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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76> 최영철 시인과 충남 부여

 


모두가 '빛'만 편애할때 그는 '그림자'도 껴안았다
걷다보면 궁남지… 박물관… 낙화암도 10~20분 거리
백제 명소와 유적들은 뚜벅이들 배려한 듯 지척
궁남지 늘어진 수양버들에 순수한 최 시인은 꽂히고…

 
  최영철 시인이 부여 궁남지의 연밭길을 거닐고 있다. 조봉권 기자
남들은 다 할 줄 아는 것을 나만 못할 때, 불편한 것은 둘째 치고 우선 주눅부터 들곤 한다. '운전'도 그 중 하나다. 대한민국 성인 대부분이 주민등록증 대신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주위를 잘 살펴보면 운전을 못하는 '뚜벅이' 성인들이 뜻밖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숫자와 기계라면 '학을 떼고', 주관이 강해 싫은 일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적당한 '귀차니즘'을 미덕으로 삼고 사는 인사들이 많은 예술계에 뚜벅이 비율이 더 높다. 반평생 기자로 살았던 소설가 김훈을 보시라. 그는 몇 년 전 기자도 있었던 술자리에서 "기계와는 정말 친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줄곧 자전거만 타고 다니는 것은 운전면허증이 없기 때문이었던 거다.

뚜벅이들의 표정이 조금 펴지고 있다. 기름값이 로켓처럼 치솟아 초절정 고유가 시대가 닥쳤지만 이들은 끄떡없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운전자들이 폭등한 연료값 탓에 경악과 한숨 사이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을 때 이들은 속으로 은근히 여유를 부린다. '이것 봐, 친구! 나는 지금까지 내 손으로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단 0.1㎎도 오존층을 향해 배출한 적이 없는 사람이야. 지구의 다정한 벗이지'(물론 수많은 생계형 운전자들과 운전이 필수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건 대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입밖에 내는 일은 거의 없다).

가슴 따뜻한 도시, 부여

그러나 이건 작은 자기 위안일 뿐 뚜벅이들은 '주류'가 될 수 없다. 영원한 '마이너'인 거다. 감수해야 할 불편도 만만찮다. 특히 도시를 떠나 여행을 할 때, 고통은 상상 밖이다. 유명하다는 절에 들렀다가 다음 여정으로 옮겨야 할 때, 난감하다. 몇 시간 만에 한 대씩 오는 군내 버스를 기다려?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비싼 택시를 부르랴.

 
  궁남지의 포룡정 앞에서 이번 문학기행에 참가한 이들에게 사인을 해주며 대화하고 있는 최영철 시인.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자동차가 없어도 무한대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명품 도시가 있으니 바로 충남 부여다. '배~액~마~아~강에 고~요한 다~알~밤아, 고~란사에 종소리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으립 구~우~나'. 백제의 도읍지였던 부여에는 숱한 백제 문화의 명소와 유적들이 걸어서 10~20분 사이로 정겹게 붙어 있다. 한적한 거리를 천천히 걸어다니면 국립부여박물관, 정림사지박물관, 신동엽 시인 생가, 백마강과 낙화암, 구드래공원, 궁남지 등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뚜벅이 배낭여행객에겐 천국이다. '마이너'들이 기를 펼 수 있도록 포근하게 안아주는 고도, 그 자신도 '패망한 백제의 마지막 수도'라는 애잔함만큼은 결코 지울 수 없을 '소외된 자'의 감성을 간직한 도시가 부여다.

최영철 시인이 몇 년 전 빨려 들어오듯 이 도시에 들렀고, 궁남지에서 풍경과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시로 쓴 것은 운명 같은 것이었을 거다. 최 시인은 부산을 대표하는 '전국구' 시인이다. 한국 문학계에서 최영철 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전국구 스타' 손민한이 차지하는 비중보다도 훨씬 크다고 보면 맞다.

하지만 그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담담하다. 또는 언제나 무덤덤하다. 지난 8~9년 그를 대하면서 어깨에 힘주고 티 한번 내는 모습도 보기 어려웠다. 그의 눈길은 작고, 사소해 보이고, 힘없어 보이고, 묵묵해 보이는 것을 찾아다니거나 꼭 그런 것들만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같다. 돼지국밥집의 '정구지'와 시장 좌판 할머니에게서 산 호박잎과 수영사적공원의 푸조나무 같은 존재가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이젠 편하게 느껴진다.

최 시인의 시 앞에서 평론가들도 종종 '헛발질'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의 시는 복잡하지 않고, 어렵게 의미를 꼬아놓지도 않고, 단순하다 싶을 정도로 소박하다. 특징이라면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그의 시는 그 자신의 일상생활 그리고 삶의 지향과 한몸이라는 점. 최영철의 시에서 그의 일상생활 따로, 삶의 지향 따로 분리해내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저 한몸인 거다. 시를 쓴다기보다 시를 '살고 있다'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그는 '문학과 삶이 일치하는' 쪽의 시인이다. 또 한 가지는 천진함. 어릴 때 간직하고 있었지만 크면서 잃어버린 천진함이 그의 시 속에는 살아있다. 억지로 꿰맨 흔적 없이 생동한다.

천진하면서 소박하고 생활에 가까운 그의 시에 크고 복잡하되 천진하지는 못한 문학이론을 대입해서 '의미'를 억지로 뽑아내려 하니 '헛스윙'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 그는 부여 궁남지에서 어떤 시를 썼을까.


'겨울 깊어 바람이 서늘해지자/호수를 에워싼 수양버들/누울 자리 찾아 슬슬 물 가까이 내려왔다/호수를 따라 둥글게 모여선 가지들/한파가 닥치면 어서 발을 집어넣으려고/캐시밀론 담요를 깔아놓았다/서로 싸우지 않으려고/저마다 대중해둔 그 담요는/정확한 일인용이다/지금 서둘지 않으면 이제 곧 바람이 와서/호수 전체를 얼음으로 덮을 것이다/수양버들은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단잠에 빠지려는 물의 지느러미를/자꾸만 흔들어 깨운다/잠들지 마 잠들지 마/벌써 저쯤에서는/곯아 떨어진 물의 등을 밟고/얼음이 걸어오고 있다/슬금슬금/남의 집에 발을 찔러넣어보는 살얼음들/수양버들 그림자가 그 차가운 발목을/덮어주고 있다' (부여 궁남지에서 최영철 시인이 쓴 '그림자 호수' 전문. 시집 '그림자 호수'·창작과 비평사·2003년 수록)

"궁남지에서 그림자를 만났죠"

"지금은 초여름이지만 그때 궁남지에 왔을 때는 초겨울이었습니다. 아마 지금처럼 궁남지에 연꽃이 피어있고 버드나무도 풍성해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면 저는 별 감흥이 없이 '좋은 관광지구나'하고 돌아섰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해거름에 차가운 호수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버드나무뿐이었고 그 광경이 포착됐습니다. 사람들은 이분법으로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빛과 그림자'도 그렇죠(그는 실제로 '빛과 그림자'라는 오래된 노래를 불러보였다). 빛은 좋은 것, 그림자는 어둡고 어려운 시간과 공간으로 곧잘 비유합니다. 그러나 빛은 빛대로, 그림자는 그림자대로 가치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궁남지의 정자 포룡정에서 그는 문학기행 참가자들에게 '그림자 호수'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시인은 수양버들의 그림자를 나무들이 누워서 잘 캐시밀론 담요로 느꼈고, 호수의 물이 얼어서 정지해버리려 하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그늘이 호수를 흔들어 깨우는 것으로 보았다. 매일 같이 듣는 말이라고 해봐야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는 식으로 항상 어두운 존재, 불우한 시·공간에 비유되던 그림자가 여기서는 온전한 생명으로 가치를 부여받고 새로 태어난 거다. 같은 시집에 실린 '화엄정진'은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땡볕 속에서 익어가는 벼가 안쓰러워서 나무는 좀 쉬라고 그림자를 드리워줬지만 벼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늘의 뜻은 고맙지만 지금은 자기가 힘들더라도 땡볕 속에서 더욱 자라나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삶에도 그렇게 일부러 땡볕에 있어야 할 시간이 있을 겁니다."

해가 존재하는 이상 지구 어디라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흔한 존재인 그림자에게 눈길을 주는 시인의 마음이 천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림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것이 시인의 일 아닌가. 최 시인과 함께 궁남지와 백마강 그리고 신동엽 시인의 생가와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백제 멸망이라는 큰 슬픔을 겪어본 덕에 마음의 품이 넓은 고도 부여가 그런 일행을 감싸주었다.


◆ 신동엽이 자란 생가 보존 몇년뒤 문학관도 들어서

 
부여에는 갈 곳이 많다. 백제의 역사 유적지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백마강 낙화암 국립부여박물관 궁남지 정림사지와 박물관 구드래공원 등 명소들이 대부분 부여 시내에 몰려 있어 걸어서 돌아보기 좋다. 고층 건물과 교통 체증이 없는 조용한 이 도시의 풍광에서는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차 없이 '국내 배낭여행'을 하고 싶은 이들에겐 최적의 여행지다.

그 중 신동엽 시인의 생가(사진)를 빼놓을 수 없다.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부여읍내의 노른자 땅에 있는 이 생가가 보존돼 있는 것은 인상 깊었다. "신 시인이 이 집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고 이번 문학기행의 현지 안내를 맡아준 문화재해설사 윤순정 시인은 말했다. 신 시인의 부인인 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장이 이 집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고 한다.

부여군은 신 시인의 생가 뒤에 신동엽문학관을 지으려 하고 있다. 현재 땅 매입까지 마치고 설계 공모를 앞두고 있다. 몇 년 뒤엔 한국 문학사를 빛낸 큰 시인인 신동엽의 문학관이 역사와 문화의 도시 부여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신문학행 참가 문의=부산문화연구회 (051)441-0485 동보서적 803-8000 www.문학기행.kr
글·사진=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입력: 2008.06.2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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