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최영철시인이 쓰는 작품속 부산] <3> 가요 '동백아가씨'
시린 겨울 온몸으로 이겨낸 짙붉은 눈물 
사랑의 과정은 아프며 길고 사랑의 열매는 달지만 잠깐
부산일보 2006/03/18일자 020면 서비스시간: 16:59:09
 
동백은 강건한 꽃이다. 늦겨울에서 이른 봄 사이,혹한에 시달리며 그럭저럭 겨울을 견뎌낼 내성이 생겼을 때 동백은 핀다. 추위에 얼어붙은 대자연의 감각세포를 두드려 깨우며,이제 그만 봄을 포기하려는 우리를 나무라며 동백은 핀다. 무채색의 겨울, 빛을 잃고 맛을 잃고 향기를 잃어갈 즈음 동백은 핀다. 이대로 꽁꽁 얼어붙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며 동백은 핀다.

사진 설명:겨울에 동백은 강건한 꽃이다. 동백은 봄에는 애절한 꽃이다. 계절 따라 동백은 강건하다가도 애절해진다. 동백이 그러는 사이에 겨울은 가고 봄은 깊어진다. 동백을 보러 해운대 동백섬에 갔다. 사진=문진우 프리랜서
동백은 애절한 꽃이다. 겨울 칼바람을 꿋꿋이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그것을 짙붉은 입술로 녹여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마침내 찾아온 봄을 다 껴안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아지랑이처럼 다투어 피는 작은 싹들 위에 그 육중한 몸을 내려놓는다. 살얼음의 겨울은 나의 것이고 이 환장할 봄기운은 모두 너의 것이라며 땅 속 씨앗들의 거름이 된다. 왜장을 안고 강물에 뛰어들었던 논개처럼,동백은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몹쓸 겨울을 부둥켜안고 아래로 떨어진다.

강건하면 자신만만하기 쉽고 애절하면 구차하기 쉽다. 그러나 동백은 강건하면서도 애절하다. 강건해지려고 이를 악 무는 사이 안은 애절해졌고,그 애절함이 님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다시 이를 악 무는 사이 밖은 더욱 강건해졌다. 강건하나 자신만만하지 않고 애절하나 구차하지 않다. 그렇게 단련된 것이 동백이고 그 동백이 부산을 상징하는 꽃과 나무가 된 것은 필연이었다. 짙붉은 동백꽃은 모진 세월을 견딘 부산의 얼굴로 입을 다물고 피어 있다. 동백섬에도 시청 광장에도 우리 집 화단에도 피었다.

그리고 지금 장렬하게 떨어지고 있다. 자신의 몸을 갈가리 찢으며 남은 자의 가슴에 한 아름 상처를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갈래꽃과는 달리,통꽃인 동백은 온몸으로 일시에 툭 떨어진다. 따스하고 찬란한 봄의 영화는 이제 막 피어난 어린 것들에게 다 주고,한 점 원망과 미련도 없이 겨울의 등을 떠밀며 사라진다.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들,구차하게 뒤끝을 남기지 않는 부산의 기질을 닮았다.

그렇다고 어디 속조차 의연했으랴. 혹여 님이 힘들어하실까봐 무심하게 매정하게 돌아서 왔지만 모퉁이를 돌아서고 난 뒤,님이 보지 못하는 먼 곳까지 물러선 뒤 동백은 혼자 흐느껴 울었을 것이다. 떨어진 동백은 그 얼룩진 눈물로 더 짙붉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멍들어버린 가슴 빛깔이 저러할 것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의 기억이 꽃을 피우기 위해 지새운 기나긴 겨울밤이라면 빨갛게 멍이 든 꽃잎은 아주 잠깐 누리고 가는 이 봄의 영광이다. 사랑의 과정은 아프면서 길고 그 끝에 맛보는 사랑의 열매는 달지만 아주 잠깐이다. 동백은 피기 위해 오래 힘들었으나 너무 빨리 쉽게 진다.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 덧없다.

노래,특히 대중가요는 그 애절함에 기댄다. '동백아가씨'는 작사 작곡 노래의 삼박자가 그 애절함의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백영호의 애조 띤 선율과 그리움에 멍든 가슴을 동백꽃에 비유한 한산도의 가사와 스물네 살 이미자의 능숙한 노래가 잘 버무려져 있다.

대중가요는 그 시대 민중들의 정한을 담아낸 양식이지만 이 노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유별난 사연을 갖고 있다. 곡이 세상에 나온 지 2년만인 1966년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 되고 1970년 음반이 판매금지 되는 아픔을 겪었다. 걸핏하면 왜색이나 퇴폐를 이유 삼던 시절이었다. 어떤 이는 금지곡이 된 연유가 곡이 아닌 가사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동백아가씨'의 '동백'이,비슷한 시기에 터졌던 독일간첩단 조작사건인 동백림사건을 연상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는 것이다.

20년 금지곡 딱지를 뗄 수 있었던 것은 1987년에 찾아온 민주화 열풍 덕이었다. 당시 한국공연윤리위원회는 6·29 선언 이후 처음 실시된 문화 해금 조치의 일환으로 그동안 금지곡으로 묶여 있던 국내 가요 382곡 가운데 '동백아가씨'를 포함한 186곡을 해금시켰다. 금지곡 딱지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입으로 불려 지던 국민가요로서의 '동백아가씨'를 가벼이 여길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 노래는 1964년 개봉한 김기 감독,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곡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이 노래의 작사가 한산도,작곡가 백영호는 각각 부산 부평동과 서대신동이 고향이었고 영화의 첫 촬영지도 다대포 해변이었다. 작곡자는 30년 넘게 산 고향 부산의 정서를 이 노래의 선율로 녹여냈다고 훗날 회고한 바 있다. 작곡에 걸린 시간은 단 두 시간 정도였다. 영화 '동백아가씨'의 줄거리가 녹아있는 가사를 넘겨받는 순간 몇 차례 기타를 퉁겨 보면서 거침없이 악보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서울 명보극장에서 개봉됐던 영화는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간판을 내렸는데 노래가 히트하면서 을지극장 재개봉에 들어가 매진사례를 거듭했다. 당시 이 노래를 보급한 레코드사 앞에서 2일을 기다려 판을 구해갔다는 기록이 있다. 주제가가 영화를 살렸던 셈인데 지구레코드사 임정수 사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음반이 200만 장 정도 팔려나갔다고 한다. 1990년대 김건모가 수립한 음반 판매량 200만 장이 공식적인 한국 최고 기록인 점에 비추어 볼 때 가히 선풍적인 인기였다. 열아홉 살 나이에 '열아홉 순정'을 불러 데뷔했던 가수 이미자를 엘레지의 여왕 자리에 올려놓은 것도 이 노래였다.

작사 작곡자는 2000년을 전후해 각각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작곡자 백영호는 생전에 '여러 곳에서 '동백아가씨' 기념비를 세우자는 제의가 있어도 거절했는데 이 노래의 음악적 토대이며 나의 고향인 부산 동백섬에 기념비를 세우자고 하면 기꺼이 응할 것'이라는 말을 한 인터뷰에서 남긴 바 있다.

'詩와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도 서해가 희망이다  (0) 2008.04.05
오월을 기다리는 일은 -소설가 윤정규 선생을 추모하며  (0) 2008.03.11
겨울아 고마워  (0) 2008.03.01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  (0) 2008.02.29
봄, 화답  (0) 2008.02.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