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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가까운 이의 부음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부모상을 당했다고 부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영정사진으로 태연히 앉아 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했지만 불과 며칠 전 그와 나눈 뜨거운 악수와 건배를 떠올리며 새삼 깊은 허무에 젖는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남았음에도 내일 일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것이며, 딱 한잔만 더 하자고 때를 쓰는 사람을 등 떠밀어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란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삶의 허망함은 그 길고 짧음에 있다기보다 죽음이 언제 자신을 낚아채갈지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깨달은 사람은 때가 되면 기꺼이 그것을 수락하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는 최후의 순간까지 무엇에 탐닉하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죽는다. 죽음은 갑자기 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은 이미 결정지어진 것이고 살아 있는 시간은 사형집행이 잠시 정지된 행운의 시간에 불과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세상의 잡다한 이전투구가 끼어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저자거리의 사소한 언쟁은 물론 나라 안팎의 살벌한 분쟁 또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 모두가 도를 깨우친 자의 심오한 표정이 된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지루하고 삭막할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덕목은 보다 높고 심오한 경지를 추구하는데 있지만 그에 이르지 못함을 절망하며 끝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는데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에게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좌충우돌하는 능력과 함께, 가끔이지만 그것을 반성하는 능력도 주어져 있다. 그 둘은 자동차의 가속과 제동장치처럼 생의 탄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두 요소다.

  매년 이맘때쯤 두어 번 버스를 갈아타고 다대포 일몰을 보러가는 나의 각오도 아마 기어를 내리고 브레이크를 밟는 조심스러운 운전자의 마음가짐과 같을 것이다. 또는 차량 검사원 앞에 가슴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는 오래 된 중고차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저런 일상사에 쥐어 박혀 상처 난 몰골로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면 검사원인 12월 해가 비스듬히 허리를 굽혀 내 속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곧 혀를 끌끌 찬다. 어쩌자고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었단 말이오. 아직 굴러가고 있다는 게 기적이외다.

  일몰을 보러가는 행위가 처량 검사와 정비를 받으러 가는 일에 비유될 수 있다면 일출을 보러가는 행위는 새 차를 빼러가는 행위에 비유될 만하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일몰 행렬에 비해 일출을 보러가는 행렬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만큼 우리는 중고차를 점검하고 고쳐서 쓰는 것보다 새로운 모델로 바꿔치기 하는 일에 더 익숙하다. 그것이 자동차인 경우는 과시욕이라도 충족해주지만 인생은 그런 바꿔치기가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의 정비와 리모델링이 허용될 뿐 완전한 새 출발은 있을 수 없다. 죽음을 조금 지연시켰을 뿐 신생아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올해 12월 석양을 보며 나는 그것이 해가 백사장에 써 놓고 가는 유언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구별 한반도 귀퉁이에 깃들어 사는 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 해는 매일 뜨고 지기를 반복한다.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는 것이다. 그래서 해는 매일의 유언장을 저 넓은 모래사장에 써 놓고 간다. 골고루 모든 지상을 따스하게 비추려 하였으나 그리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적어놓고 간다. 내가 가고 없더라도 춥고 어두운 밤을 서로 데우고 밝히며 사이좋게 살아라고 당부하며 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은 불안하고 허망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의 살아있음은 환한 축복이다. 미리 써보는 유언장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의미와 함께 남은 시간을 보다 값지게 설계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우서 쓰기 운동에 참여한 분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딸에게 당부하고픈 말, 첫째 너무 많이 슬퍼 말기, 둘째 식사 꼬박꼬박 챙겨먹기, 셋째 항상 씩씩하기.’ ‘여보, 먼저 가려하니 발길이 안 떨어집니다. 벌써 코고는 당신 소리마저 그리워지는구려.’ ‘어차피 육신과 재물은 없어질 것. 필요한 부분은 기증을, 나머지는 모두 태워주세요.’

  그렇게 유언장을 써놓고 잠들었다 다시 깨어난 내일 아침의 해는 얼마나 높고 환할 것인가. 어제 쓴 유언장을 살아 실천할 수 있도록 덤으로 주어진 새날의 광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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