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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촛불처럼

 

 

 

최영철

 


 

 
세상에는 참 많은 불이 있다. 산불 같이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큰 불이 있는가 하면 호롱불처럼 작고 여린 불도 있다. 매운 연기만 일으키는 모깃불이 있는가 하면 모든 비극의 화근이 되는 우리들 마음속의 울화도 있다.

항간에는 세대 간의 성정을 불에 비유한 우스갯말이 떠돈다. 십대는 쉬 불이 붙고 꺼지는 성냥불과 같고, 이십대는 근처만 가도 뜨거운 장작불과 같으며, 삼십대는 은근한 화력을 자랑하는 연탄불과 같다고 했다. 사십대는 겉으로는 꺼진 것 같아도 속불은 살아 있는 화톳불과 같고, 오십대는 힘껏 빨아 당겨야 불이 붙는 담뱃불과 같으며 육칠십대는 불도 아닌 것이 설쳐대는 반딧불, 소문만 무성한 도깨비불과 같다 했다.

이 비유는 한 사람의 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듯싶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이러했다. 식민지 시기와 해방 직후가 성냥불과 장작불에 가까워 다급하고 절실했다면, 근대화와 민주화 시기는 연탄불 담뱃불과 같이 줄기차게 불씨를 이어갔다. 또 개방화 이후는 반딧불 도깨비불처럼 환상과 허상에 잠긴 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참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촛불은 강한 불이 아니다. 장작불처럼 일시에 타오르지도 않고 숯불처럼 잉걸불을 만들지도 않는다. 전깃불처럼 일정한 빛을 오래 비추지도 못하고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지도 않는다. 작은 바람에도 쉬 꺼지기 쉽고 넓은 곳을 밝히거나 데우지 못하는 촛불은 차라리 주어진 조건을 감수하는 극기와 희생의 몸짓을 닮았다. 그러나 그 소극적 인내가 자아내는 정조는 목 놓아 터트리는 통곡에 비길 수 없는 호소력을 지닌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앙다문 채 굵고 뜨거운 눈물만을 뚝뚝 흘리는 촛불이 지금 거리 곳곳을 뒤덮고 있다.

다시 6월, 그때와 지금의 6월은 확연히 다르다. 1987년 6월은 노동자와 대학생이 먼저였고 치떨리는 노여움과 두려움이 동반한 시위였다. 최루탄이 터지고 화염병이 날고 백골단의 추격을 피해 시위대는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떤 결연한 의지와 굳은 맹세가 교차했다. 선동적인 구호와 전투적 자세가 시위를 지탱한 힘이었다.

그날에 비해 오늘의 시위는 집회요 문화다. 어디 산책이나 소풍을 나온 듯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가볍다.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 단위, 교복 차림의 중고생들, 그것은 일탈이 아닌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 후미에 대학생과 노동자가 따라붙었다. 과격한 깃발과 구호도 없고 최종 목적지를 미리 정해두지도 않았지만 나아갈수록 사람들이 꼬리를 무는 아주 이상한 시위였다. 우직한 소처럼 머리를 디밀었던 지난 시대의 시위와는 확실히 달랐다. 여학생들이 전경들에게 과자를 던져주고, 뽀뽀뽀 동요를 개사한 우스꽝스러운 노래가 행진곡처럼 박자를 맞추었다.

한 시민은 "놀면서 싸우는 사람들을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놀면서 싸운다? 단박에 끝날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부모를 따라 나온 초등학생 아이도 의젓하게 자기의견을 내놓는다. 여유가 있다. 적당한 무마책으로는 이길 재간이 없어 보인다. 오늘의 집회를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현장학습장쯤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들을 이런 능구렁이로 만든 것은 정치권이었다. 쇠파이프와 과격한 구호가 잠시 등장하기도 했지만 물대포를 쏘는 전경들 가슴에 장미꽃을 달아주고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로 나아가는 새로운 풍속도는 훌쩍 성숙한 시위문화를 보여주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다 제 세상인 줄 아는 정치권에 퍼붓는 부드러운 야유에 다름 아니었다.

뜨거운 6월은 이십년의 시차를 두고 그렇게 부활했다. 민주화와 웰빙, 그 둘은 이질적인 문제로 보이지만 자기 시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민주화는 자유롭게 살 권리를 요구한 것이고 웰빙은 건강하게 살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함께 불거진 대운하와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역시 같은 맥락인 건강권의 수호로 귀결된다. 이를 두고 불순세력 운운하는 집권당의 궁색한 사고방식이 무슨 개그 같다.

가녀린 촛불 하나씩을 가슴에 안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르며 나는 숙연해진다. 가슴마다 촛불을 품은 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의 갈망으로 환하다. 촛불은 초의 몸통인 밀과 백랍과 쇠기름의 희생으로 얻어진 결과이다. 국민이 그 초의 심지라면 위정자는 심지가 다 탈 때까지 자기를 희생해야 할 초의 몸통이다. 그렇지만 아직 그들은 자신들이 심지인 줄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시인
  입력: 2008.06.13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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