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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의 이곳] <18> 시인 최영철 수영사적공원의 와목(臥木)
비스듬히 웅크려 담장 너머 세상의 허튼 구석 엿보는 은자(隱者)
부산일보 2007/11/08일자 035면 서비스시간: 16:00:55
 

사진 설명:수영사적공원의 와목을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최영철 시인은 와목을 알게 된 뒤 주위를 살피며 걷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그렇게 와목과 사랑에 빠졌다. 김경현기자 view@
그 나무가 처음 눈에 띈 것은 서너 달 전쯤의 산책길에서였다. 5년 가까이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나는 그 나무를 보지 못했다. 성의 북쪽 길을 돌아 낡은 주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면 거기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풀밭이 있고, 나무는 풀밭 가장자리 돌담 옆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는 자기 앞을 바삐 지나가고 있는 나를 5년 동안이나 멀찍이 바라보기만 했을 것이다. 어이, 하고 부르지도 않았고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나무는 그늘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 한가한 촌로처럼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인사성이 없다고, 어디 사는 누구 자식이냐고 타박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무의 관대함 때문에 나는 나무를 보는 데 5년이나 결렸다.

지난 여름 그 나무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을 휘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피다가 마침내 나는 돌담 아래 누워 있는 사철나무를 보게 되었다. 쯧쯧 혀를 차며 바삐 가는 나를 불러 세운 것은 비스듬히 누운 채로 크고 있는 사철나무였다.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탓이었을까. 그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즐비한 나무들과 시선을 맞추느라 약간 높게 잡았던 나의 눈높이가 문제였다.

그의 잎은 그의 눈이었다. 그의 잎이 사철 푸르게 된 것은 나와 눈을 맞출 날이 언제가 될지 몰라 늘 눈을 뜨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가 나를 기다린 것이, 내가 그를 만나야 하는 운명이 점지된 것이 5년 전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십 년, 아니 그 너머, 그는 일찌감치 이 자리에 진을 치고 나를 기다렸을 것이고 나는 먼 길을 빙빙 돌아 이제야 당도했다. 나는 그 나무를 와목(臥木)이라 부르기로 했다. 오래 전 한 글동무가 나에게 와산(臥山)이란 호를 붙여주었으니 그와 나는 이제 형제로서의 돌림자를 갖게 된 셈이다.

직립, 쓰러짐

사람은 걷고 나무는 서 있다. 나무는 자신이 선택한 자리를 지키며 한 생을 견디지만 사람은 정처 없이 유랑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나무는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미 완성된 자아이며 사람은 계속 떠돌면서도 결국 만족할 그 무엇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자아이다. 그래서 나무의 쓰러짐은 붙박인 자의 월계관을 벗어던지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려 한 의지의 표현이며, 나무를 동경한 사람의 쓰러짐은 끝없이 이어진 유랑을 청산하고 이제 그만 한 자리에 눌러 앉고자 한 욕망의 표현이다. 나무의 쓰러짐은 어디론가 나아가려는 것이며 사람의 쓰러짐은 이제 그만 발길을 멈추려는 것이다.

내가 쓰러졌던 시점과 저 사철나무가 쓰러졌던 시점이 어쩌면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37년 전쯤의 일이었다. 나는 그때 직립으로 걷고 있었고 전속력으로 달려온 자동차에 받혀 쓰러졌다. 그리고 세 번 수술대 위에 눕혀졌다. 직립을 중단하고 쓰러져 누워 있을 동안 나는 나무처럼 뿌리내리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와목, 처음은 위로 위로 솟구치고 있던 직립이었으나, 내가 쓰러진 것을 알고 그 역시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눕혔을 것이다. 그렇게 몸을 굽혀 나무는 엉금엉금 내 쪽으로 걸어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다가와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돌이켜 보니 와목은 그때 그렇게 내 앞으로 걸어왔던 것 같다. 수술을 받고 이틀 만에 깨어났을 때 허기진 내 입에 죽을 떠 넣어주던 소녀, 그리고 한참 뒤 세 번째 수술을 받으려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때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듯이 위로의 말을 해주고 간 낯선 여인이 있었다. 앞의 소녀는 병원 허드렛일을 돕던 중이었고 뒤의 여인은 집도를 맡은 병원장의 부인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들이 저 와목이었을 것 같다. 누워 있는 나와 시선을 맞추려고 비스듬히 구부러지며 다가온 와목.

이제는 내가 몸을 낮춰 그와 눈을 맞출 차례다. 위로 뻗어가려는 몸체를 잡아당겨 옆으로 뻗어가느라 옹이가 진 나무의 뿌리 근처를 나는 어루만졌다. 그 옹이는 쓰러지는 것만은 막으려고 한, 본분을 잊고 자꾸 엇나가는 자신을 붙들어보고자 한 나무의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화사한 햇볕을 향해 계속 승승장구하지 않고, 저렇게 옆으로 길을 바꾸느라 나무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다른 길로 접어든 죄과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그때의 나처럼.

숨김, 엿봄

나무의 드러누운 형상은 은자로 살기를 자청했던 꼬장꼬장한 선비의 몸을 닮았다. 그것은 세상의 명리를 물리친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또 다른 대응 방식이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세상을 살피고자 한 것, 그래서 필요할 때는 언제나 쓴소리 매운소리를 거침없이 퍼붓기 위한 변방의 자리였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은자는 단순히 숨은 자가 아니라 세상의 허튼 구석을 포착하기 위해 몸을 웅크린 자에 가깝다. 와목은 그런 은자의 자세로 오랜 세월 잠복근무를 서고 있는 중이다. 엎드린 채 돌담 너머로 눈을 빛내며 25의용단 저쪽 길을 살피고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수영성을 지켜야 할 경상좌수사 박홍과 고위관리들은 성을 버리고 먼저 도망을 쳤다. 수영성을 점령한 왜군은 이후 이곳에서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이들과 맞서 싸운 것은 패잔병으로 남은 수군과 주민 25인이었다. 이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한 후 7년 동안 유격전을 벌였다. 턱없이 적은 숫자로 적에 대항할 방법은 게릴라전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밤을 틈타 큰 나무 밑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적들을 하나하나 공격했다. 그리고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지금 25의용단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길 저쪽을 쏘아보고 있는 와목이 그날의 25의용 중 한 사람인 것만 같다. 관리들은 제 식솔들을 챙겨 먼저 줄행랑을 치고 백성들은 피란 갈 방도를 찾지 못한 채 갖은 수탈과 수모를 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분연히 나선 것이 그들이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들끓는 의분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먼저 줄행랑을 친 관리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백성들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만만치 않는 조선의 근성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저 와목은 그 의병 중 한 사람이었다가 적이 물러간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저렇게 서슬 퍼런 잠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사철나무에게로 다가가 등을 두드렸다. 어이, 이보게 왜놈들은 벌써 오래 전에 물러갔다네. 이제 그만 몸을 풀고 이리로 와서 좀 쉬게나. 이렇게 권하는 나의 말에 나무는 묵묵부답이었다. 돌담 너머 저쪽을 더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나의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와목이 된 사철나무가 몸을 기대고 있는 돌담을 따라 걸었다. 25의용단의 돌담은 우리의 옛집들이 유지했던 높이보다는 조금 높지만 그래도 담 너머 안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높이다. 도시가 쌓은 담들은 매정하고 갑갑하다.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도 않지만 안에서 밖을 내다보기도 어렵다. 안을 위해 쌓은 경계가 밖으로의 길도 봉쇄한 감옥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적당한 높이를 가진 이 돌담은 소통과 경계의 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나는 돌담을 따라 걸으며 흘깃흘깃 의용단 안을 엿본다. 의용단 앞마당은 25의용의 비석으로 환하다. 행세깨나 하고 살았을 양반들의 이름을 새긴 인근의 공덕비보다 작지만 귀하고 값지다. 크고 작음이 귀천의 기준은 아닐 것이다. 주어진 것을 어떻게 쓰고 가느냐에 있다. 내 생각에 뜰 안의 비석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저 와목처럼 비스듬히 엎드려 담 너머 세상을 엿보는 은자가 아니겠는가. 나의 글쓰기 역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시사철 푸른 잎을 매달고 있는 저 와목의 형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둠 속에 오랫동안 잠복한 형사 앞에 슬며시 경계를 풀고 나타나는 범인처럼 어느 순간 새로운 생각들이 내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와주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 필자 약력

1956년 경남 창녕 생.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0년 제2회 백석문학상 수상.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 '그림자 호수' '호루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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