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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자술 연보

 

 

 

19561222일 동짓날 오후, 경남 창녕군 남지읍, 조부모와 큰집 식구와 고모 등 10여명의 대가족이 살던 집에서 아버지 최문갑 어머니 정덕시의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남. 아버지가 두 번째 군복무를 하실 때였고 아무도 출생신고를 해주지 않아 나는 2년 동안 아직 세상에 없는 아이였음.

 

1959년 즈음, 부모님을 따라 부산으로 이주. 범일동 달동네에 주인집과 백열등 하나를 같이 쓰는 반칸짜리 방에서 한동안 성장. 울음을 터트리면 어머니가 힘들었을 것이므로 울음을 참는 것부터 배웠을 것.

 

1963, 범일동 매축지 셋방에 살 때 성남국민학교 입학. 3학년 무렵 아버지가 집도 보지 않고 술자리에서 친구분과 매매계약을 하는 바람에 부암동의 한 칸 반짜리 작은 집으로 이주. 광무국민학교 전학 후 졸업.

 

1969, 부산진중 입학. 2학년 초입 문예반을 지원해 얼떨결에 문예반장이 되었으나 나의 문예반 활동은 그 첫 시간이 전부. 막연한 허무로 집을 나와 낯선 봄밤을 헤매다 큰 교통사고를 당함. 2년 가까운 병원 생활과 세 번의 수술 후 겨우 걸을 수 있게 됨. 목발을 짚고 스스로 교회를 찾아가 중등부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으나 번뇌와 망상이 나를 놓아주지 않아 기독교인이 되는데 실패함. 4년만에 중학교 졸업.

 

1973, 부산진고 입학. 연지동으로 이사. 학업을 놓치고 쓸데없는 낙서나 끄적거리는 것으로 소일. <학원>을 비롯한 학생 잡지와 신문의 독자문예에 시와 산문을 올리는 재미로 십대 후반을 보냄.

 

1976, 대학에 진학할 처지가 아니었으나 달리 할만한 게 없었으므로 경동공전(현 동의대) 야간부 건축과 입학. 낮에는 시립도서관에서 시와 소설을 읽고 저녁에는 막걸리집에서 알게 된 벗들과 개똥철학을 펼치는 것으로 소일함. <시문학> 대학생문예 입선.

1978, 용케 대학 졸업장을 받음. 그 즈음을 전후해 45년간 학원 독자문예에서 이름을 익힌 전국의 몇몇 문청들과 <시림>동인, 부산을 중심으로 한 문청들과 <시대> 동인 활동.

 

19771979, 한 동인지에 발표된 시가 좋아 백방으로 수소문해 조명숙을 만남. 책이나 읽을 생각으로 부모님을 졸라 작은 책방을 열었으나 몇 권 팔린 하루 매상을 찾아온 벗들과 막걸리로 탕진하는 바람에 책장은 하루가 다르게 헐렁해져 갔음.

 

1980, 부산 양정 산동네에 비키니옷장 하나를 놓고 조명숙과 살림을 시작함. 딸 정온 태어남. 동생이 결혼식 날을 잡는 바람에 그 예식장에서 1시간 전에 조명숙과 혼례를 치름. 젖먹이 딸을 안고 경주 12일 신혼여행. 1982년 아들 원석 태어남.

 

1983, 류명선 선생 주도로 발간된 사화집 <지금 여기의 시>에 참여. 이윤택 선생을 만나 1984년 무크 <지평>에 시를 발표하고 지평출판사 실무를 맡음. 1985년 무크 <현실시각> 시 발표. <시와 인간> 동인 활동.

 

1985, 김정한 선생이 발의한 57문학협의회 간사, 1990년대 초반 윤정규 선생이 주축이 된 부산민족문학인협의회 사무국장, 1986년 정일근 시인과 함께 발의해 몇 년간 지속된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 활동, 무크 지평 편집동인 등으로 지역문학운동에 힘을 보템.

 

1985, 밥벌이를 찾던 중 친척이 제조하던 미니카로 양정운수(?) 시작. 공터를 구해 땅을 고르고 수시로 고장 나는 미니카를 손보느라 연장을 만지면서 시 <연장론>을 마감 전날 완성, 1986년 한극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 이후 2년 남짓, 월간 <부산여성> 편집장, 도서출판 글방 편집장으로 일함.

 

1988년 김수경 선생을 따라 상경해 열음사, 계간 <외국문학>, 월간 <문학정신> 편집장으로 일함. 정일근 시인의 권유로 시힘 동인에 합류. 서울생활을 계속할 것인지롤 놓고 가족투표를 한 결과 2(아비와 아들) 2(어미와 딸) 동점이 나왔고, 가장의 직권으로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결정.

 

 

1990, 부산 양정동에 새 둥지. 월간 <현장>(발행인 정의화) 편집부장으로 4년여 동안 일함. 1994년부터 3년간 빛남출판사(발행인 이상개) 주간으로 단행본과 계간 <문학지평> 편집. 1996년 출판 일을 접고 다시 책이나 읽으려고 도서대여점을 염.

 

1997, 늦가을 귀가 도중 머리를 다쳐 뇌수술. 몇몇 선후배들이 장례를 의논했다고 하나 약간의 후유증을 가진 채 다시 살아남. 1997년 봄부터 78년간 부산예술대 문창과와 부산외국어대 국문과 출강.

 

1999년에서 2002, 계간 <관점21, 게릴라>(발행인 이윤택). 주간. 200315년 동안 살았던 양정에서 수영으로 이사. 우리 힘으로 처음 집을 샀고, 빚 갚느라 조명숙(소설가)과 열심히 산문을 씀. 수영팔도시장, 푸조나무, 곰솔, 와목 등을 만나 새 기운을 얻음. 2006년 아버지를 여의고, 2007년부터 2년여 동안 김해시 생림면 마사리 야산으로 주말 텃밭 농사를 다니며 좀 더 큰 기운을 얻음. 2010년 한국방송대 문화교양학과 졸업.

 

2009년 이후, 다시 이윤택 선생과 도요출판사를 부산 거제동에 등록하고.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 낙동강변의 작은 분교에 연극과 문학을 중심으로 한 작업공간 도요창작스튜디오 조성. 문학 연극 단행본과 도요문학무크를 시 소설로 나누어 발행하고 도요가족극장의 연극 공연과 저자 초대 맛있는 책읽기 매월 진행(20143월 현재 55).

 

2011, 1년 동안 두 집 살림을 하다 부산집이 팔려 도요마을로 이주해 외지고 막다른 강마을 주민이 됨. 2013, 비상교육과 창비 발행 국어교과서 시 수록. 2014, 김해로 옮겼던 도요출판사 주소지를 다시 부산으로 옮기고 부산과 김해를 오가며 일하고 있음.

 

<출간>

시집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1987, 열음사)

시집가족사진(1991, 생각하는 백성)

시집홀로 가는 맹인 악사(1994, 푸른숲)

시집야성은 빛나다(1997, 문학동네)

시집일광욕하는 가구(2000, 문학과지성)

시집개망초가 쥐꼬리 망초에게(2001, 문학과경계)

시집그림자 호수(2003, 창작과 비평)

시집호루라기(2006, 문학과 지성)

시집찔러본다(2010, 문학과 지성)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2014, 산지니)

시선집엉겅퀴(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

산문집우리 앞에 문이 있다(1993, 빛남)

산문집나들이 부산(2002, 해성)

어른을 위한 동화나비야 청산 가자(2005년 개정판, 문학과경계)

산문집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2008, 산지니)

산문집영철이하고 농사 짓기(조명숙 공저)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2014 년.  산지니)

산문집 『시를 위한 산문-변방의 즐거움』(2014 년.  도요)

 

57문학협의회 간사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 간사

부산시인협회 사무국장

부산민족문학인협의회 사무국장

부산작가회의 부회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기 문학위원

한국작가회의 이사

계간 시평 편집자문위원

 

[현재]

격월간 시사사 공동주간

계간 시선 자문위원

계간 발견 자문위원

도서출판 도요 주간

 

[수상]

2000년 백석문학상 (창작과비평사 주관)

2010년 최계락문학상 (국제신문사 주관)

2011년 이형기문학상 (진주시, 격월간 시사사 공동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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