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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방학 맞아 손자가 왔다. 어찌나 살가운지 엿새 내내 할머니 할아버지 가운데 누워서 잤다.  사내 냐석이 어찌나 살가운지 넋이 빠질 지경.
애비는 주말에 왔다가 월요일 출근해야한다며 올라가고, 며느리는 손자 등쌀에 아직 붙들려 있다. 잠시 머라도 어긋나면 "용인 간다"고 협박당한다.
어제는 뭣하나 해야지 하고 며느리가 글쓰기를 시켰다.  방학 내내 놀기만 했으니 연필이라도 잡아보라고 말이다
. 손자는 <산문> 을 택했다. <시> 도 괜찮다고 했는데 기어코 <산문>ㅇ라 우기더란다. 며느리 말이, 내가 낮에 출판사 대표랑 투고된 원고를 두고 이렇고 저렇고 의논하던 걸  어이가 듣고는, 자기도 산문을 써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출판사 대표와 내가 나눈 이야기는 필자 입장에선 하나하나 소중한 것이겠지만 책으로 묶으려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 통일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듣등의 것이었고 세 차례 주거니 받거니 전화를 하면서 이를테면 회의를 한 셈이었는데 그걸 듣고 그런다는 것.
오호,  하고 기다렸더니 짧은 산문을 써 왔는데 '빛'에 대해 조목조목 끝까지 옆길로 가지 않고 써 왔다.
거 참. 아이들 키울 때 으레 그랬기에 그런가보다 했고, 그래도  며느리 보기 인색하지 않게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며느리는 다시 손자에게 글쓰기를 시켰다.  시나 산문 맘대로 써라 하고 저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손자가 종이를 들고 왔다. 시를 썼다고 했다 드럼 할배한테 보여드려, 했더니 할배가 그거 시 아니란다.
제목 ...레몬 생강 캔디
내용... 레몬 생강 캔디는 맵다
ㅋㅋ.
이건 그냥 사실인 거잖아. 그러니까 시가 아니야.
어, 그래요?
손자는 다시 책상 앞에 가서 끙끙대더니 잠시 후 나타나서 말했다.
"시가 어려워요, 산문이 어려워요?"
오잉?
손자의 질문에 시인 할배와 소설가 할매는  깜짝 놀랐어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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