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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 더위마저 한입에 쏙~

  

 

'시원한 소식 없는 이 더운 여름을 아예 통째로 쌈 싸 먹을 수는 없을까.' 고등어 쌈장을 얹어 입속에 넣으니 시원한 쌈밥 사이로 고등어 한 마리가 빠르게 헤엄쳐 지나갔다. 강원태 기자 wkang@ 

 

고등어 쌈장의 12가지 재료가 박석규 조리장의 손을 거쳐 하나의 쌈장으로 버무려진 다음, 조촐한 밥상 하나를 온전하게 이루었다. 

# 세상과 날씨가 무거우니 가볍게 쌈 싸 먹자


날씨도 무겁고 세상도 무겁다. 이쪽저쪽에서 쌈질하고 있는 이 불온한 세상을 '쌈빡하게' 쌈 싸 먹을 수는 없을까? 최영철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쌈 싸 먹고 싶다/ 푸른색을 어쩌지 못해 발치에 흘리고 있는/ 잎사귀 뜯어/ 구름 모서리에 툭툭 털고/ 밥 한 숟갈/ 촘촘한 햇살에 비벼/ 씀바귀 얹고/ 땀방울 맺힌 나무 아래/ 아, 맛있다'('여름' 전문). '아, 맛있다'는 여운이 상추 잎에 물방울처럼 매달린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래, 쌈에 밥 한 숟가락 싸 먹으니 초여름이 청초하고 싱그럽다. 가벼워진다. 쌈의 핵심은 아무래도 '푸르싱싱한 온갖 쌈채'다. 바로 땅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쌈과 혀 사이의 먼 거리를 메워주는 감칠맛의 역할을 하는 것이 쌈장이다. 이 쌈장의 변신이 구수하다. 물론 구수한 된장이면 군더더기 없이 그저그만이라는 '수구파'도 있겠고, 된장에다가 다진마늘과 고추장을 함께 버무려 만든 '기본 쌈장'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전통파'도 있겠다. 하지만 쌈장도 멋지게 변신을 한다. 아이들이 그 구수한 맛에 까르륵 넘어갈 정도였다.


# 고등어 쌈장을 만들다


롯데호텔 부산 한식당 '무궁화'의 박석규 조리장에게 "쌈장 만들기 시범을 보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강된장, 고등어 쌈장, 약고추장, 두부쌈장, 경상도식 회 쌈장, 5가지의 레시피를 소개했으며 그 중에서 고등어 쌈장을 직접 만들어 보여줬다.


고등어 쌈장에는 재료가 12가지나 들어갔다. 다진 파, 다진 양파, 된장, 고추장, 잣, 홍고추, 풋고추, 물엿, 다진 생강, 참기름, 다진마늘. 쌈장 하나에 함께 섞여 들어가는 이 많은 '세상들'! 자고로 요리란 이런 것이다. 쌈장을 우습게 알다가는 보쌈질 당할 수 있을 법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이 고등어인데 통조림 고등어를 사용하면 편하다. 고등어는 잘게 부숴야 한다. 인터넷을 뒤적이면 참치 쌈장이라는 것도 있는데 고등어 대신 참치를 넣으면 되는 것이다. 실상 영양가 높다는 꽁치 등 등푸른생선은 뭐든지 쌈장으로 만들 수 있다.


고등어 쌈장의 12가지 재료들은 입맛 따라, 주방 사정 따라 더하고 뺄 수 있는 것들이다. 잣은 먹다가 한 알씩 씹히면 향취가 이는데 잣 대신 땅콩을 넣어도 무방하다. 다진 생강은 생선 비린내를 덜기 위해서 넣는다. 홍고추 풋고추는 색의 조화를 주기 위한 것인데 홍고추가 없으면 또 어떠랴. 박 조리장은 "매운 청양고추를 꼭 넣어야 쌈장이 제맛을 낸다"고 했다. 그러나 매운 맛을 싫어하면 맵지 않은 풋고추를 썰어 넣어도 좋다.


박 조리장은 12가지 재료들을 섞어 한 자리에서 쌈짱으로 버무려냈다. 그러나 "이들 재료를 후라이 팬에 올려 가열시키면서 조려내도 된다"고 그는 말했다. 요리가 그런 것이다. '레시피'라는 하나의 범상한 길이 있을 뿐, 결국에는 개별적이고 독자적이고 고유한 것이 요리다.


# 상추 당귀 케일 배추 깻잎 봄동이 아삭거리다


고등어 쌈장이 "이제 먹어달라"고 아우성쳤다. 한 접시의 쌈채가 나왔다.


깻잎의 독특한 향이 십리를 달려갔다. 깻잎의 향을 누릴 줄 알 정도면 한국 사람의 입맛이 다 됐다라는 말이 있다. 외국인들이 정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깻잎의 독특한 향이다. 봄동은 드세면서 굵었으며 무 맛에 근접하는 알알한 뒷맛을 남겼다. 깻잎과 봄동이 입속에서 아삭거릴 때 고등어 몇 마리가 헤엄쳐 지나갔다. 고등어가 아니라 '구수한 무엇'일 따름이었다.


흰 배추의 맛은 깔끔하고 선명했으며 당귀는 보약 한 그릇을 삼킨 듯한 약향으로 입 안을 점령했다. 그 속속들이에 고등어가 맛의 풍미로 헤엄치고 있었다. 쌈 싸 먹는 것의 즐거움은 채식의 느꺼움이자, 쌈장의 변신을 누리는 즐거움이었다. 같이 시식한 이들은 "아 부드럽다" "아이들도 좋아하겠다" "고등어 비린내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며 신기해했다. 가볍고 상큼한 한 끼였다.


# 장 문화, 부산은 '두껍고' 서울은 '얇다'


고등어 쌈장의 요체는 쌈장에 단백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참치 쌈장, 꽁치 쌈장이 다 그렇다. 그런데 "이들 생선 쌈장은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 경남의 특징적인 쌈장"이라고 박 조리장은 말했다. 서울 경기에서는 생선 대신 '두부'로 단백질을 대신한 '두부 쌈장'을 만들어 먹는다. 비유컨대 장(醬) 문화의 경우, 서울 경기는 '얇고 간결하며' 부산 경남은 '두껍고 투박하다'. 순대를 부산에서는 된장에 찍어 먹지만 서울에서는 소금 고춧가루에 찍어 먹는다. 회를 먹을 때 부산에서는 된장에 얼마나 많이 찍어 먹는가. 박 조리장은 "회 먹을 때 서울에선 된장을 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경상도식 회 쌈장'을 만들어 회 맛을 다르게 한 번 맛보시라.


최학림 기자 theos@busanilbo.com 

 / 입력시간: 2008. 07.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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