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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을 따라 걷다

 

                                                                                                     최 영 철

                                                          


  봄이 깊다. 저 멀리 산과 들에서 살랑대는 봄꽃들이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오늘 아침 지난 몇 달 동안 미루어두었던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그것을 운동이라 하지 않고 산책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운동은 뭔가 적극적이고 맹렬한 느낌이 들어 좋지 않다. 다른 것들을 과감히 떨치고 일어서는 결단력과 목표를 향한 줄기찬 추진력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그런 요소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일사불란한 운동성은 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자유로운 요소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지난 년대의 과오를 떠올리게 한다.

   하루 종일 조깅과 헬스클럽, 등산과 찜질 목욕 등으로 소일하는 운동족들에 대한 거부감도 없지 않다. 하루 두세 곳의 병원을 순례하는 건강 염려증의 노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집착이다. 인간에게 건강은 어떤 가치 있는 일을 생산하기 위한 동력을 제공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건강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걷는 행위는 정신과 육체의 적절한 균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좋다. 뛰는 행위는 육체는 활발해지지만 정신은 침체되고, 멈춰 선 행위는 정신은 활발해지나 육체가 침체된다. 걷는 행위는 정신과 육체가 사이좋게 어깨를 겨누고 나란히 가는 형상이다. 나는 그 둘을 다 데리고 갈 수 있는 걷는 행위가 좋다.

  수령 오백년의 천연기념물 나무가 두 그루나 있는 공원길과, 봄나물의 향기가 가득한 재래시장과, 꽃들이 만발한 강변 산책로를 돌아 오랜만의 산책이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가볍게 땀이 배어나오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몸과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것은 몸을 움직인 운동의 효과이기도 하며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바지런한 이웃의 삶을 보고 느낀 정신적 충만감이기도 하다.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나는 오늘도 혼자 걸었다.

  걷기는 별다른 준비 없이 아무 때나 부담 없이 시작 할 수 있고 과다한 운동이 주는 부작용이 없다는 게 우선 큰 장점이다. 격렬한 운동처럼 식욕을 돋우지 않아 체중이 자연스럽게 감소하고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된다. 혼자서 같은 코스를 반복해 걷다보면 곧 싫증이 나기 쉬우므로 집 주변에 여러 산책 코스를 개발해 놓고 번갈아 가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걷기의 자세에 관해서도 여러모로 충고하고 있다. 아랫배를 앞으로 내민 자세로 걷는 것은 배 근육을 자극하지 못하므로 등을 곧게 편 자세로 아랫배를 힘껏 안으로 집어넣고 걷는 것이 좋다. 보폭은 평소 걸음보다 약간 넓게 하고 발은 뒤꿈치부터 땅에 댄 뒤 발끝으로 차듯이 앞으로 내민다.

  이번 달에는 걷기를 권장하는 책들 중에서 철학적인 깊이가 있는 책을 몇 권 소개할까 한다.

  『걷기예찬』(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은 프랑스의 사회학자가 쓴 것으로 걷는 행위를 통해 생명의 예찬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와 같은 인식에 이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이 없는 걷기는 비인간적인 걷기이며 여기에서 벗어나 "주저해왔던 일을 결행하기 위하여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길건 짧건 어느 한 동안에 있어서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조지프 A 야마토 지음,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는 인류가 첫 발걸음을 뗀 600만 년 전의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길을 좇아, 인간과 세상이 걷기를 통해 무엇을 나누고 이루어왔는지를 담아낸 책이다.  '걷기는 말하기다'라는 테마를 통해, 걷기의 역사를 다양한 자료와 광범위한 지식을 바탕으로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과 자아, 그리고 육체가 만드는 소리 없는 대화이자 인류가 가진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으로서 걷기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짚어낸다.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효형출판)은 30년간의 기자생활을 퇴직한 저자가 예순 둘의 나이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서안(西安)을 잇는 1만2천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여행한 일부 성과물이다. ‘내겐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는 말로 앞으로 남은 여정에 대한 설렘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일생동안 지구를 22번 도는 거리를 걷는 인간의 걷기에서 영감을 얻어 쓴 책『걷는 행복』(이브 파칼레 지음. 하태환 옮김. 궁리출판)도 걷기의 가치를 예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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