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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씨, 찜질방 가다

 

 

                                                                                                     최 영 철

 


 

 수동씨는 얼마 전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무안을 당했다. 그 사연인즉 이렇다. 국내외 정세와 최근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 사건들을 도마 위에 올리다가 얼큰하게 술기운이 돌 즈음이었다. 팀장이 불쑥 찜질방을 화제에 올렸다. 그날 신문에 나온 찜질방 기사가 발단이었다. 지금 남녀 공용으로 되어 있는 찜질체험실을 엄격히 구분하겠다는 당국의 발표에 대해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만을 터트리고 있었다.

  “남자 여자 따로 들어가게 하면 무슨 재미로 찜질방에 가겠어.”

  “그러게 말이야. 가족들끼리도 그렇지만 젊은 연인들도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데.”

  “거기서 수작을 붙여보려는 몇몇 놈들 때문에 전체가 희생되어서야 쓰겠어.”

  이런 좌중의 대화에 수동씨는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수동씨는 아직 한번도 찜질방이라는 데를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미혼인 수동씨는 찜질방에 데리고 갈 아내와 자식이 없었다. 이런 수동씨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입사 6개월째인 새내기 여직원이 이렇게 거들었다.

   “요즘은 젊은 연인들만 가는 게 아니고요 동아리 모임도 거기 가서 하고요 미팅도 거기서 하는 경우도 있어요. 부담이 없잖아요.”

   그 여직원이 말하는 <부담>이라는 말이 수동씨에게는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뭐가 부담이 없다는 걸까. 경제적으로? 아니면 호텔이나 모텔에 비해서? 찜질방의 시스템을 말로만 들어온 수동씨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목욕과 찜질을 같이 한다고 했는데, 그리고 한 방에서 밤을 새울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남녀가 그렇게 벌거벗고 밤을 새우는데 어떻게 부담이 없을 수 있다는 걸까.’

  그러나 그것을 미주알고주알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막 입사한 스물네 살 여직원도 아는 일을 수동씨가 모른다는 것은 영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는데 느닷없이 팀장이 수동씨를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구수동씨는 어느 찜찔방에 자주 가?”

  수동씨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이렇게 대답했다.

  “찜질방에 잘 안갑니다. 번잡스러워서요.”

  얼떨결에 둘러댄 변병이었지만 수동씨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맞아. 찜질방은 새로 생긴 방식이고 언론에 문제점이 오르내릴 정도니까 분명 번잡스러울 거야. 변명치고는 괜찮은 변병이었어. 느림을 강조하는 시대에 맞게 어쩌면 부모님은 내 이름도 수동으로 지어 주셨을까.’

  그런데 팀장은 수동씨의 이런 속내를 일고 있기나 한 듯 단칼에 무안을 주었다.

  “그게 아니라 아직 한번도 안 가 봤겠지. 그러지 말고 꼭 한번 가 봐. 우리 같은 중년에게 정말 좋은 곳이니까.”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한 좌중은 팀장의 이 한마디에 키득키득 이상한 웃음을 터트렸다. ‘찜질방 안 가본 게 무슨 대수라고 저리 난리들일까. 그리고 사십 초반인 자기와 삼십 중반인 내가 어떻게 같은 중년이야.’하고 수동씨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 이후 며칠동안 찜질방은 수동씨에게 풀기 어려운 화두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좀 만만한 동기들을 만나면 찜질방에 가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동기들은  ‘사내자식들끼리 무슨 재미로 찜질방엘 가느냐.’며 심드렁한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수동씨는 동기들의 이런 반응에 더 몸이 달아올랐다. ‘이건 분명 내가 모르는 무슨 은밀한 구석이 있는 거야.’

  그런 집요한 노력 탓이었는지 수동씨는 고교 동기 만수씨와 드디어 찜질방이라는 데를 가게 되었다. 찜질을 하고 난 뒤 괜찮게 한잔 쏜다는 전제를 달고서였다. 해수욕장과 가까운 바닷가의 찜질방이었다. 만수씨는 그곳으로 수동씨를 안내하며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이왕이면 물 좋은 연계들이 오는 데가 좋겠지. 지금 해수욕 철이라 여기는 지금 전국의 연계들이 다 몰려드는 곳이야. 요즘 아이들은 여기서 씻고 눈 붙이면서 휴가를 즐기거든.“ 

  그런데 만수씨는 탈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는 수동씨에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여자들도 온다는데 이렇게 다 벗고 들어가도 되는 거야.”

  수동씨의 물음에 만수씨는 히죽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수동씨가 따라 들어간 곳은 여느 목욕탕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여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계속 투덜거리며 사워를 마친 수동씨를 다시 만수씨가 탈의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반바지와 티를 입게 했다. 수동씨로서는 만수씨가 시키는대로 잠자코 따라할 수  밖에 없었다.

  계단을 통해 한 층 위로 올라선 만수씨가 맥반석체험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방문을 열고 수동씨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후끈한 열기가 수동씨의 온몸을 감쌌다. 짙은 안개가 무롱도원처럼 서려있는 체험실 안에는 몇 명의 여자들이 앉거나 누워 있었다.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외로운 나무꾼 앞에 나타난 선녀의 자태였다. 수동씨는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냅다 환호성을 질렀다.

  “앗, 여자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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