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광 중의 광, 일광이 손에 들어왔다

 

                                                                                                                                                                                                      최영철

 

 

 

일광은 오래 전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 몇과 동해남부선 완행열차를 타고 캠핑을 왔던 곳이다. 지금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고 궁핍하고 엄격했던 시절이어서 우리 세대의 청소년기는 대체로 칙칙하고 우울했다. 그 피난처가 여름방학을 틈타 친구들 몇 작당해 떠났던 캠핑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고3 여름방학에도 그 짓을 계속해 2학기가 시작되는 날 교무실로 불려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 그때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는 구슬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교실에서 오리무중 잘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와 씨름하는 것 보다는 무작정 어디론가 배낭을 짊어지고 떠났던 일탈의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인생의 자산은 영어 단어나 수학 문제의 해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부대끼고 어울리며 얻는 경험이 더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시기상조였고 당면한 과제를 은근슬쩍 회피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덧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을 진심으로 후회해본 적은 없다. 그래봤자 소용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의 성패는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어서 그랬다. 규격에 맞추고 제도에 편승해 얻는 기득권이 성공의 조건이라고 믿는 추세였지만 그보다 험하더라도 나는 좀더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그런 턱없는 주장들이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일탈에서 얻은 자산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나의 인생을 푸근하게 받쳐주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황금기를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잡고 끙끙대지 않고 배짱 좋게도 견문을 넓혀 보려고 낯선 곳을 방황했다는 것은 그 나름 의미 있는 탐색이었다.

친구와 작당해 배낭 하나씩 짊어지고 동해남부선 열차를 탔던 기억이 그래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완행열차는 한가득 사람들을 태우고 바쁠 것 하나 없다는 듯 덜컹덜컹 느린 걸음으로 역마다 사람들을 부려놓았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을 태우며 천천히 출발했다. 지금처럼 고속이 아니어서 철로변 마을의 사람 사는 풍경을 정겹게 보여주며 오갔다. 천방지축 뛰놀던 아이들이 잠시 행동을 멈추고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고 곧 당도할 낯선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승객들이 그에 화답해 손을 흔들었다. \

동해남부선 일광역에 도착해 일광 바다 백사장에 서둘러 텐트를 치고 밤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던 소주 몇 잔에 천하를 얻은 듯 기고만장하던 기억이 새롭다. 제대로 된 안주도 없는 깡소주여서 금방 취기가 올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일탈의 즐거움을 누렸다. 그때는 경남 양산군 기장읍 일광면이었지만 지금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으로 부산에 편입되어 경전철 동해선이 다닌다. 부산의 중심가 부전역에서 삼십여 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 되었다. 인생의 바쁜 과업을 완수한 노년층들이 도시철도에서 동해선으로 환승해 일광 바닷가의 풍경과 해산물을 맛보러 온다. 일광의 먹거리는 다양하고 풍족하다.

언제부턴가 일광 명물이 되어버린 찐빵은 경로우대로 일광까지 온 노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아 줄을 서서 기다려야 맛볼 수 있다. 그 건너편 아구찜 집도 번호표를 받고 한참을 줄서서 기다려야 식당 안으로 들어갈 만큼 손님들이 많다. 좀더 바닷가 쪽으로 나가면 밤새 잡아올린 싱싱한 횟감을 입맛대로 장만해 근처 초장집에 자리잡고 앉아 소주와 매운탕을 즐길 수 있다. 일광 바닷가의 추어탕과 미역국 집, 학리 바닷가의 국밥집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런 먹거리 보다 일광 바다가 지닌 천혜의 자연환경을 더 욕심내는 분들은 일광바다를 왼쪽에 끼고 굽이치는 해안선을 음미하며 걷는 도보길을 권한다. 가파르지 않게 잘 조성된 해안길을 따라 걷노라면 바쁜 도시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어느 순간 다 날아가고 없다. 보다 넓고 먼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예쁜 찻집들이 유혹의 손짓을 보내오기도 한다. 광 중의 광 일광이 어느새 그대의 손에 들어왔다는 증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