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YS를 보내며] “하늘서 못다 이룬 정치 펼쳐주시길”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아, 한 시절이 가는구나. 나는 북창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상을 떠나 천상으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한 마리 새의 날개짓이 보였다. 1927년에서 2015년, 그 88년은 인간 김영삼에게 길고도 짧았을 것이다. 짧고도 길었을 것이다. 식민지 백성의 아들로 성장기를 보내고 해방과 분단과 동족상잔과 4·19와 5·16의 격랑을 피 끓는 청년으로 넘어왔고 유신독재와 민주화의 벼랑 끝 세월을 야권의 대표주자로 헤쳐 왔으니 말이다. 그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가시밭길이요 진퇴양난이었을 것이다.

YS의 서거를 접하며 1987년 12월 어느날 진해 풍경이 떠올랐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진해 정일근 시인의 첫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당시 정 시인은 바다가 보이는 진해남중학교 국어교사였고 출판기념회는 인근 부산·경남 젊은 시인들의 축하 속에 조촐하게 치르어졌다. 

최영철 시인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삶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평지풍파를 오로지 다 받아내고 다 살아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삶이고 이제 그 고생길로 자청해 걸어 들어가는 한 시인의 장도를 격려하는 모임이어서 그랬던지, 또 신군부의 억압에 시달렸던 80년대 중후반의 분위기 탓이었던지 우리는 술을 마시다 말고 진해 중심가의 대로상으로 진출했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누가 먼저였는지 중앙선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김영삼’을 연호했다.“김영삼 김영삼 김영삼” 10여명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곧 20∼30명이 되었다. 가게 문을 닫다 말고 부리나케 달려나와 우리 뒤에 선 아저씨도 있었고 외박을 나온 해군 병사도 있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선거운동 기한을 넘어서고 있었고 날이 밝으면 대통령 선거 투표가 시작될 것이었지만 아무도 우리를 저지하지 않았다.

부산·경남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리고 시종일관 대부분 YS의 열열한 지지자들이었다. 특히 부산 사람들은 그를 연거푸 국회의원에 당선시켰다. 그것을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향한 호남정서와 대비시켜 일종의 지역정서로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1979년 10월의 부마항쟁과 1987년의 6월항쟁을 촉발해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온 부산 사람들의 정치성향을 그렇게 격하해서는 안 된다. 부산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좋은 세상을 향한 순정이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끼여드는 정의감도 있다. 바른 일에 나서는 사람을 물불 안 가리고 뒤따르는 동지의식도 있다. 광주항쟁을 폭발시킨 호남정서에 버금가는 시대정신도 있다. YS는 그 선봉에 서 있었다. 광주·전남이 DJ에 열광하듯 부산·경남 역시 오랫동안 YS를 연호하고 열광해 왔다.

 
그런 기대 때문이었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YS를 잊고 살았다. YS의 유세를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지고 YS가 건재하는한 좋은 세상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청춘의 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날 나는 그 믿음에 배반당했다. 뜨거웠던 청춘의 한때처럼 세상을 향해 품었던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1990년의 3당 합당이었다. 나는 대통령이 된 그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불우하게 마주친 자신의 당대와 당당히 맞서 싸우고 그것을 통과해 새로운 길을 열어젖히는 한 사람의 위인을 기대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청춘의 시절에 품었던 한때의 꿈 같은 것이었다. 역사는, 정의는, 정치는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을 것이다. 한 구비를 돌아나가기 위해 한 고비를 넘어서기 위해 암중모색의 뒷걸음질도 해야 했을 것이다. 어려웠던 한 시절을 온몸으로 이끌어왔으니 부디 하늘에서도 이 나라를 보살피는 수호신으로 못다 이룬 정치를 펼치시기 바란다.

최영철 시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