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 고양이 그리고 이상한 호모 새
최 영 철
[방랑자 고양이]
저녁 막고 담배 피우러 마당으로 나갔더니 담장 위에 새끼 방랑자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난번 고기 몇 토막을 준 후로 쥐새끼를 세 마리나 물어다 놓은 녀석이었다. 그때 내가 밥 주며 잔소리를 좀 했었다. “이 놈아, 이걸 왜 네게 상납하는 거냐. 이걸로 쥐포 해 먹으라는 거냐 뭐냐. 또 이런 걸 물어 오면 다시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했었다. 그 놈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다시는 그런 쓸데없는 살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국수를 먹은 터라 그 놈에게 딱히 줄 게 없었다. 엊그제는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속이 하도 허해서 짬뽕을 시켜 먹었는데 아마 우리 부부생활 25년동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모처럼의 배달 짬뽕이었다. 그런 귀한 짬뽕을 아내와 맛있게 먹고 있는데 현관 앞에 그 방랑자 고양이가 코를 박고 우리의 식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보나마나 국물이라도 좀 얻어먹을 심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처럼의 짬뽕을 다 비우지 못하고 슬그머니 그릇을 내려놓고 말았다. 아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한달음에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짬뽕 한 그릇 제대로 사주지 못한 내 죄가 컸다. 나는‘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애,’어쩌구 하면서 남은 짬뽕을 문앞에 기다리고 있는 새끼 고양이에게 주었었다.
그렇게 저렇게 낯을 익혀서인지 오늘도 그 방랑자 고양이는 도망도 가지 않고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을 뭐 줄 거 없냐? 줄 거 있으면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주라. 나도 사무가 바쁜 놈이야.’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미안하다 자식아. 오늘은 정말 멸치대가리도 하나 없는 맨 국수 먹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녀석은 훌쩍 담장을 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그 방랑자 고양이가, 먹을 걸 주기 때문에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말 인간적으로 친해보고 싶어서였으면 좋겠다.
[이상한 호모 새]
오늘 아침 사과 한 알을 깎아놓고 자기들 몫을 주려고 새장으로 갔더니 두 놈이 나란히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저 세상으로 간 것이었다. 우리에게 온 것이 1년도 안 되었으니 너무 짧은 생이었다. 그런데 얄궂게도 한날 한시에 갈 건 또 뭐란 말인가. 사랑 때문이라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그놈들은 같은 수컷인데다 하나는 카나리아고 하나는 금화조로 족보도 엄연히 달랐다. 그것들의 암컷도 비슷한 시기에 몇 차례 거듭해 알을 놓다가 몇 일 사이로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었다. 그 이후 남은 홀아비들을 한 둥지에 합방시켜 주었는데 아주 의좋게 살았던 놈들이었다. 횟대에 나란히 앉아 있거나 둥지에 나란히 들어앉은 놈들을 보며 우리는 그것들을 호모라고 놀렸었다. 조금전 그것들을 곱게 싸서 매화나무 아래 묻어 주고 왔다. 내년 봄 매화 두 송이로 다시 살아날 것을 빌면서.
그런데 그놈들이 왜 한날 한시에 갔는지 그게 도통 모를 일이다. 지난 여름 매화나무 아래 묻었던 카나라이와 금화조 암컷들이 아직 일편단심으로 수컷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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