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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영철/

얼음조끼를 껴입은 생선들이 줄줄이 누워 있다

줄줄이 엎어져 있다

지난 겨울 연행되어 사지가 묶인 것들

방탄조끼를 껴입고 면회갔다

그들의 적의가 얼마나 살얼음 같은지

감옥 안이 다 꽁꽁 얼었다

일찍이 바다감옥에서

수도 없이 탈옥을 감행하다가

전과에 전과가 쌓여

바다 건너 이 철통요새 독방으로 이감되었다

차가운 종신감옥에 갇혀서도

호시탐탐 도망갈 방도만 찾고 있는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시퍼렇다

스르르 적당히 눈감는 놈이 없는지

서로 노려보고 있다

-‘창작과 비평’ 가을호

살다보면 감옥이 세상인지, 세상이 감옥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영어(囹圄)의 몸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끔 세상이라는 감옥 속에 갇혔다고 느끼곤 한다. 말의, 인습의, 혹은 사랑의 감옥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가끔 예가 종신감옥의 독방이 아닐까 하면서 치를 떤다(아홉살짜리 내 아들도 하루종일 인터넷의 독방에 갇혀 종신형을 감수할 태세다).

연행, 방탄조끼, 감옥, 탈옥, 전과 등등.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대의 저쪽에서 꽤나 친숙했던 단어들이다. 세상의 화법이 바뀌면 이같은 단어들도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보라. 아직도 우리 사는 세상 곳곳에 가시철망 같은 단어들이 진을 치고 마음을 찌르고 몸을 찌른다

생선들은 왜 한결같이 죽어서도 눈을 부릅뜨고 있을까. 시인은 ‘스르르 적당히 눈감는 놈이 없는지’ 서로 감시하느라 그렇다고 얘기한다. 그렇다. 우리를 옥죄고 있는 ‘냉동창고’로부터 탈옥하기 위해서는 좀더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감시해야 할 일이다.

‘썩은 동태눈’으로 질시하고 멸시하지 말고, ‘죽어서도 살아있는 눈’으로 세상과 정정당당히 싸우라고 말해야 할 때다.

〈오광수기자 ok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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