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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을 기다리는 일은 너무 길었나 봐요

           -소설가 윤정규 선생을 추모하며


                                                            

                                                                                         한 창 옥                               


오월을 기다리는 일은 너무 길었나 봐요

한껏 부풀고 있던 꽃망울도 불끈불끈

심장 소리 내며 일제히 불을 밝히고 있는데

떠난 시간도 만남을 위해 파업을 하나 봐요


누구나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겠지만

다 허물어 보지 못하고 빛처럼 지나가는 게 생인가 봐요

젊음의 유행이 출렁이는 시퍼런 바다 속 같은 시대

잘 삭혀져 숙성된 지극히 편안한 색의 깊이를 보게 해주신

그 위엄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지요


언젠가 춘계문학 포럼이 있던 날 서면 뒷골목에서

먹는 일도 먹히는 일도 세상을 살아 있게 하는 질서인 것을

쉬운 길 찾자고 역사를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고

날카로운 의미를 던져 주시던 호탕한 웃음에 깃든

초연한 멋은, 생명을 키워 낸 동지에 가득한 체온처럼

우리들 가슴에 환히 남아 있지요


                      -시집 『빗금이 풀어지고 있다』 한국문연


한창옥/ 서울 생. 시집 『다시 신발 속으로』로 작품 활동 시작. 계간 《부산시인》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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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동면했던 생명들이 돌아오고 멀리 갔던 새들이 돌아온다. 마음 문을 닫았던 사람들이 다시 저자거리로 돌아오는 달이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소설가요 언론인이었던 윤정규 선생은 2002년 5월 28일 서거하셨는데 그 전날 신문사에 보낸 시론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화려하고 웅장한 청사 짓기를 꼬집고 있다. 선생은 이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그릇된 현실에 대해서는 신랄하셨지만 인간적인 면모는 더없이 소탈하고 다정하셨다.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분을 누군가도 그리워하고 있으니 세상이 그다지 외롭지만은 않다.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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