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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짜노

 

최영철

 

 

, 비 오네

자꾸 비 오면

꽃들은 우째 숨쉬노

 

젖은 눈 말리지 못해

퉁퉁 부어오른 잎

 

자꾸 천둥 번개 치면

새들은 우째 날겠노

 

노점 무 당근 팔던 자리

흥건히 고인 흙탕물

 

몸 간지러운 햇빛

우째 기지개 펴겠노

 

공차기하던 아이들 숨고

골대만 꿋꿋이 선 운동장

 

바람은 저 빗줄기 뚫고

우째 먼길 가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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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철 형은 느긋하다. 걸음걸이도 느긋하고 말투도 느긋하다. 어디 급한 데가 없다. 그러나 생각만은 단호하다. 나는 이런 영철이 형을 무척 좋아한다. 영철이 형은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무릇 시인이란 마음 씀이 많은 사람이다.” 영철이 형은 무척 마음 씀이 많은 시인이다. 이런저런 모든 여린 것들에 마음을 나눈다. 내가 형의 시 중에서 무척 좋아하는 시를 꼽으라면 우짜노를 먼저 꼽는다. 시집 그림자 호수에 실린 시를 잠시 인용해보면 비 오는데 어디 한군데 마음을 쓰지 않은 곳이 없다.

지난봄, 화분에 새싹이 올라오는 좋은 날 내가 거처하는 누옥엘 영철이 형이 다녀가셨다. 영철이 형은 내 고향 선배이기도 하고 한국일보 신춘 선배이기도 하다. 우리는 봄도다리를 안주로 낮술을 마셨다. 그날도 내가 영철이 형을 처음 만난 스무살 적 얘기를 또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내 젊은 시절과 형의 아득하던 시절에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비 온다, 우짜노. (성선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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