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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론 생각

 


 
최영철


 우리가 잠시라도 두드리지 않으면
 불안한 그대들의 모서리와 모서리는 삐걱거리며 어긋난다
 우리가 세상 어딘가에 녹슬고 있을 때
 분분한 의견으로 그대들은 갈라서고
 벌어진 틈새로 굳은 만남은 빠져나간다
 우리가 잠시라도 깨어 있지 않으면
 그 누가 일어나 두드릴 것인가
 무시로 상심하는 그대들을 아프게 다짐해줄 것인가

 그러나 더불어 나아갈 수 없다면
 어쩌랴 아지 못할 근원으로 한 쪽이 시들고
 오늘의 완강한 지탱을 위하여 결별하여야 할 때
 팽팽한 먹줄 당겨 가늠해 본다
 톱날이 지나가는 연장선 위에
 천진하게 엎드려 숨죽인 그대들 중
 남아야할 것과 잘려져 혼자 누울 것은
 무슨 잣대로 겨누어 분별해야 하는가를

 또다시 헤어지고 만날 것을 빤히 알면서
 단호한 못질로 쾅쾅 그리움을 결박할 수는 없다
 언제라도 피곤한 몸 느슨히 풀어 다리 뻗을 수 있게
-자나 +자로 따로 떨어져
 스스로 바라보는 내일이 있기를
 수없이 죄었다가 또 헤쳐 놓을 때
 그때마다 제각기로 앉아 있는 그대들을 바라보며

 몽키스패너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이스플라이어의 꽉 다문 입술로
 오밀조밀하게 도사린 내부를 더듬으며
 세상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제나름으로 굳게 맞물려 돌고 있음을 본다

 그대들이 힘 빠져 비척거릴 때
 낡고 녹슬어 부질없을 때
 우리의 건장한 팔뚝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누가 달려와 쓰다듬을 것인가
 상심한 가슴 잠시라도 두드리고
 절단하고 헤쳐 놓지 않으면
 누가 나아와 부단한 오늘을 일으켜 세울 것인가.

- 등단작 <연장론> 전문

 

 시 연장론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으로 1985년 12월초에 쓰여진 작품이다. 소위 말하는 등단 작품인 셈인데 십오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 시를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것은 등단작이 출세작이나 대표작이 되고 심할 경우 마지막 작품이 되는 경우를 더러 보아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발표한 내 작품을 지나칠 정도로 괄시하는 못된 버릇 때문이기도 하다. 마찬가지 이야기겠지만 남에게는 관대하고 나에게는 혹독한 자학증세도 일면 가세하고 거기에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할 만큼 내 과거가 그리 호사스럽지 않다는 생각에도 한 원인이 있다. 그렇다고 진일보의 길을 걸어온 것도 아니고 과거의 무능과 부끄러움을 상쇄할 성과를 쌓아가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어서 참 못된 소갈머리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지나간 자료철을 뒤져 굳이 이 시를 옮겨 본 것은 뒤돌아 보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가는 것이 또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지나온 20세기의 과오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과거를 부정하고 짓밟고 넘어서서 계속 앞만 보고 치달은 결과가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 그렇게 무시하고 지나온 과거보다 20세기가, 지금의 21세기가 월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로 그것들은 흉악한 몰골의 상채기만 드러내놓고 있다. 인간은 못된 지배욕과 이기심의 포로가 되었고 자연환경은 몰라보게 훼손되었으며 죄 없는 동식물들은 지금 멸종의 가속도를 밟고 있다. 어제 보았던 식물들이 흔적도 없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어제 느꼈던 동물들의 움직임이 자취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그들은 이 미련한 인간들의 서식처인 지구를 떠나 더 살기 좋은 어느 별로 공간 이동을 했을 것이다. 정말 그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다.

한 십오년쯤 자료철 갈피의 밑바닥에 갇혀 있었던 시 ‘연장론’도 그동안 인간 최영철에게 비슷한 욕지거리를 해대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렵사리 낳은 첫 자식을 헌신짝 취급한 넌 인간도 아니야. 그렇지 않니. 그 애가 잘못한 게 뭐 있다고. 시인 자격증도 따게 해줬지, 상금으로 그동안 빚진 인간들에게 술도 사주게 했지, 무엇보다 별 일도 없이 허송세월을 할뻔 했던 네게 할 일을 주었잖니.’ 누가 옆에서 이렇게 욕을 퍼붓는다 해도 나는 정말 할말이 없다. ‘연장론’이 자료철에서 뛰쳐나와 내 머리를 쥐어박는다 해도 나는 달게 그 매를 받아야 할 판이다.

그런 형벌을 예상하면서도 연장론을 꺼내든 것은 이제 또 한번 나를 새롭게 할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어진 것을 곶감 빼먹듯이 하나하나 다 소진하고 빈털털이가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런 위기는 물론 시시각각 나를 엄습한다. 대체로 그럴 때의 처방은 아무 책도 보지 않고 아무 글도 쓰지 않은채 무력한 잠에 빠지거나 술을 진탕 마셔 보는 것이었는데 그런 완충요법만으로는 큰 효험이 없을 것 같다. 내 것만 어줍잖아 보이는 게 아니라 활자화된 모든 것들이 시덥잖아 보인다. 별 대수롭지 아닌 걸 갖고 왜 이렇게 호들갑이람. 제기랄 이 무슨 엄살들이람. 도통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왜 이렇게 열을 내서 하고 있는 거지. 이 사이에 끼여들지 못해 안달인 나는 또 뭐람.

그래서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말은 지난해 봄에 나온 나의 다섯 번째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의 자서에도 적은 말이다. ‘다섯 번째 시집인데도 처음 같다. 부끄럽고 주저하는 초심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나를 흔들어 준 시간들이 고맙다.’로 시작하고 있는 다소 비감하고 도통한 것 같은 이 발언이 지금 읽어보니 참 ‘부끄럽다’. 말만 그렇게 그럴싸하게 내뱉어 놓고 나는 진정 다시 시작했는가, 처음으로 갈 수 있을 만큼 나를 모조리 씻어냈는가, 하고 물어본다.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쓰는 자의 당연한 근무 수칙이 아닌가. 이 다짐은 그 당연한 근무 수칙을 지금까지 제대로 지키지 않은데 대한 고백과 반성의 자인서였을 것이다. 한 십오년의 시간을 별다른 충전 없이 탕진해 온 자의 자기변명과 지기최면이었을 것이다. 아, 나는 정말 나에게 미안하다. 미당 선생은 ‘나를 키운 것의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는데 나는 나를 키운 것의 8할이 무엇이었다고 훗날 말할 수 있을는지. 그것은 아마도 나를 향한 신랄한 야유와 혹독한 학대가 되지 않을까. 나를 향한 끊임없는 삿대질이.

그런 생각으로 연장론을 다시 읽는다. 1985년 12월 초 한국일보 신춘문예 마감 전날 밤 나는 이 시를 썼다. 부산에서 나오던 무크지 지평에 작품발표를 시작한 뒤여서 신춘문예의 꿈을 접어가고 있던 중이었는데 1면 하단에 한 줄로 빼놓은 ‘신춘문예 내일 마감’이라는 문구가 나를 자극한 게 아닌가 싶다. 그 막바지의 시각,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도통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진퇴양란의 그해 겨울이 또 한 편의 시를 쓰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게 오는 모든 절망에게 감사한다. 나의 절망은 힘이며 희망이다. 그 겨울의 절망이 나를 두드려 깨우지 않았다면, 그것이 그 겨울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만 중도에 가라앉고 말았으리라.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많은 절망들에게 빚지고 있다. (웹진 시향 2002)


 * 최영철 / 1956년 경남 창녕 생. 1984년 무크지 <지평> 시 발표.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로 제2회 백석문학상 수상. 현 계간 <관점21, 게릴라> 편집주간. 시집으로 <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2001, 문학과 경계), <일광욕하는 가구>(2000, 문학과 지성), <야성은 빛나다>(1997, 문학동네), <홀로 가는 맹인 악사>(1994, 푸른숲), <가족사진>(1991, 생각하는 백성),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1987, 열음사), 산문집 <우리 앞에 문이 있다>(1993, 빛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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