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너나너나너
최영철
나는 너의 고장
잘못 배달된 폐기물
거꾸로 돌아간 나사못
나 아닌 너 아닌
나 같은 너 보다
너 같은 나는 더욱 아닌
나와 너의 맞잡다 만
떨리는 빈손 낭떠러지
너의 실패 나의 낭패
관중이 다 빠져나간 세리머니
위험천만 아슬아슬 원격조정
너의 나를 나의 너를
한 구덩이에 버려야 할 밑닦이
다른 데로 너무 멀리 가버려
나의 네가 돌아올 수 없는 뜬구름
아무렇게나 끼워 맞춘 밑구멍
너의 내가 몇 점 남은 부스러기
헛도는 수레바퀴 돌돌
안개 위에 내갈긴 낙서
아무리 닦아도 오물이 지워지지 않아
엉망진창 두꺼운 무쇠 등판이 되고 만
나 아닌 너 아닌 나너나너 너나너
얼굴만 홀쭉해지고 만 너희
아니 우리? 아니 낯선 배반?
오늘은 버릴 것이 없었습니다
말수 적은 전화라도 곁에 있어 주어 고맙다, 한 장 남은 달력 팔랑대는 며칠, 내 손을 잡고 놓아 주지 않아 고맙다, 다하지 못한 말들, 이리 오래 받아 주어 고맙다, 입 열면 모처럼의 꼬드김에 넘어갈까 봐 입 앙다물고 잠자코 있어 주어 고맙다, 허튼 짓거리 하나 안 하나 종일 귀 곤두세우고 나만 노려보고 있어 고맙다, 저기 저 아이들처럼 외로워 괴로워 못살겠다고 쉬지 않고 보채고 소리 지르고 부르르 몸 떨지 않아 고맙다, 내가 성가실까 봐 언제인지도 모르게 은근슬쩍 용건만 쑤셔 넣고 달아나 버려 고맙다, 정말 이게 마지막이라고 말해 주지 않아 고맙다, 내일 또 올게, 울지 말고 내 꿈 꿔, 심심하면 이거나 먹어, 이 말만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다시는 못 볼지도 몰라, 주먹 쥐고 뻔한 대사 중얼거리며 허공에 하트를 그려 놓고 가지 않아 고맙다(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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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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