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시의 적

                                                                                             최영철

 

이제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지만 수시로 되살아나는 기억이 있다. 스무 살 무렵이었다. 손전화는 고사하고 유선 전화도 귀했던 시절, 개인의 통신 수단이라고는 편지나 전보가 고작이었다. 알지 못할 불덩이 하나씩을 안고 살았던 그 시절, 이런저런 경로로 좋은 시를 만나면 책 뒷면에 나와 있는 주소로 편지를 쓰거나 물어물어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허탕을 치는 일도 있었고 용케 만나져서 꽤 오래 우정을 나눈 경우도 있다. 그런 인연의 매개가 되어준 그시절의 책자는 지금의 인쇄술에 비하면 너무나 볼품없는 것이어서 철필로 긁어 등사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도 눈을 빛내며 그것들을 샅샅이 읽고 귀하게 소장했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그중 몇 묶음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아직 가지고 다닌다. 가난했던 시절의 다짐들이 그대로 배어 있는 것이어서 가끔 그것들을 어루만지고 있으면 다시 가슴이 더워진다.

내게 있어 문학에 때한 열정은 주어진 여건과 반비례했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쓸데없는 책만 본다고 타박하던 어머니의 눈을 피해 읽었던 책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고 그 귀퉁이에 적어놓고 완성하지 못한 습작시들이 놓쳐버린 불후의 명작처럼 아쉽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어려웠던 시절에 읽을 게 없어 사방 벽에 도배된 신문을 돌아가며 다 읽었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의 70년대 역시 간절한 그 무엇이 있었고 그 열정을 지속시킨 동력은 허기였다. 어쩌다 수북하게 담긴 고봉밥으로도, 사방 빽빽하게 꽂힌 도서관의 책으로도 야간통금시간에 쫒기며 마신 술로도 채워지지 않던 허기. 시의 미덕 중 하나인 치열성은 이 아지 못할 허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의 적은 과잉이다. 지금 우리 시가 구가하고 있는 환경은 풍요를 넘어 범람에 가깝다. 시 같은 걸 써서 장차 이 험한 세상 뭘 먹고 살아갈 거냐고 타박하던 어른들도 없고, 책 사볼 돈이 없어 서점 진열대 앞에 서서 눈치껏 보고 싶은 책 몇 줄을 읽고 나오거나 헌책방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 되었다. 히지만 그렇게 획득한 이 풍요는 간절한 그 무엇, 열열한 그 무엇을 다 앗아가버렸다. 결여와 억압과 상실이 교차하던 시절에는 힘들고 가난했으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명이 있었다. 마음껏 밖으로 분출할 수 없었던 신명은 부정과 저항의 시로 첨예하게 재점화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을 전후한 뛰어난 저항시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모처럼 도심에 나와 빼곡하게 사람들을 싣고 달리는 전동차를 타고 가며 엉뚱한 상념에 빠졌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도 시인이 천 명쯤 된다는데 이 전동차에도 지금 시인 한두 명쯤은 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람들 틈바구니에 꼼짝달싹 못하게 묶여 인상을 구기고 있는 저 아주머니, 조금 전 필사적으로 인간장벽을 뚫고 탈출한 그 초로의 아저씨가 시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시인이 많은 나라가 되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시인을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문화적 허영심으로 가득찬 유별난 부류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시의 소용을 연애편지가 유효했던 시절의 장식품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래를 시키듯 술자리애서 시 한 수 낭송해보라는 청을 넣기도 한다. 덜떨어진 시인을 향한 날선 야유인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손에 꼽을만한 두세 권의 시집, 더 나아가 단 한 권의 유고시집으로 남았던 선배시인들에 비해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많은 시집을 남발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동어반복으로 자기 표절을 거듭하고 있는가.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망해가는데, 우리는 말장난으로 허명을 구걸하고 있지는 않는가. 시는 참다 참다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온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영혼을 바쳐 빚은 것이어야 안하무인 돌덩이가 된 저 견고한 아집들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다.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지금 우리의 시는 결여가 아닌 과잉으로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처음 그때처럼 간절한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정한 무엇이 있는가? 불덩이가 있는가? 매운 채찍이 있는가? 날카롭게 번득이는 칼날이 있는가? 저 허다한 아픔을 덮어줄 더운 가슴이 있는가?

인류의 종말이 그러할 것이지만 시의 종말 역시 결여가 아닌 과잉으로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다시 가난해져야 한다. 한 마디의 말, 한 줄의 노래를 찾아 사막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유일무이한 것, 작정하고 궁글리고 조합해서 완성된 것이 아닌 저도 모르게 터져나온 몇 줄의 노래. 그렇게 본다면 지금 우리의 시는 절정의 언어가 아닌 꾸역꾸역 쑤셔 넣은 포만을 이기지 못해 반복하는 딸꾹질에 가깝다. 시의 범람, 시인의 범람. 지금의 우리 시는 하향평준화라는 비판을 피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날선 백지상태, 어떤 기득권도 가지지 않은 적빈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시의 적이 과잉이듯이 지금 당면한 인간의 위기도 과잉에서 비롯될 것이다.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욕구에 포위되어 익사 직전까지 와 있다. 범람하는 급물살을 따라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가 추구하는 세계는 본래 크고 높고 화려하고 빠르고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을 피해 그것들을 물리치며, 그것들을 넘어서는 세계였다. 작고 적고 낮은 것의 가치, 약하고 여리고 조용하고 느린 것의 미덕을 발견하며 함께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꿈꾸었다. 그런 면에서 시는 흔히 말하는 사양 산업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권장산업이 될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해본다. 우리의 제도교육에서 초중고 12년 동안 매주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암송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의 흥과 멋과 맛이 한 인간의 몸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했으면 좋겠다. 글을 께우칠 8세에서 세상에 눈뜰 19세까지 각자의 마음 속에 6백여 편의 시를 품는다면 세상은 훨씬 더 훈훈하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