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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가와 조선학교 '희망의 詩' 릴레이40]  
 
  이 꽃 받아라 높고 푸른 하늘 되어라
                               -에다가와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최 영 철

 

  
  책장을 펼쳐라 아이들아
  바다 넘어 네 어머니 아버지의 땅
  남쪽 창가 가득 내리는
  이 환한 햇살 너에게 보내니
 
  책장을 펼쳐라 아이들아
  바다 멀리 일본 땅 에다가와 조선학교
  옹기종기 모여 책 읽는
  너희 어깨 위로 이 햇살 보내니
 
  책장을 펼쳐라 아이들아
  백두에서 한라까지 삼천리 큰 산맥이 될
  조선의 아이들아 대한의 아이들아
  온 누리에 퍼지는 이 햇살 받아라
 
  책장을 펼쳐라 아이들아
  먼 산 바다 너머 개나리 무궁화 진달래
  종종종 앞 다투어 달려가고 있으니
  이 꽃 받아라 높고 푸른 하늘 되어라
 


프레시안  2007-10-25 오전 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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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음의 쓸모있음, 쓸모있음의 쓸모없음 


최 영 철


   과민한 탓이겠으나, 시 쓰는 일이 공허하고 초라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어떤 식으로든 시의 쓸모를 스스로 규명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줄곧 그랬지만, 누가 나를 시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괜히 부끄러워져 쥐구멍이라도 찾아들고 싶어진다. 그 부끄러움의 저변에는 그들에게 아무 쓸모없는 노동으로 비쳤을 시 쓰는 일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다. 한때의 시인들은 그런 시선에 초탈할 수도 있었겠으나 실용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지금 그런 모면책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시 산업의 제자리걸음과 퇴보는 시적인 과장과 임기웅변, 턱없는 자존심으로 버텨온 시인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렇다 할 기득권이 없는 오늘의 시l인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근본적으로 시는 늘 맨주먹으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신성분들, 출생 학력 경력 등 예전에 그러저러하였다는 것은 시인에게 무용지물이다. 늘, 지금, 새롭게, 다시 출발해야 하는 시인에게 그 장신구들은 언제나 무용지물이다. 수중에 다소간 거머쥔 것이 있더라도 헌신짝처럼 그것을 떨쳐버려야 하는 것이 시이기 때문이다. 다른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경륜과 자산을 축적하고 거기에 기대는 행위는 당연한 일이지만 시에서는 그것이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시는 배가 불러 뒤뚱뒤뚱 뒷짐을 지고 가는 거드름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방식이다, 이제 좀 살만해져 한숨 돌리려는 상황을 비난하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시는 정말 인장사정이 없는 양식인 것도 같다. 그래서 더 두렵고 만만치 않은 방식인 것도 같다.

    급격히 진행된 인간성과 환경의 파괴는 쓸모있는 것만 추구한 기술문명이 낳은  패악이었겠으나 최근 그에 대한 반성의 징후 또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도심 하천을 정화하고 녹지를 만드는 일, 주말농장을 일구고 자연의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 느림과 멈춤과 양보의 가치를 인식하게 된 것. 그러나 그런 생각들의 처음과 끝은 인간을 위한 발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지구를 망가뜨린 죄에 대한 대오각성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기위한 또 하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지금 잠깐 취해보는 화해의 몸짓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인들은, 그러한 문제들을 감응하는 인지능력과 해결하려는 자정능력이 누구보다 빼어나야 한다. 지금의 나는 그 감각이 둔해졌거나 그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반성한다. 병든 세계를 끌어안고 아파하지 않고 자기 일신만을 아파하지 않는지 반성한다. 찬밥 신세인 시의 밥그릇을 더 많이 먼저 차지하려고 안달이 나지는 않았는지 반성한다. 시의 쓸모를 빌어 그 안에 안주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한다. 급기야 그 쓸모의 덕으로 시를 통해 무엇인가를 거머쥐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한다.  

   시인의 과업은 씨를 뿌리는 것으로 족하다. 그 결실과 파장을 의식하면 씨앗을 뿌리는 일에 이런저런 계산이 개입될 것이다. 기왕이면 안정되고 수확 많고 시장성 있는 품종을 좋은 자리 골라 심게 될 것이다. 약을 치고 쓸데없는 가지치기를 하고 접을 부쳐 최대한의 소득을 계산할 것이다. 시의 본령은 소득을 계산하지 않는, 소득을 헌신짝처럼 여기는데서 출발한다. 시의 현실적 쓸모는 그런 쓸모없는 생각들에 있었고 그 순수성이 시를 이만큼 장수하게 했다. 시를 쓰는 나의 즐거움 역시 쓰는 과정에 겪는 이런저런 고통이면 족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나의 노동은 다른 노동에 비해 소출이 너무 빈약해 보여 마음이 흔들린다. 배고픈 이의 양식이 될 수도 없으며 나의 양식이 되지도 못한다. 내가 선택한 일이므로 나 하나의 불우는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겠으나 나를 쳐다보고 사는 가족들에게는 참으로 무능한 가장이 되어버렸다. 생각할수록 시 쓰기의 나날이 공허하고 궁색하다. 그렇지만 그렇게 흔들리며 갈팡질팡 가는 것이 시의 길이라고 나는 나를 위로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즈음 처가 근처의 잡풀이 무성한 야산 한 귀퉁이를 얻었다. 최근 그 땅을 개간하러 다니면서 다시 생각을 다잡고 있는 중이다. 시골 장터에서 삽과 호미 등 간단한 농기구 몇 가지를 사서 밭 가장자리부터 개간을 시작했다. 경사가 지고 풀이 무성한 땅은 자신을 방치한 세상에 항거라도 하듯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풀풀 흙먼지가 날리고 돌멩이들이 수북했다. 무엇을 심겠다는 계획도 없이 밭 전체를 뒤덮고 있는 풀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동네 한의원에서 얻은 약 찌꺼기를 뿌려 흙의 기운을 북돋았다. 농기계를 불러 일을 시키면 한나절이면 해결될 일이었으나 아내와 나는 여러 날에 걸쳐 그 지루한 손작업을 계속했다. 하루는 올무를 끊고 도망간 산돼지의 뒤를 사냥총을 들고 �아온 동네 사람이, 우리가 개간한 밭고랑을 둘러보며 이걸 다 직접 손으로 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쯧쯧 혀를 찼다. 모자라도 많이 모자란 사람들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손작업을 하는 것이 땅에 때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어설픈 경작을 시작하면서 기계로 땅을 갈아엎는 것은 초보자가 할 도리가 아니었다. 초보자 주제에 땅을 놀라게 하고, 그 땅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고라니와 풀벌레 같은 산 동무들을 놀라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시작해 묘목을 심고 감자 고구마 토마토 무 배추 등의 작물을 조금씩 심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수확을 내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땅은 생명을 품기에 아직 버거웠고 김을 매고 농약을 치지 않는 게으른 농사는 잘해야 우리 두 사람이 두어 번 맛볼 정도의 수확만을 허락했다. 고구마는 모두 산 동무들의 먹이가 되었는데 그것들을 심느라 들인 공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일이기도 했으나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누구든 배고픈 생명이 먹었으면 된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내가 유기농으로 가꾼 것이라고 자랑도 하고 싶었을 것이나 위급한 생명들이 먹고 굶주림을 면했으니 더 잘된 일이 아닌가. 좀 더 쓸모있는 행위로서 시의 독자들에게 공치사를 받고 싶었을 나의 욕망을 그 산 동무들이 깨우쳐 주었다. 인정받고 보상받기를 원하는 순간, 또 그 재미에 서서히 빠져드는 순간, 나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경작한 밭을 다녀간 산 동무들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들이 고맙게 잘 먹었다고 답례를 하지도 않았지만, 또 그 숫자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겠지만, 어설픈 나의 올해 농사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의 농사는 어차피 본전이 빠지지 않는 밑지는 과업이다. 묘목과 씨앗 값에, 하루 품삯과 교통비에, 아무리 따져도 본전을 뽑을 수 없는 밑지는 과업이다. 시 쓰는 일 역시 그러할 것이다. 아무리 수지타산을 맞추어 보아도 이 역시 본전이 빠지지 않는 밑지는 과업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밑지는 농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고 오랫동안 밑져왔던 시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배고픈 산 동무들의 양식이라도 되었다면 나의 농사는 헛되지 않은 것이고 마음 고픈 몇 사람의 양식이라도 되었다면 나의 시 쓰기 역시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오래 쓸모있는 것은 본디 그렇게 미미한 법이다. 그리고 지금 쓸모있는 것일수록 나중에 쓸모없는 게 될 공산이 크고 더 깊은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일깨워 준 것은 버려진 야산에서 만난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쓸모없다고 걷어냈던 돌멩이들을 다시 주워 가냘픈 묘목들의 테두리를 만들어 주었고, 잡초라고 무시했던 풀들과 냄새나는 오물은 썩어 좋은 거름이 되었다. 오히려 도시에서 가져간 쓸모있는 용품들이 곧 처분이 불가능한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시평 07 겨울 권두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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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의 이곳] <18> 시인 최영철 수영사적공원의 와목(臥木)
비스듬히 웅크려 담장 너머 세상의 허튼 구석 엿보는 은자(隱者)
부산일보 2007/11/08일자 035면 서비스시간: 16:00:55
 

사진 설명:수영사적공원의 와목을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최영철 시인은 와목을 알게 된 뒤 주위를 살피며 걷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그렇게 와목과 사랑에 빠졌다. 김경현기자 view@
그 나무가 처음 눈에 띈 것은 서너 달 전쯤의 산책길에서였다. 5년 가까이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나는 그 나무를 보지 못했다. 성의 북쪽 길을 돌아 낡은 주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면 거기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풀밭이 있고, 나무는 풀밭 가장자리 돌담 옆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는 자기 앞을 바삐 지나가고 있는 나를 5년 동안이나 멀찍이 바라보기만 했을 것이다. 어이, 하고 부르지도 않았고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나무는 그늘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 한가한 촌로처럼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인사성이 없다고, 어디 사는 누구 자식이냐고 타박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무의 관대함 때문에 나는 나무를 보는 데 5년이나 결렸다.

지난 여름 그 나무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을 휘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피다가 마침내 나는 돌담 아래 누워 있는 사철나무를 보게 되었다. 쯧쯧 혀를 차며 바삐 가는 나를 불러 세운 것은 비스듬히 누운 채로 크고 있는 사철나무였다.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탓이었을까. 그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즐비한 나무들과 시선을 맞추느라 약간 높게 잡았던 나의 눈높이가 문제였다.

그의 잎은 그의 눈이었다. 그의 잎이 사철 푸르게 된 것은 나와 눈을 맞출 날이 언제가 될지 몰라 늘 눈을 뜨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가 나를 기다린 것이, 내가 그를 만나야 하는 운명이 점지된 것이 5년 전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십 년, 아니 그 너머, 그는 일찌감치 이 자리에 진을 치고 나를 기다렸을 것이고 나는 먼 길을 빙빙 돌아 이제야 당도했다. 나는 그 나무를 와목(臥木)이라 부르기로 했다. 오래 전 한 글동무가 나에게 와산(臥山)이란 호를 붙여주었으니 그와 나는 이제 형제로서의 돌림자를 갖게 된 셈이다.

직립, 쓰러짐

사람은 걷고 나무는 서 있다. 나무는 자신이 선택한 자리를 지키며 한 생을 견디지만 사람은 정처 없이 유랑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나무는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미 완성된 자아이며 사람은 계속 떠돌면서도 결국 만족할 그 무엇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자아이다. 그래서 나무의 쓰러짐은 붙박인 자의 월계관을 벗어던지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려 한 의지의 표현이며, 나무를 동경한 사람의 쓰러짐은 끝없이 이어진 유랑을 청산하고 이제 그만 한 자리에 눌러 앉고자 한 욕망의 표현이다. 나무의 쓰러짐은 어디론가 나아가려는 것이며 사람의 쓰러짐은 이제 그만 발길을 멈추려는 것이다.

내가 쓰러졌던 시점과 저 사철나무가 쓰러졌던 시점이 어쩌면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37년 전쯤의 일이었다. 나는 그때 직립으로 걷고 있었고 전속력으로 달려온 자동차에 받혀 쓰러졌다. 그리고 세 번 수술대 위에 눕혀졌다. 직립을 중단하고 쓰러져 누워 있을 동안 나는 나무처럼 뿌리내리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와목, 처음은 위로 위로 솟구치고 있던 직립이었으나, 내가 쓰러진 것을 알고 그 역시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눕혔을 것이다. 그렇게 몸을 굽혀 나무는 엉금엉금 내 쪽으로 걸어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다가와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돌이켜 보니 와목은 그때 그렇게 내 앞으로 걸어왔던 것 같다. 수술을 받고 이틀 만에 깨어났을 때 허기진 내 입에 죽을 떠 넣어주던 소녀, 그리고 한참 뒤 세 번째 수술을 받으려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때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듯이 위로의 말을 해주고 간 낯선 여인이 있었다. 앞의 소녀는 병원 허드렛일을 돕던 중이었고 뒤의 여인은 집도를 맡은 병원장의 부인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들이 저 와목이었을 것 같다. 누워 있는 나와 시선을 맞추려고 비스듬히 구부러지며 다가온 와목.

이제는 내가 몸을 낮춰 그와 눈을 맞출 차례다. 위로 뻗어가려는 몸체를 잡아당겨 옆으로 뻗어가느라 옹이가 진 나무의 뿌리 근처를 나는 어루만졌다. 그 옹이는 쓰러지는 것만은 막으려고 한, 본분을 잊고 자꾸 엇나가는 자신을 붙들어보고자 한 나무의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화사한 햇볕을 향해 계속 승승장구하지 않고, 저렇게 옆으로 길을 바꾸느라 나무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다른 길로 접어든 죄과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그때의 나처럼.

숨김, 엿봄

나무의 드러누운 형상은 은자로 살기를 자청했던 꼬장꼬장한 선비의 몸을 닮았다. 그것은 세상의 명리를 물리친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또 다른 대응 방식이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세상을 살피고자 한 것, 그래서 필요할 때는 언제나 쓴소리 매운소리를 거침없이 퍼붓기 위한 변방의 자리였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은자는 단순히 숨은 자가 아니라 세상의 허튼 구석을 포착하기 위해 몸을 웅크린 자에 가깝다. 와목은 그런 은자의 자세로 오랜 세월 잠복근무를 서고 있는 중이다. 엎드린 채 돌담 너머로 눈을 빛내며 25의용단 저쪽 길을 살피고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수영성을 지켜야 할 경상좌수사 박홍과 고위관리들은 성을 버리고 먼저 도망을 쳤다. 수영성을 점령한 왜군은 이후 이곳에서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이들과 맞서 싸운 것은 패잔병으로 남은 수군과 주민 25인이었다. 이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한 후 7년 동안 유격전을 벌였다. 턱없이 적은 숫자로 적에 대항할 방법은 게릴라전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밤을 틈타 큰 나무 밑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적들을 하나하나 공격했다. 그리고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지금 25의용단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길 저쪽을 쏘아보고 있는 와목이 그날의 25의용 중 한 사람인 것만 같다. 관리들은 제 식솔들을 챙겨 먼저 줄행랑을 치고 백성들은 피란 갈 방도를 찾지 못한 채 갖은 수탈과 수모를 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분연히 나선 것이 그들이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들끓는 의분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먼저 줄행랑을 친 관리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백성들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만만치 않는 조선의 근성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저 와목은 그 의병 중 한 사람이었다가 적이 물러간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저렇게 서슬 퍼런 잠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사철나무에게로 다가가 등을 두드렸다. 어이, 이보게 왜놈들은 벌써 오래 전에 물러갔다네. 이제 그만 몸을 풀고 이리로 와서 좀 쉬게나. 이렇게 권하는 나의 말에 나무는 묵묵부답이었다. 돌담 너머 저쪽을 더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나의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와목이 된 사철나무가 몸을 기대고 있는 돌담을 따라 걸었다. 25의용단의 돌담은 우리의 옛집들이 유지했던 높이보다는 조금 높지만 그래도 담 너머 안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높이다. 도시가 쌓은 담들은 매정하고 갑갑하다.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도 않지만 안에서 밖을 내다보기도 어렵다. 안을 위해 쌓은 경계가 밖으로의 길도 봉쇄한 감옥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적당한 높이를 가진 이 돌담은 소통과 경계의 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나는 돌담을 따라 걸으며 흘깃흘깃 의용단 안을 엿본다. 의용단 앞마당은 25의용의 비석으로 환하다. 행세깨나 하고 살았을 양반들의 이름을 새긴 인근의 공덕비보다 작지만 귀하고 값지다. 크고 작음이 귀천의 기준은 아닐 것이다. 주어진 것을 어떻게 쓰고 가느냐에 있다. 내 생각에 뜰 안의 비석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저 와목처럼 비스듬히 엎드려 담 너머 세상을 엿보는 은자가 아니겠는가. 나의 글쓰기 역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시사철 푸른 잎을 매달고 있는 저 와목의 형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둠 속에 오랫동안 잠복한 형사 앞에 슬며시 경계를 풀고 나타나는 범인처럼 어느 순간 새로운 생각들이 내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와주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 필자 약력

1956년 경남 창녕 생.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0년 제2회 백석문학상 수상.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 '그림자 호수' '호루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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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가까운 이의 부음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부모상을 당했다고 부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영정사진으로 태연히 앉아 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했지만 불과 며칠 전 그와 나눈 뜨거운 악수와 건배를 떠올리며 새삼 깊은 허무에 젖는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았음에도 내일 일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것이며, 딱 한잔만 더 하자고 때를 쓰는 사람을 등 떠밀어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란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삶의 허망함은 그 길고 짧음에 있다기보다 죽음이 언제 자신을 낚아채갈지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깨달은 사람은 때가 되면 기꺼이 그것을 수락하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는 최후의 순간까지 무엇에 탐닉하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죽는다. 죽음은 갑자기 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은 이미 결정지어진 것이고 살아 있는 시간은 사형집행이 잠시 정지된 행운의 시간에 불과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세상의 잡다한 이전투구가 끼어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저자거리의 사소한 언쟁은 물론 나라 안팎의 살벌한 분쟁 또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 모두가 도를 깨우친 자의 심오한 표정이 된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지루하고 삭막할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덕목은 보다 높고 심오한 경지를 추구하는데 있지만 그에 이르지 못함을 절망하며 끝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는데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에게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좌충우돌하는 능력과 함께, 가끔이지만 그것을 반성하는 능력도 주어져 있다. 그 둘은 자동차의 가속과 제동장치처럼 생의 탄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두 요소다.

  매년 이맘때쯤 두어 번 버스를 갈아타고 다대포 일몰을 보러가는 나의 각오도 아마 기어를 내리고 브레이크를 밟는 조심스러운 운전자의 마음가짐과 같을 것이다. 또는 차량 검사원 앞에 가슴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는 오래 된 중고차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저런 일상사에 쥐어 박혀 상처 난 몰골로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면 검사원인 12월 해가 비스듬히 허리를 굽혀 내 속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곧 혀를 끌끌 찬다. 어쩌자고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었단 말이오. 아직 굴러가고 있다는 게 기적이외다.

  일몰을 보러가는 행위가 처량 검사와 정비를 받으러 가는 일에 비유될 수 있다면 일출을 보러가는 행위는 새 차를 빼러가는 행위에 비유될 만하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일몰 행렬에 비해 일출을 보러가는 행렬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만큼 우리는 중고차를 점검하고 고쳐서 쓰는 것보다 새로운 모델로 바꿔치기 하는 일에 더 익숙하다. 그것이 자동차인 경우는 과시욕이라도 충족해주지만 인생은 그런 바꿔치기가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의 정비와 리모델링이 허용될 뿐 완전한 새 출발은 있을 수 없다. 죽음을 조금 지연시켰을 뿐 신생아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올해 12월 석양을 보며 나는 그것이 해가 백사장에 써 놓고 가는 유언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구별 한반도 귀퉁이에 깃들어 사는 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 해는 매일 뜨고 지기를 반복한다.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는 것이다. 그래서 해는 매일의 유언장을 저 넓은 모래사장에 써 놓고 간다. 골고루 모든 지상을 따스하게 비추려 하였으나 그리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적어놓고 간다. 내가 가고 없더라도 춥고 어두운 밤을 서로 데우고 밝히며 사이좋게 살아라고 당부하며 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은 불안하고 허망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의 살아있음은 환한 축복이다. 미리 써보는 유언장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의미와 함께 남은 시간을 보다 값지게 설계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우서 쓰기 운동에 참여한 분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딸에게 당부하고픈 말, 첫째 너무 많이 슬퍼 말기, 둘째 식사 꼬박꼬박 챙겨먹기, 셋째 항상 씩씩하기.’ ‘여보, 먼저 가려하니 발길이 안 떨어집니다. 벌써 코고는 당신 소리마저 그리워지는구려.’ ‘어차피 육신과 재물은 없어질 것. 필요한 부분은 기증을, 나머지는 모두 태워주세요.’

  그렇게 유언장을 써놓고 잠들었다 다시 깨어난 내일 아침의 해는 얼마나 높고 환할 것인가. 어제 쓴 유언장을 살아 실천할 수 있도록 덤으로 주어진 새날의 광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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