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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3-08-22 17:46 2009-10-10 13:00

 

우짜노

최영철

 

, 비 오네

자꾸 비 오면

꽃들은 우째 숨쉬노

 

젖은 눈 말리지 못해

퉁퉁 부어오른 잎

 

자꾸 천둥 번개 치면

새들은 우째 날겠노

 

노점 무 당근 팔던 자리

흥건히 고인 흙탕물

 

몸 간지러운 햇빛

우째 기지개 펴겠노

 

공차기하던 아이들 숨고

골대만 꿋꿋이 선 운동장

 

바람은 저 빗줄기 뚫고

우째 먼길 가겠노

 

-시집 그림자 호수’(창작과 비평사)

세상만사 걱정도 가지가지 돈 많은 사람 돈 많은 대로, 가난한 사람 가난한 대로, 하늘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걱정부터 복에 겨운 팔자치레 푸념에 이르기까지 애인 품보다 걱정 품에 사는 사람이 많기도 많은 모양이지만 저 우짜노를 들으니 세상이 환해지는 건 우짠 일인가?

빗방울 속에 꽃잎이 숨쉴 걱정, 천둥 번개 속에 새들이 날 걱정, 무 당근 팔던 노점 할머니 생계 걱정, 공차기하던 아이들 뛰어놀 걱정, 심지어 무생물인 바람 길마저 걱정인 저 오지랖에 눈이 맑아지는 건 웬일인가?

우산 장수는 짚신 장수 굶거나 말거나, 짚신 장수는 우산 장수 굶거나 말거나, 모두들 제 집, 제 주머니, 제 통장, 제 자식 걱정할 때 저렇게 바보 같은, 아니 성현 같은 우짜노가 있다니?

나는 세상사람 모두가 저런 우짜노를 연발했으면 좋겠다. 창문 밖 장맛비를 내다보며 정치인이, 군인이, 장사꾼이, 도둑놈이, 시인이 모두 손을 놓고 꽃잎 걱정, 풀잎에 매달려 빗방울 뭇매를 맞을 왕아치, 풀무치, 때까사리, 소금쟁이 걱정을 하다가 제가 정치인인지 사기꾼인지 도둑놈인지 시인인지 몰라 잠시 멍청해지는 그런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덕분에 전쟁광이 좀 손해보고, 무기상이 셈하다 갸우뚱하고, 도둑놈 장물 수입이 줄고, 히히- 시인은 시 한 편 더 건지는 그런 시간이 많이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지루한 장마 속에 과일은 떨어지고, 야채는 녹아 겨우 인물 갖춘 것들이 금싸라기란다. 여느 해 보다 빠른 귀성길이 코앞에 닥쳐왔는데 저렇게 장대비 오면 올 추석 제물은 우짜노’?(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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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짜노

 

최영철

 

 

, 비 오네

자꾸 비 오면

꽃들은 우째 숨쉬노

 

젖은 눈 말리지 못해

퉁퉁 부어오른 잎

 

자꾸 천둥 번개 치면

새들은 우째 날겠노

 

노점 무 당근 팔던 자리

흥건히 고인 흙탕물

 

몸 간지러운 햇빛

우째 기지개 펴겠노

 

공차기하던 아이들 숨고

골대만 꿋꿋이 선 운동장

 

바람은 저 빗줄기 뚫고

우째 먼길 가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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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철 형은 느긋하다. 걸음걸이도 느긋하고 말투도 느긋하다. 어디 급한 데가 없다. 그러나 생각만은 단호하다. 나는 이런 영철이 형을 무척 좋아한다. 영철이 형은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무릇 시인이란 마음 씀이 많은 사람이다.” 영철이 형은 무척 마음 씀이 많은 시인이다. 이런저런 모든 여린 것들에 마음을 나눈다. 내가 형의 시 중에서 무척 좋아하는 시를 꼽으라면 우짜노를 먼저 꼽는다. 시집 그림자 호수에 실린 시를 잠시 인용해보면 비 오는데 어디 한군데 마음을 쓰지 않은 곳이 없다.

지난봄, 화분에 새싹이 올라오는 좋은 날 내가 거처하는 누옥엘 영철이 형이 다녀가셨다. 영철이 형은 내 고향 선배이기도 하고 한국일보 신춘 선배이기도 하다. 우리는 봄도다리를 안주로 낮술을 마셨다. 그날도 내가 영철이 형을 처음 만난 스무살 적 얘기를 또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내 젊은 시절과 형의 아득하던 시절에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비 온다, 우짜노. (성선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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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시로 여는 수요일] 
입력2023-05-31 07:00:28 수정 2023.05.31 07:00:28

저승꽃

최영철


세상이 행한 모든 검사 필하였다는 품질보증서

혹독했으나 견딜 만은 했지

더 이상 살펴볼 것도 없다며 하늘에서 내린 인증마크

여기 살다 다른 세상 갔을 때

자랑스레 꺼내 보일 입국허가서

천지사방 쏘다녀도 좋은 특수여권

오늘 보니 저 어르신 별 하나 더 달아

큰별 모두 일곱 개

그 아래 총총 떠오른 잔별 수두룩

검색대 무사통과하며 빙긋이 웃으시네

거기 가면 별이 많아야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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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도 환영받지 못하던 꽃, 이승에 핀 저승꽃. 잘못 배달된 편지에 박힌 우표처럼 여겼는데 품질보증서라니. 하늘에서 내린 인증마크이자 입국허가서이자 특수여권이었다니. 안쓰럽던 어머니가 갑자기 자랑스럽다. 세상엔 참 겸손한 사람이 많기도 하다. 훈장 같은 저승꽃 가리려고 컨실러 바르고, 레이저 시술을 받으러 간다. 곧 멸종 위기종 꽃이 될 것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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