이 시를 포기하게 만들고 내일이면 다시 미련을 남기고 무언가를 끝없이 끼적인다. 그것은 한 단어일 수도 있고 한 문장일 수도 있으며 무지막지하게 긴 산문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시라고 발표하면서 나의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를 겨냥할 필요는 없다. 일단 써놓고 보면 모든 것이 반대쪽의 글이다. 어딘가의 반대쪽에 있는 글은 그래서 매일 탄생한다.


                               *

  두 점 사이에 직선 하나가 지나간다. 떨어져 있는 두 점 사이를 정확히 이등분한 자취를 따라가면 그것이 또한 직선이 된다. 어떠한 점도 직선을 사이에 두고 그 반대편에 대칭이 되는 점을 가진다. 따라서 점은 무한한 수의 반대편 점을 가진다. 당신이 무언가를 썼다면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점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위치를 가진다면 그것은 나머지 모든 글들과 반대되는 지점을 스스로 간직하게 된다. 그러니 애쓰지 말라. 당신의 글은 이미 유일무이하다. 어떤 지점에서도 반대되는 글을 지금 쓰고 있지 않는가.


  사실, 모든 면에서 나와 반대되는 인간은 거울 속에 있다. 모든 면에서 똑같은 그가 나를 반대하고 있는 현상이 반갑기도 하고 달갑지 않기도 하다. 궁금하기도 하고 식상하기도 하다. 이상李箱 이후로  나의 흥미는 거울 속에서 멀어졌다. 거울 속의 그 인간도 더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지 않는다. 다른 인물을 찾자. 다른 시를 얘기하려고 오늘은 잡지 몇 권을 뒤적거렸다.

 

                             *

  반대편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극과 극이다. 나의 극은 죽음에 있다. 살고 싶으니까. 누군가의 극은 삶에 가 닿는다. 죽음을 보았으니까.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 식상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다 아는 얘기를 하는데도 계속 눈길을 끄는 시가 있는가 하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도 외면하기 힘든 시가 있다. 둘 다 시선을 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미 다 아는 얘기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얘기. 불필요한 이항대립을 또 하나 끌어들이자면 우리가 읽는 시는 크게 이 두 갈래로 나뉜다. 매력적인 시는 이 두 갈래와 무관한 지점에서 빛난다. 자꾸 눈길을 끄는 시가 있으면 그것이 당신에게 좋은 시이며 매력적인 시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느냐 못 알아듣느냐는 차후의 문제다. 다 알면서도 빠져드는 매력과 뭔지 모르겠지만 자꾸 빠져드는 매력. 나의 피가 끌리는 매력은 후자이지만, 전자의 매력 앞에서도 종종 마음을 뺏기는 나를 본다. 나무랄 생각은 없다.


                                 *

  토마토는 둥글다. 근래에 읽은 「토마토」라는 시도 둥글다. 둥글고 둥근 세계가 하나의 극점을 향해서 치닫는다. 마치 해처럼 끓어 넘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아기는 자라고 토마토는 하루가 다르게 굵어지고 그 빛깔은 발갛게 발갛게 익는다. 절정의 순간에 들어와 있는 토마토. 너의 볼 속에서 터지는 그것을 해라고 한들 나는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터질 듯한 너의 볼을 다시, 해라고 한들 나는 고개를 가로저을 생각이 없다.


                                *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이야기. 이것은 살아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을 키워주면서 부풀리는 이야기. 거기서 우리는 삶의 한 정점을 보고 죽음의 반대편에서 빛나는 눈부심을 보고 잠시 웃는다. 아주 잠시 죽음을 잊게 하는 이 시를 두고 내가 써 왔던 유령의 시들이 언짢아해 할 이유는 없다. 아주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툴툴 털고 나오면 된다. 유령도 헤어 나오기 힘든 삶의 눈부신 매력을 오물오물 씹다가 뱉을 것인가 삼킬 것인가. 불필요한 고민이 불필요한 시를 키운다. 그것도 토마토라고 익는다. 이렇게, 이렇게 반대편의 시를 또 궁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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