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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최영철  


시는 내 게으름의 핑계거리다


어느새, 살아갈 날이 얼마 남았을까 가늠해보는 처지가 되었다. 구차하게 늙는 사람을 보며 나는 절대 저 지점까지는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그런 것들이 허사가 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마냥 풀어 놓기에는 나란 놈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일찍이 주어진 시간이 짧은 것에 절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보여 절망했었다. 도대체 새털같이 많은 이 날들을 무슨 수로 소일한단 말인가. 어김없이 떴다 지는 해를 무슨 낯짝으로 맞이하고 보낸단 말인가. 무슨 생각 무슨 짓거리를 하며 그 많은 낮밤을 살아낸단 말인가. 무수하게 줄서서 기다리고 있을 빈 밥그릇을 무슨 수로 다 채워 넣는단 말인가. 나를 향해 쏟아질 멸시와 반목과 야유, 간혹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나에게 배달될 격려와 위로와 물거품의 찬사를 어떻게 받아넘긴단 말인가.

소년기에 접어들 무렵 나를 절망하게 한 것은 내가 이렇다하게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그 시절의 나에게 부여된 시간은 잘못 배달된 어마어마한 화물이어서 어떻게 해볼 엄두가 나지않는 처치 곤란한 숙제였다. 나는 그것을 개봉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매일같이 도착하는 정체불명의 화물에 깔려 거의 압사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시시각각 나에게 도착해 긴 줄을 이루고 있는 질문들 앞에서 전전긍긍 미로를 헤맬 뿐이었다.

그나마 천만 다행으로 그 시절 내 주위에는 장래 희망이 무어냐고 묻는 어른들이 없었다. 일용할 양식이 우선이었던 시절에 유별난 꿈을 꾸는 건 호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꿈이 무어냐고, 장래 희망이 무어냐고 묻지 않았던 그 시절의 어른들에게 감사한다. 나에게 꿈은 너무 호사스러운 장식이었다. 오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짤막한 답도 가지지 못한 처지에 멀고 아득한 미래에 대해 답한다는 것은 과분한 일이었다. 주제넘고 시건방진 일이었다. 어쨌거나 어린 시절의 나는 일사불란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곳이 없었.으므로 매사에 시무룩했다. 삑! 소리와 함께 죽으라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100미터 달리기가 싫었다. 출발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웅크린 채 오감을 집중하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해 전력 질주하는 행위가 우스꽝스러웠다. 누구 하나라도,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상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소년 시절의 내가 즐겨한 것은 틈만 나면 어두워지는 저녁거리를 하릴없이 쏘다니는 것이었다. 얼쩡거리고 머뭇거리고 어슬렁거리는 게 좋았다. 그래서 자주 지각생으로 교문 앞에 벌을 서야 했지만 그 벌이란 게 조금도 나를 개조시키지는 못했다. 그런 나의 증세는 점점 악화되어 나의 중요한 습관이 되었다. 점점 숙련되어 나의 손발이 되고 나의 입과 귀와 콧구멍이 되었다. 떨어질 수 없는 나의 동심일체가 되었다. 천하에 아무 쓸모없는 것들과 동맹을 맺은 나는 그때부터 걸핏하면 불평불만을 터트렸다. 세상은 왜 이리 줄창 바쁘기만 한 것일까? 왜 저렇게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걸고 핏대를 올리는 것일까? 나는 저 아수라장을 어떻게 지나가야 할까?

그것들은 지금도 내가 변치 않고 하고 있는 생각들 중의 하나여서, 세상이란 좀 과도하게 설정된 목표가 있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허덕거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자마자 보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거나 또 다른 목표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일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진퇴양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알리바이가 게으름이었을 것이다. 그 게으름을 벗삼아 그 게으름을 무기로 그 게으름에 힘입어, 어쨌든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시는 나에게 그 게으름의 보상이요 그 게으름의 핑계거리였다.

 

시는 무일푼의 해작질이다

 

예순의 나이를 어마어마한 고령으로 생각한 적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만 내가 덜컥 그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고도 무사태평으로 살고 있으니, 나란 놈 참 뻔뻔스럽다. 나는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만 있을 뿐 실행이 없는 인간이다. 한 생각은 다른 생각에 파묻히거나 곧 망각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어서 생각을 굳이 부여잡을 필요는 없었다. 대체로 그 녀석이 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다. 가지 말고 조금만 더 있어보라고 애걸하지도 않았다. 나의 죄는 그것이다. 나의 죄는 명백하다.

나는 대체로 생각뿐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승전결의 구조가 아니라 앞뒤가 없는 파편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질문이라도 던져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바람에 그 씨앗들이 놀라 저절로 발화해 날아갈까 봐 숨죽여 바라보기만 하였다. 먼 다른 곳을 보는 척 했다. 그것들의 쫑알거림을 몰래 엿듣고 훔쳤다. 나는 이미 그런 짓거리로 무수히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시는 그러니까 그 짓거리를 은닉하고 용서받는 절묘한 알리바이였다. 그것만으로 내 시는 이미 본전을 다 건졌다. 애초에 들인 밑천이 게으름과 두서없는 망상 따위였으니 본전이랄 것도 없다. 어눌한 내 시는 그러므로 횡재에 가깝다. 시간을 투자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허송세월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시를 건질 욕심에 세상의 모퉁이와 변두리를 기웃거리기는 했으나 그 공력은 사실 값어치가 거의 없는 것이었다. 땀 흘려 힘을 쏟은 것도,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도, 돈을 투자한 것도 아니었다. 자주 헛걸음을 하긴 했으나 백일 정성으로 기다린 것이 아니었으므로 큰 손실은 아니었다.

그저 그것들은 불현 듯, 느닷없이, 우연히, 다른 옷을 갈아입고 왔다. 나는 그 중 몇 개의 실오라기를 낚아채기만 했을 뿐이다. 그 길에서 이루 다 헤일 수 없는 것들을 만나고 이루 다 헤일 수 없는 것들을 엿보고 엿들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래도 신명 내 할 수 있는 걸 찾다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래도 하고 싶은 걸 찾다가 걸려든 게 시였다. 미끼도 없는 게으른 내 낚시에 걸려들 것이라곤 애초에 시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소설을 써보려고 도서관에 가서 매일 소설책을 읽었으나 나의 체력과 심보는 지속적인 일을 하기에 적절치 않았다. 나의 감정과 체력은 장거리 달리기엔 적절치 않았다. 쉽게 싫증나고 지치고 하품이 나고 졸음이 밀려왔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심사를 잠시 잠재워 놓고 그 놈이 깨기 전에 후다닥 해치울 수 있는 일이란 두서없는 몇 줄 시밖에 없었던 것도 같다. 긴 공력이 없어도 되는 일이고 수틀리면 언제든 폐기처분 할 수 있어 좋았다. 하다가 구겨버리고 하다가 지워버리고 하다가 내팽개쳐도 크게 본전 생각이 나지 않아 좋았다. 그 시절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점령해버린 허무라는 녀석에게도 덜 눈치가 보여 좋았다.

뭔가 그럴듯한 일을 하겠다고 덤비면 녀석이 질투하거나 해꼬지를 할 게 뻔하지 않은가. 시는 녀석에게 아무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슬렁, 휘적, 흘깃, 보는 둥 마는 둥, 생각하는 둥 마는 둥, 쓰는 둥 마는 둥, 없는 듯 있는 내 시에게 누가 위기의식을 느끼겠는가. 맞장을 둘 경쟁상대로 여기겠는가. 녀석은 온갖 변덕을 부려도 탓하지 않을 것 같아 좋았다. 무엇보다 무슨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것처럼 거들먹거리지 않아 좋았다. 나의 허튼 수작으로 읽는 이의 심기를 언짢게 할 위험성이 적어 보여 좋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짓거리인가를 하며 살고 있다는 최소한의 자의식을 주어 좋았다.

그 정도의 보상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덧없이 세월은 가버렸고 나는 그게 똥인지 밥인지도 모르고 무슨 말인가를 주절대며 왔다. 이제 와 어쩌겠는가. 되돌릴 수도, 없었던 일로 감쪽같이 파묻을 수도 없지 않은가. 결국 지울 수 없는 회한을 남겨줄 것이지만 나의 시는, 새털같이 많은 날들을 소일하게 한 싫증나지 않는 해작질이었다. 빈털터리, 몇 개의 딸랑대는 동전, 급기야 빈 호주머니…, 그런 빈궁과 허무, 고독과 적요의 시간과 함께 나를 연명하게 한 힘이었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시와 나는 죽이 잘 맞았다. 정 심심해 주리를 틀면 몇 줄 토막난 말을 받아먹고 곧 잠잠해졌으므로 좋았다. 생각보다 온순하고 착한 놈이어서 좋았다. 땡전 한 푼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좋았다. 땡전 한푼 없어야 더 잘 되는 일이어서 좋았다.


땡전 한푼 없이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고 오늘은 실직의 바람이 분다 동에서 남으로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생기발랄하다 한 푼 뉘우침의 빛도 없이 신문의 활자는 엎드려 중얼댄다 엎드려 이 와중에도 부동산은 힐끔힐끔 눈치를 살핀다 눈치를 살피다니 오 아름다운 우리의 산과 들 눈치를 살피다니 팔십년대는 재빠른 스타트를 끊었다 이미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보무도 당당하게 국민소득은 높아가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늘만 여전히 푸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새들은 지저귀고 생기발랄하게 민주는 꽃 핀다 꽃 지고 땡전 한푼 없이 벚꽃은 피고 흰꽃 이파리에 가려 우리는 다정다감하다 명상에 젖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안심하는 이 저녁에 땡전 한푼 없이 바람은 불고.

- 「이 저녁에 땡전 한푼 없이」

 

시는 찬물 한 사발이다

 

 

상처는 달래고 약을 바른다고 물러나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 앞에서 치유되는 것인가 보다. 내 인생이 왜 이러냐고 원망과 한탄을 늘어놓던 사람도 자신보다 더한 상황에 놓인 경우 앞에서는 잠시 제 짐을 내려놓고 눈시울을 붉히지 않던가.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십대 중반부터 엄습헸던 허무는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무작정 가출해 굶주린채 밤길을 걷던 나는 질주하던 군용차에 치였다. 수술 후 겨우 께어난 내 몸은 발끝에서 가슴까지 딱딱하고 견고한 석고붕대에 결박되어 있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나는 너무 배가 고팠고 병원 허드렛일을 하던 내 또레 소녀가 떠먹여주던 흰죽을 몇 차례 연거푸 청해 받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허기는 사춘기 소년에게 엄습한 생의 허무보다 몇 백 몇 천 배 더 힘이 센 놈이었다. 허무는 그러니까 장신구 같은 것이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서산 너머로 펼쳐진 노을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을 잠시 압도하지만 초라한 그 사람의 잔영과 함께 곧 어둠 속으로 사라질뿐이다. 하지만 삶의 허기는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린 나에게 엄습했던 생의 허무는 너무 이른 너무 과한 장신구였다.

그렇게 세 번의 수술을 견디며 뼈가 붙기를 기다렸다. 창밖으로 체육과 교련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함성과 선생님의 구령과 호각 소리가 교차했지만 석고붕대에 갇혀 천정과 벽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운동장을 내려다볼 수 없었다. 그것은 당연한 형벌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계절 동안 하얀 벽과 대면했다. 병실 벽면은 왜 모두 하얀색일까? 파랑이나 빨강이면 안될까? 하얀색을 지겹도록 마주하고 있는 사이 나는 별 생각을 다했다. 당연히 점점 하연색이 싫어졌다. 그건 침묵이고 정지고 고요였다. 과장된 순결이었다. 너무 넓게 견고하게 내 앞에 제시된 백지였다. 하루 종일 나를 압박하는 넓은 답안지였다. 정답은 아니지만, 백퍼센트 오답이지만 거기에 나는 무엇인가를 그려 넣어야 했다. 기나긴 반성문을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한 줄의 반성문도 쓰지 못했다. 무엇을 반성하란 말인가. 생은 나에게 아무 동의 절차도 없이 나를 세상에 내보냈다. 어떡하란 말인가. 아무 지침도 아무 자산도 없이 혹독한 세월만 쥐어 내보낸 비정하고 얄미운 운명을 어떻게 수락하란 말인가. 그러니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처음부터 잘못 내려진 것이었고 엉뚱한 곳에 내린 죄값을 치루고 있는 중이었다. 스님들의 면벽 수행에 버금가는 긴 고행이었다.

그 여파였는지 나의 청춘은 우울하고 어둡고 적적했다. 스무살 넘도록 나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올라가는 완행열차 차비만 얻어 밤차를 탔다.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전날 저녁,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밤을 집에서 보내며 차고 있던 시계를 벗어 동생에게 끼어주었다. 아직 말짱한 시계를 왜 벗어주느냐고 동생이 휘둥그레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아우야, 너는 나처럼 허둥대지 말고 바른 시간을 바르게 살아가거라.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가 개심사 종각 앞에 섰다. 상처는 나보다 더한 것 앞에서 치유되는가 보다. 내 인생이 왜 이러냐고 원망과 한탄을 늘어놓던 사람도 자신보다 더한 상황 앞에서는 잠시 자신의 불운을 내려놓고 눈시울을 붉히지 않던가. 나 역시 그랬다. 십대 중반부터 나를 엄습헸던 허무는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석고붕대에 묶인 몇 년의 면벽으로도 나는 답을 얻지 못했다. 나는 나에게 짐 지워진 이 무거운 수레바퀴를 수락할 수 없었다. 종소리에 이끌려 열심히 교회를 다니기도 했으나 이렇다할 답을 얻지 못했다. 내가 바랐던 것은 위안이나 구원이 아니었다. 나는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염치없고 과분한 욕심인지를 알게 되었다. 무겁고 무거운 업을 떠받들고 있는 개심사 종각의 네 기둥은 그것을 지고 가느라 사지가 비틀리고 굽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만방을 향해 맑은 종소리를 내보내는 종각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무거우면 무겁다고 진즉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이제 그만 이 짐 내려달라 하시지 그러셨어요

내가 이만큼 이고 왔으니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좀 나누어 지라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쉬엄쉬엄 한숨도 쉬고 곁눈도 팔고

주절주절 신세타령도 하며 오시지 그러셨어요

등골 휘도록 사지 뒤틀리도록 져다 나른 종소리

지금 한눈팔지 않고 저 먼 천리를 달려가고 있습니다

뒤틀린 사지로 저리 바쁘게 달려가는 당신 앞에서

어찌 이승의 삶을 무겁다 하겠습니까

고작 반백 년 지고 온 이 육신의 짐을

어찌 이제 그만 내려달라 하겠습니까

-「개심사 종각 앞에서」


시의 적은 포만이다

 

이제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지만 수시로 되살아나는 기억이 있다. 스무 살 무렵이었다. 손전화는 고사하고 유선 전화도 귀했던 시절, 개인의 통신 수단이라고는 편지나 전보가 고작이었다. 아지 못할 불덩이 하나씩을 안고 살았던 그 시절, 이런저런 경로로 좋은 시를 만나면 책 뒷면에 나와 있는 주소로 편지를 쓰거나 물어물어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허탕을 치는 일도 있었고 용케 만나져서 꽤 오래 우정을 나눈 경우도 있다. 그런 인연의 매개가 되어준 그시절의 책자는 지금의 인쇄술에 비하면 너무나 볼품없는 것이어서 철필로 긁어 등사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도 눈을 빛내며 그것들을 샅샅이 읽고 귀하게 소장했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그중 몇 묶음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아직 가지고 다닌다. 가난했던 시절의 다짐들이 그대로 배어 있는 것이어서 가끔 그것들을 어루만지고 있으면 다시 가슴이 더워진다.

내게 있어 문학에 대한 열정은 주어진 여건과 반비례했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쓸데없는 책만 본다고 타박하던 어머니의 눈을 피해 읽었던 책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고 그 귀퉁이에 적어놓고 완성하지 못한 습작들이 놓쳐버린 불후의 명작처럼 아쉽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전쟁통에 읽을 게 없어 사방 벽에 도배된 신문을 돌아가며 다 읽었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의 70년대 역시 간절한 그 무엇이 있었고 그 열정을 지속시킨 동력은 허기였다. 어쩌다 수북하게 담긴 고봉밥으로도, 사방 빽빽하게 꽂힌 도서관의 책으로도 야간통금시간에 쫒기며 마신 술로도 채워지지 않던 허기. 시의 미덕 중 하나인 치열성은 이 아지 못할 허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의 적은 과잉이다. 지금 우리 시가 구가하고 있는 환경은 풍요를 넘어 범람에 가깝다. 시 같은 걸 써서 장차 이 험한 세상 뭘 먹고 살아갈 거냐고 타박하던 어른들도 없고, 책 사볼 돈이 없어 서점 진열대 앞에 서서 눈치껏 보고 싶은 책 몇 줄을 읽고 나오거나 헌책방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획득한 이 풍요는 간절한 그 무엇, 열열한 그 무엇을 앗아가 버렸다. 결여와 억압과 상실이 교차하던 시절에는 힘들고 가난했으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명이 있었다. 마음껏 밖으로 분출할 수 없었던 신명은 부정과 저항의 시로 첨예하게 점화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을 전후한 뛰어난 저항시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모처럼 도심에 나와 빼곡하게 사람들을 싣고 달리는 전동차를 타고 가며 엉뚱한 상념에 빠졌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도 시인이 천 명쯤 된다는데 이 전동차에도 지금 시인 한두 명쯤은 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람들 틈바구니에 꼼짝달싹 못하게 묶여 인상을 구기고 있는 저 아주머니, 조금 전 필사적으로 인간장벽을 뚫고 탈출한 그 초로의 아저씨가 시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시인이 많은 나라가 되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시인을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문화적 허영심으로 가득찬 유별난 부류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시의 소용을 연애편지가 유효했던 시절의 장식품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래를 시키듯 술자리애서 시 한 수 낭송해보라는 청을 넣기도 한다. 덜떨어진 시인을 향한 날선 야유인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손에 꼽을만한 두세 권의 시집, 더 나아가 단 한 권의 유고시집으로 남았던 선배시인들에 비해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많은 시집을 남발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동어반복으로 자기 표절을 거듭하고 있는가.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망해가는데, 나는 말장난으로 허명을 구걸하고 있지는 않는가.

시는 참다 참다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온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영혼을 바쳐 빚은 것이어야 안하무인 돌덩이가 된 저 견고한 아집들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다.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지금 나의 시는 결여가 아닌 과잉으로 죽어가고 있다. 나는 나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처음 그때처럼 간절한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정한 무엇이 있는가? 불덩이가 있는가? 매운 채찍이 있는가? 날카롭게 번득이는 칼날이 있는가? 저 허다한 아픔을 덮어줄 더운 가슴이 있는가?

인류의 종말이 그러할 것이지만 시의 종말 역시 결여가 아닌 과잉으로 찾아올 것이다. 나는 다시 가난해져야 한다. 한 마디의 말, 한 줄의 노래를 찾아 사막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유일무이한 것, 작정하고 궁글리고 조합해서 완성된 것이 아닌 저도 모르게 터져나온 몇 줄의 노래. 그렇게 본다면 지금 나의 시는 절정의 언어가 아닌 꾸역꾸역 쑤셔 넣은 포만을 이기지 못해 반복하는 딸꾹질에 가깝다. 시의 범람, 시인의 범람. 나는 어떤 기득권도 가지지 않은 적빈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시의 적이 과잉이듯이 지금 당면한 인간의 위기도 과잉에서 비롯될 것이다.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욕구에 포위되어 익사 직전까지 와 있다. 범람하는 급물살을 따라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가 추구하는 세계는 본래 크고 높고 화려하고 빠르고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을 피해 그것들을 물리치며, 그것들을 넘어서는 세계였다. 작고 적고 낮은 것의 가치, 약하고 여리고 조용하고 느린 것의 미덕을 발견하며 함께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꿈꾸었다. 그런 면에서 시는 흔히 말하는 사양 산업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권장산업이 될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내 시의 바람직한 재료는 눈물이다.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긍휼함을 잃지 않는 것, 눈물의 양과 순도와 질량과 온도가 적절한지를 끊임없이 가늠해 보는 것. 그래서 무작정, 아무데나, 오래 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번 울었던 곳에서 또 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이 보는 데서, 남들도 울어주기를 강요하며 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지금 울고 있는가? 적절한 때 적절한 곳에서 잘 울고 있는가? 나에 대해 너에 대해 우리에 대해 잘 울고 있는가.

 

눈물 한 방울 없이 나는 그 이야기를 다 들었다 철철 넘쳐흐르던 눈물이 마르다니, 나는 이제 사람도 아니다 눈물이 한숨이 어느새 다 빠져나간 담담한 응시, 나는 이제 빈껍데기만 남았다 나는 언제라도 마른 장작처럼 물불 안 가리고 호탕하게, 솟구쳐, 휘날려, 없어질 수 있다 눈물은 세상의 가운데로 노 저어 가는 더운 강, 나를 그만 미끄러지게 하고 두 손 두 발 들고 여죄를 자백하게 하는 채찍질, 떨리는 오욕칠정 다 빠져 달아난 오후, 너의 고통을 나의 평화를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이 서툰 달관, 용서해서는 안 된다 끊어진 눈물을 향해 물 한 바가지 퍼부었다 빗방울들이 가야 할 곳을 마른 땅이 다 잡아먹은 쨍쨍한 날의 고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여러 날이 삽시간에 지나갔다 돌멩이라도 걷어차 보다가, 그걸 주워 손안에 궁굴려 보다가, 힘껏 내던지지 않아도 해가 지고 저녁이 오는 이 무서운 무사태평, 물끄러미 손 놓고 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보다가 주먹을 쥐었다가, 이건 어쩌면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손가락을 다시 폈다 참, 어느새, 정말, 이렇게, 눈물이, 마르고, 너도, 마르고

-「어느새,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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