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거닐다
자갈치, 활기찬 삶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최영철
부산을 찾아온 손님에게 부산을 대표할만한 한 곳을 보여주어여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질 것이다. 주어진 시간, 손님의 기호, 주머니 사정, 그날의 기후 조건과 기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여건과 취향을 배제하고 보다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 1순위에 자갈치시장을 놓을만 하다. 가장 부산다운 곳, 그러면서도 가장 접근성이 좋고 부산적인 요소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곳, 그곳이 자갈치시장이다.
우선 접근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부산역에서 대중교통으로 10분이면 바로 살아있는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자연의 순수가 살아있는 바다는 아니지만 대신 인간과 함께 생동하는 바다다. 그래서 일찍이 주당들은 자갈치를 한국의 나폴리라 불렀다. 세계 어느 항구와 비교해도 자갈치만큼 시끌벅적하고 생기발랄한 곳이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 인간의 삶이 생생하게 투영된 곳으로서의 자갈치의 가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듬고 걸러진 표준화된 시장 풍경이 아니라 지역의 토속성과 분주한 일상성이 민낯으로 드러나는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 자갈치의 바다 풍경은 유유자적한 풍경으로서가 아니라 바다가 가진 본연의 역동성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민초들의 절실성에 의해 움직인다.
활기찬 삶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자갈치를 이루고 있는 여러 요소들은 주어진 조건과 정면으로 맞서려는 해양성 기질과 승부 근성으로 종합선물셋세를 이룬다. 그래서 드리는 권유이기도 하지만 팍팍한 세상에 지쳐 희망을 잃고 세상의 종점을 찾아 부산에 오신 분들은 우선 자갈치시장으로 오시기를 권한다. 나 역시 그랬지만, 그곳에서 안감힘으로 오늘을 헤쳐나가고 있는 시장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절망이 얼머나 큰 사치인지, 엄살인지, 부끄러워질 것이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태와 방만으로 무기력해진 스스로를 다잡아 일으켜세우는데도 자갈치만한 곳이 없다. 방전만 하고 충전을 하지 않아 무기력해진 일상을 새롭게 되돌리는 일도 자갈치만한 곳이 없다.
부산을 구경하러 온 국내외 관광객들이 꼽는 중요 명소 중에는 해운대 태종대 범어사와 함께 자갈치시장이 꼭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우리가 다른 곳을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낯선 곳을 여행하며 얻고자 하는 정보는 자연 풍광과 더불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체취와 숨결이다. 이런저런 관광정보들이 영상이나 책자로 개방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모습과 그 체취는 가서 부대껴보아야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자갈치시장이야말로 각각의 오감으로 감지해야 할 살아 퍼덕이는 삶의 현장이다.
자갈치시장은 1915년 일제에 의해 계획이 수립되고 1928년 착공하여 1940년 완공된 남항 매축공사로 조성된 곳이다. 남부민동에서 충무동과 남포동을 잇는 이 매축지는 배를 편리하게 정박하고 배로 싣고 온 화물을 부리기 위해 축조되었다. 그 물양장 주위로 수산물 저장소와 냉동창고와 판매장 등이 들어서면서 싱싱하고 싼 수산물을 공급받으려는 상인과 소비자가 몰려 하나의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자갈치의 원래 위치는 부산시청이 있던 용미산 동남쪽 해안과 남포동 건어물시장 주변이었는데 남항이 매축된 뒤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해방 전까지 일본인들이 쥐고 있던 자갈치시장의 상권은 해방 후 귀환동포의 몫이 되었고 전쟁 후에는 맨주먹으로 피난 내려온 팔도 사람들의 삶터가 되었다. 시장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갈치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것도 대략 이때쯤이다. 부산은 전쟁통에 내몰린 팔도 사람들의 최종 귀착지였고 자갈치시장은 막장과도 같은 위기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만난 훌륭한 생활 근거지였다. 오늘의 부산 사람들의 가지고 있는 악착같은 기질과 끈질긴 생명력은 이 자갈치를 근간으로 해서 생겼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갈치의 어제와 오늘
자갈치는 우리나라 동해에 분포하는 농어목 등가시치과의 바닷물고기이기도 한데 자갈치시장은 충무동 로터리까지 뻗어 있던 자갈밭을 자갈치라 부르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어원은‘발치’‘저만치’처럼 자갈이 있는 곳, 그 끝자리 등을 의미한다. 구덕산 등지의 돌이 보수천을 따라 흘러내리고 용두산 복병산 등지의 돌이 빗물에 흘러내리면서 이 곳 자갈치에 모여 넓은 자갈밭을 형성했다. 그렇게 흘러 내려온 돌들이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반들반들한 자갈이 되었을 것이다. 파도에 씻겨 다듬어진 그 자갈들은 온갖 풍상을 견디며 생활 근거지를 찾아 흘러온 부산 사람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바람에 부서지고 흐르는 물에 마모되어 둥그스름해진 작은 돌, 그것은 부산 사람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오랜만에 아침 일찍 노선버스를 타고 자갈치 시장을 다녀왔다. 새벽바다가 부려놓은 싱싱한 생선들과 그 생선들보다 곱절은 더 싱싱해 보이는 아지매들이 펼쳐놓은 좌판을 둘러보고 생선 몇 마리를 샀다. 객지에 나가 사는 딸과 아들 식구에게 우리는 이렇게 정기적으로 생선을 사서 보낸다. 그것은 그들에게 단순한 먹거리가 아닐 것이다. 고향의 소식이요 고향의 기운일 것이다. 이제 겨우 일어나 하루 일과를 준비할 아침 7시, 길게 흩어져 있던 노점을 한데 모아놓은 새벽 어시장은 한낮처럼 환하고 시껄벅적했다.
자갈치시장의 이런 팍팍한 기운은 단순히 시장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삶의 질곡을 견딘 자들이 내뿜는 기운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긴 것이다. 생의 고비를 넘어온 자들이 갖는 억센 기운과 그 고비에서 터득한 아량을 함께 갖고 있다. 자갈치에 오면 그 양면의 에너지를 다 충전해 갈 수 있다. 두세곳에서 산 이런저런 생선들을 양팔 가득 들고 근처 식당에서 보리밥 된장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 옛날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그 밥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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