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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 단풍길에서 ㅡ 최영철 시인[공정한시인의사회201812]
낙성대 단풍길에서
막 단장을 마친 잎 하나가 연지 곤지 곱게 칠한 새색시 하나가 이제부터 한 열흘 수천수만 바람을 희롱하며 제 이쁜 자태 뽐내야 할 잎 하나가 눈 어두워 더듬더듬 저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제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세상에나 나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하늘하늘 가야할 길 다 젖혀두고 스산한 내 마음의 빈터에 내려앉습니다 바람이 데리러 오기 전 그 잎 하나 제 가슴에 모셔놓고 애지중지 입 맞춥니다 강감찬 별이 하늘에서 무더기무더기 군사를 거느리고 내려옵니다 오늘의 병정들은 모두 낯빛이 불그레합니다 북쪽 오랑캐 무찌른 승전보 휘날리며 가지마다 내려앉아 몸 부비며 거나하게 축배를 들었습니다 울긋불긋 병사들 한 잔 두 잔 가을바람에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산들산들 댕그르르 기웃기웃 제 가야할 곳 찾느라 분주합니다 휴가 떠난 잎들로 텅 비어 버린 병영을 강감찬 별 혼자 지키고 섰습니다 * 낙성대 : 고려 시대 문신이며 장군인 강감찬이 태어난 서울 봉천동 일대에 조성된 사적공원으로. 그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최영철 ㅣ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돌돌』 『찔러본다』 『금정산을 보냈다』 『호루라기』 『그림자 호수』 『일광욕하는 가구』 『야성은 빛나다』 등과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육필시선집 『엉겅퀴』 등이 있음. 〈백석문학상〉〈이형기문학상〉〈최계락문학상〉 등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8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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