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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회] 영광독서토론회

최영철 시집 <호루라기> 문학과지성사

 

일시 : 2007년 1월 24일

장소 : 영광도서 문화사랑방

사회토론 : 남송우 (부경대 교수, 문학평론가)

지정토론 : 하상일 (동의대 교수, 문학평론가)

 

 

제1부 

 

김윤환 : 반갑습니다. 벌써 우리 영광독서 토론회가 116회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올해는 600년 만에 한번 다가온다고 하는 홍돼지 해, 황금돼지의 해라고 합니다. 그 정해년 새해에 첫 번째로 개최되는 독서토론회, 새해 인사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일동박수) 방금 박수 치신 분은 제가 꼭 기억했다가 한 달에 돼지 한 마리씩 집으로 행운을 듬뿍 담아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올 한해 여러분들 건강하시고 가정에 또 행복과 큰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대상도서는 시집 호루라기입니다. 오늘은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이 진행중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많은 분들이 가 계셔서 오셔야 될 독자님, 또 함께 해야 될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안 계시는 것 갔습니다. 준비를 하면서 저희들은 자리가 너무 꽉 차서 돌아가실 분이 계시면 입구에서 호루라기 좀 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어쨌든 생략을 했어요.

  저는 호루라기를 참 좋아하고, 지금은 안 가지고 다닙니다만, 어릴 때는 항상 가지고 다녔어요. 제가 어릴 때 촌에서 부산에 왔는데 당시에는 깡패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녔어요. 어느 선배 한 분도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니다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호루라기를 불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또 등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등산가면 꼭 호루라기를 호신용으로 가지고 갑니다. 위험에 처했다든지 어려울 때는 말로 하면 잘 못 듣지만  호루라기를 불면 도와줍니다. 또 호루라기는 신호를 대신해주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질서를 유지하게 해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스리랑카에 가 봤는데요, 스리랑카에는 시내버스 정류소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우 자동차, 통근 버스가 글자를 박은 그대로 다니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산 분들이 거기서 주축이 돼서 자전거 비슷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질서유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보시다시피 오늘 작가님은 소개 안 드려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죠. 최영철 선생님은 제가 부산에서 39년 동안 영광도서 경영을 하는 동안에 정말 존경하는 분 중의 한 분입니다. 또 사모님 하고 같이 작품 활동을 하시고요. 책장사는 좋은 책 많이 저술하셔서 출판해주는 분이 제일 고맙습니다. 두 번째 고마운 분이 사가는 분인데, 이 양쪽만 계시면 저는 괜찮아요. 최영철 선생님은 책을 통하지 않고도 신문에도 좋은 글을 많이 쓰셔서 우리 부산 시민들의 문화를 살찌우고 있습니다. 관례대로 최영철 선생님에 대해서 말씀 드려야 되겠습니다만, 특히 책에 소개된 내용대로 말씀드려야 하지만, 다 아시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기가 약간 쑥스럽습니다. 여러분들 이 책 다 사셨지요? 그렇지요? 작가 소개는 생략할 테니 안 사신 분은 꼭 사셔서 최영철 선생님의 약력란을 한 번 봐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영철 선생님은 부산 계시지만은 참 바쁘신 분입니다. 오늘 어려운 시간 내서 우리 영광도서 토론회 116회, 여러분들의 초청에 참석해주셨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동박수) 그리고 영광도서 토론회를 주관하는 오늘의문예비평을 창립멤버이시면서 오늘까지 열심히 도와주시는 문학평론가 남송우 교수님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일동박수). 다음은 오늘의문예비평 현재 주간을 맡고 있는 분입니다. 하상일 교수님 소개드리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남송우 교수님의 사회로 영광독서토론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송우 : 예 반갑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은 시를 굉장히 사랑하시는 분들만 오신 것 같습니다. 오늘의 토론 도서가 최영철 시인의 시집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좀 진지하고 재미나고 아기자기하게 풀려갈 수도 있겠지만, 소설이 아니라서 좀 힘든 부분도 있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오늘 오신 분들은 시를 굉장히 사랑하시는 분들로만 오셨다고 믿고, 아름답고 재미나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봅니다.

  토론 순서는 먼저 최영철 시인의  창작 전후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그 다음으로 비평활동을 하고 있는 하상일 교수님을 통해 이 시집이 가지고 있는 의미, 내용, 또 여러 가지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중간 중간 함께 하신 여러분들이 토론하고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최영철 시인으로부터 호루라기 시집 전반에 걸친 창작전후의 배경, 이 시집 나오기까지의 시작 활동의 방향,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듣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영철 :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선 1월이니까요. 올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또 시나 소설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좋은 작품으로 우리 문학의 대열에 꼭 합류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는 인사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 바가 있습니다. 복을 주겠다는 주체는 없어요. 그냥 많이 받아라. 그렇다는 거죠. 거 참 무책임한 말인데, 아마 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이 있어서 저도 잠깐 갔다가 시작하는 거 보고 왔습니다. 1월은 출발의 달이지만 문학적으로는 신춘문예를 통해서 대거 젊고 패기 있는 신인들이 등장하는 달입니다.

 

제가 신춘문예에 당선한 것이 86년이니까 한 20년, 꼭 20년 되었는데요. 지금도 12월 말부터 해서 1월초까지 굉장히 설렙니다. 이렇게 설레고 매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신춘문예 제도가 꼭 문학을 지망하는 분들만의 잔치가 아니고 독자나 작가나 시인들에게도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다지는 의미 있는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월이 여러분에게 정말 새로운 출발의 시점이 되기를 우선 빌겠습니다. 

  요즘 제게 개인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아버님이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한 7개월 정도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어제는 공원묘지에 가서 납골묘를 계약을 하고 왔습니다. 그 묘는 언젠가는 돌아가실 아버님의 집이기도 하지만 우리 식구들이 같이 들어가니까 저의 집이기도 합니다. 미래의 저의 집을 이렇게 한 번 쓰다듬고 왔습니다. 아주 조그만한 집인데 양지바른 곳에 있어서 좋더군요.

  요즘 유서를 미리 써놓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유서쓰기 운동을 하는데도 있던데요. 자기가 돌아갈 집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도 욕심 없이 남은 시간을 풍요롭게 사는 방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집도 하나의 집입니다. 시의 집이지요. 시의 집은 시인의 집이기도 하죠. 이건 종이와 활자와 잉크로 새겨진 집입니다만, 사실은 시 쓰는 자의 피와 땀과 슬픔과 기쁨 이런 것들이 다 녹아서 만들어진 집입니다. 거기다가 책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분들의 땀이 밴 그런 집이죠. 또 무엇보다 나무의 집입니다. 종이는 오랜 풍상을 견디고 살았던 나무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시의 집이 정말 요즘 잘 안 팔리죠. 조금 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오신 영업팀장님하고 말씀을 나눴는데 80년대에는 문지시집이, 지금 어느 출판사나 비슷한 추셉니다만, 초판이 나오고 한 2,3개월 지나면 재판을 찍고 했는데요, 요즘은 시인에 따라서 기복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떨어졌답니다. 시의 집이 온전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건 시집이 너무 많다는 결과도 되겠죠. 저의 집에만 해도 일주일 단위로 따져 시집이 한 10권에서 20권 가까이 옵니다. 봄, 가을에는 서너권씩 올 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다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구태여 나무를 베어서 종이에 이런 걸 박아야 될까 싶은 시집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의 집이 온전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제가 만든 시의 집은 여덟 번째 집입니다. 여덟 번째 집인데 저 역시 제가 지은 집이 너무 초라하고 또 부끄럽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제 시집을 저는 아직까지 제대로 정독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오면 그냥 팽개쳐 둡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보기 싫다는 거죠. 보기 싫다는 그 힘으로 다시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제 첫 번째 시집 같은 경우에는 페이지가 바뀌었어요. 시 한 편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몇 행이 다른 시에 붙었다는 거죠. 그 사실을 전 모르고 있었는데 재판을 찍겠다고 출판사에서 혹시 틀린 거 있는지 봐달라고 해서 보니까 시집이 그 모양이 돼 있더라는 거죠. 시집을 만든 주인으로서 무관심하고 무책임 했습니다. 근데 사실 그건 부끄러움 때문이지 무관심이나 무책임은 아니라고 저는 변명하고 싶습니다.

  여덟 번째 제가 지은 집도 사실은 아주 못나고 초라하긴 하지만 어느 분의 영혼에 닿아서 단 한 줄이라도, 조그만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집니다. 어떤 작가가 소설을 쓰는 것은 세상에 대한 복수심의 발로였다고 고백한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를 쓴 이유는 복수심은 아닙니다. 복수심도 좋겠죠. 저 같은 경우는 부채감이었습니다. 부채감. 부채감은 저라는 볼품없는 인자를 살게 해준 지구란 땅에 대한 그런 부채감도 있을 테고요. 또 나를 낳고 키워 준 부모님도 있을 테고, 주위 이웃들, 그리고 지금 나를 생존하게 하는 여러 조건들, 자연환경도 있을 테고, 제가 거처를 옮길 때 마다 만나게 되는 이웃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빚을 시를 통해 좀 갚고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 첫 시집이 나온 게 87년이었거든요. 지금 꼭 20년 만에 여덟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3년마다 낸 셈입니다. 그렇게 큰 기복 없이 시를 쓰도록 한 힘은 그런 일종의 부채감이었습니다. 

  호루라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목은 출판사가 붙이기도 하고 시인이나 소설가가 이 제목을 꼭 해달라고 해서 붙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출판사가 선택을 합니다. 제 시집들도 대부분 출판사가 붙여준 것인데요. 이번 시집은 제가 그걸로 하자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몇 개를 뽑아달라는 걸 제가 호루라기 하나만 뽑아주고 이거  합시다. 하고 우겼습니다. 그래서 호루라기가 되었는데, 김윤환 선생님께서 조금 전에 말씀하신 대로 호루라기는 출발과 추임새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또 하나는 정지와 경고의 메시지일 수도 있습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출발하고 춤이 시작되고 잔치 마당이 벌어지고 그렇기도 하고요. 반대로 생각하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가던 걸음을 멈추고, 또는 통곡이 시작되고 또는 경적이 울리고 또는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고, 이렇게 의미가 상반된다는 것이죠. 이번 시집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출발과 진행을 경하하고 독려하는 그런 긍정적인 신호로서의 호루라기로 시가 쓰일 때가 있고요. 또는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그걸 확대하는 의미로 시가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시집은 긍정과 부정이 같이 있습니다. 그래서 좀 혼란스럽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디다. 어느 게 진짜냐? 나는 헷갈린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출발이 있으면 멈춤과 끝이 있습니다.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있고요. 또 끝이 있습니다. 다시 또 시작이 있죠. 한 개인이 깨어 있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겠습니다만 깨어 있는 하루 동안도 이런 긍정과 부정이 늘 왔다갔다 하죠.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기분이 상승되었다가 또 어떤 경우를 만나면 우울해졌다가 참담했다가 이렇게 변화를 반복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저는 세상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개의 축, 이 두 개의 축을 우리가 어떻게 잘 운영하는가가 문제일 것입니다. 양쪽을 끌어당겨서 중간지점에서 만나게 할 것인가, 같이 가게 할 것인가, 같이 가면서 서로 얼싸안게 할 것인가 등등. 그러니까 부정이 없는 긍정은 사실 거품일 수가 많죠. 그리고 긍정이 없는 부정은 너무 아픕니다. 아프고 우울하죠. 두 양극단을 같이 가지고 가면서 같이 놀고자 하는 것, 그것을 안에 받아들여서 소화 시키고 그것을 하나로 변주해내고자 하는 것이 저의 시적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남송우 : 최영철 시인의 이번 시집이 가지고 있는 의미, 시에 대한 입장들이랄까, 시에 대한 생각들을 전반적으로 소개를 했습니다. 이제 최영철 시인이 여덟 번째 지어 놓은 집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서 그 집에 아기자기하게 조성되어 있는 내용들을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상일 평론가로부터 먼저 시집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상일 : 반갑습니다. 최영철 선생님은 아시다시피 부산에서 꽤 오래 활동하신 훌륭한 시인이시고 저같이 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한테는 하나의 교과서처럼 읽었던 시집의 주인공이십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대학 다닐 때 열심히 시 쓸 때, 지금은 시를 못 쓰고 있지만, 대학 신문에 제 시를 뽑아준 적도 있습니다. 이제 부산시단에서는 선배문인으로서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얼핏 그냥 봐도, 근래 들어 토론회에서 우리가 시집을 대상으로 몇 번 진행했는데,  그냥 얼핏 봐도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여기 참석하는 분들의 숫자도 적은 것 같습니다. 근래 들어서 시들이 정말 어려워져 가지고 시의 독자들이 안 그래도 적은데 더 적어지는 그런 현상들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최영철 선생님은 아까 소개하신대로 시력이 한 20이년 되시고 이번 시집이 8번째라고 하니까, 지금 여기 대학생들이 몇 명 와 있을 건데 그 학생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시를 써서 이만큼 자랄 동안 시를 썼으니까 상당히 시에 대해서는 하실 말씀도 많고 생각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비교적 시를 좀 못 되게 보는 편이지만 그동안 제가 생각해 왔던 시의 관점들하고 최영철 선생님 시풍하고는 상당히 일치되는 면이 많아서, 독서토론회에서 질문을 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배문인께 요즘 시에 대한 고민들이라든지 하는 점들을 많이 듣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영철 선생님 시는, 대체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많은 사람들이 논의해왔듯이, 이웃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어떤 시들, 소외된 이웃을 바라보는 시인의 자기 성찰, 이런 것들을 추구해왔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저걸 가지고 과연 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싶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그런 소재를 갈고 다듬는 특별한 안목을 갖고 계시는 분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저는 비평을 하는 사람이지만, 비평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욕망 중 하나가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라는 것인데, 최영철 선생님의 시를 펼쳐 놓으면 거창한 이야기를 할 게 없습니다. 그냥 우리 속에 담겨 있는 진실한 부분을 끄집어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분들에게 편안하게 따뜻하게 다가가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 속에 담겨 있는 인물들이라든지 일상이라든지 하는 소재들은 단순히 정물로써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어떤 모순들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환기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직접적으로, 예전의 참여시 경향처럼, 세상을 향해서 질타한다던지 비판한다던지 하는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냥 어느 순간에 시인의 뜻과 마찬가지로 깨우치고 생각하고 이 세상의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고 하는 시가 최영철 선생님의 시인 것 같습니다.

  좀 큰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첫 시집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가 87년에 나왔다고 하셨으니까 그 시집 이후 여덟 번째 시집까지 별로 변하지 않고 흘러온 것 갔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어떤 변화의 지점을 이야기 할 수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늘 그 모양 그 모습으로 이렇게 이어져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토론을 시작하면서 시력 20여 년 동안 시인께서 일관되게 천착해왔던 시적인 경향이라든지 지향이라든지 세계관이라든지 요런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남송우 : 첫 질문치고는 너무 좀 폭넓은 질문이라서 시인도 지금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될지 난감한 것 같은데, 일단 첫 질문이니까 간단하게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영철 : 자기의 세계관을, 시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요 실제 삶에 있어서도, 요약해서 말할 수 있는 분은 굉장히 뛰어난 분입니다. 타고 날 때 많은 걸 부여 받고 나온 분들이죠. 그래서 소시적부터 나는 이렇게 살겠다, 나는 무얼 하겠다, 이렇게 딱 부러지게 목표를 정해서 인생을 설계하는 그런 분들일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설계가 불가능한 인간이라서 제가 뭐가 되겠다, 되고 싶다, 이런 꿈을 가져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도움되실 것 같아서 말씀을 잠깐 드린다면 저는 10대를 가장 힘들게 보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석고 붕대를 가슴까지 하고, 지금은 그렇게 안합니다만 예전에는 의료 기술이 안 좋아서,  뼈가 많이 부서져서 수술을 했는데도  안 붙어가지고 1년 넘게 누워 있었습니다. 병원 관계자들이나 간호사분들이 참 얼마나 자애롭습니까. 지금 간호사도 그런 분들 많죠. 그래서 저보고 동생처럼 위로를 하고 그랬는데, 저는 그때도 멍청했는가 봐요. 난 뭐 괜찮은데 견딜만 한데, 이랬거든요. 속으로요. 최근 어느 출판사에서 육필시집을 내자고 하면서 연보를 좀 만들어 달라고 그래요. 육필시를 한 60편을 골라서 1시집부터 7시집까지 60편을 골라 썼는데 그 자체가 형벌입디다. 제가 다시 읽는 것도 참 고통스럽다고 했는데 그걸 골라가 쓰려니까 얼마나 큰 고역이었겠어요. 벌을 톡톡히 받았는데 연보 정리를 하다가 보니까 10대 중후반이 참 힘들었겠구나, 이놈 이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학교 과정을 4년 만에 졸업을 했는데 학교를 절반도 못 다녔습니다. 2년도 채 못 다닌 거 같애요. 그러니까 학업은 뭐 엉망이 돼버렸고요. 열등생이 되어 버렸는데, 그런 과정을 겪으며 세계관이 형성되었을 겁니다. 부여된 조건을 받아들이고 자기 안으로 삭이고 견디고 하면서 세계관이 생긴 것이죠. 철이 늦게 들었습니다. 제 이름이 영철이지 않습니까? 영철, 철이 빵점입니다. 철이 하나도 없다고 영철인데, 굉장히 재주가 없는 놈이지요. 그때 제가 누워서 생각을 해보니까 제 인생이 참 속상하긴 하더라고요. 참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나? 누워만 있으니까 잡념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온갖 잡념들을 종일 하는 거죠. 가만 누워서 잡념이 많다 보니까 낙서도 하게 되고 책도 읽게 되고 이렇게 됐는데 그래서 소설이든 시든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어요. 그때부터. 워낙 재주가 없는 놈을 시인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어떻게 저를 잘 봐줘서 시인으로 만들긴 만들어야 되겠는데 안 되니까, 더 어떤 혹독한 과정을 준 거겠죠.

  다른 사람 같으면 쉽게 치유가 될 수 있었던 사고였는데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주었고 또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주었습니다. 그런 말씀을 여기서  다 드릴 수는 없고요, 그런데 97년도 제가 마흔이 넘었을 때, 마흔이 넘어도 인간이 안 되니까, 이 놈 이거 안 되겠다, 한 번 더 때려야 되겠다, 이래 갖고 머리를 또 때렸어요. 저를 아는 분들은 지금 웃으시는데 한 번 더 머리를 때려가지고 머리 수술을 받았지요. 그때 제가 죽는다고 친구들이 모여 가지고 야 이놈 죽는다. 장래 어떻게 치룰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하여튼 고맙게도, 우둔한 최영철을 그래도 시나 쓰고 살게 해주려고 그런 회초리를 때린 것이지요. 그런 고비를 넘으며 조금씩 세계관이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철이 늦게 들었고 그 세계관을 지금은 뭐라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출발시점이나 과정에 있어서는 그냥 쓰고 싶은대로 썼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그게 또 시의 매력인 거 같아요. 시는 소설과 달라서, 소설은 정말 훈련이 필요하고 또 학습이 필요합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굉장한 끈기와 부지런함과 또 교양이 풍부해야 되는데 시인은 좋은 게 무식해도 된다는 거, 어떤 면에서는 무식해야 된다는 겁니다. 무식해도 되고 게을러도 할 수 있어요. 뭐 몇 줄만 쓰면 되니까. 정말 제가 하기 딱 좋은 거죠.

  그래서 시를 쓰는 것인데, 그런대로 정리된 세계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평등입니다. 그 평등은 모든 존재의 가치, 존재의 가치뿐만 아니고 모든 상태에 적용됩니다.  만약 나는 아프고 상대는 아프지 않으면 굉장히 차이가 나는 것 같죠. 그래서 아픈 사람은 불행하고 아프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것도 평등하다고 생각하고요. 개개인의 인자, 존재들, 사람뿐만이 아니고 조그마한 미물, 기어가는 개미, 바퀴벌레, 이런 것도 저하고 똑같은 하나의 존재인 것이고요. 사물도 마찬가지죠. 시의 세계에서는 모든 걸 다 생명 있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까? 그것하고 교감하는 것인데, 그래서 저는 모든 존재나 상태나 이런 처해진 상황들은 우리가 지금 현실적 가치로서는 어느 것이 나쁘다고 저울질을 해서 구분을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의 처해 있는 상황이 평등하게 똑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주 쉽게 예를 들면요. 저는 아프지 않죠. 상대방은 아프죠. 그러면 아픈 사람이 불행하고 저는 건강하니까-속은 많이 썩었습니다만- 저는 행복하다고 보지 않습니까. 그건 병적인 상황만 봐서 그런 것이죠. 한 문제에 대한 가치는 당면한 것만 보지 말고 전체를 다 아울러야 되는 것입니다. 아주 혹독하게 말하면요 상대방이 치유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서 한 달 후에 죽는다고 합시다. 우리 판단으로는 그 사람이 아주 불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그 사람과 제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그냥 농담처럼 말씀드리면요, 한 달 안에, 내가 몇 달 안에 죽을 수 있다고 자기 생명을 분명하게 예측 할 수 있게 된 그 존재는 예측할 수 없는 저보다는 다행이라는 거죠. 또 몸이 아픔으로 해서 몸의 소중함을 알게 되죠.  우리가 아프지 않을 때는요 배안에 뭐가 있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안에 간이 들었는지 위가 들었는지 마구잡이로 혹사하고 살지 않습니까? 조금 아프면 굉장히 귀한 줄 알죠. 귀한 줄 알게 된 것도 얼마나 큰 행복이냐는 거죠. 저는 그 귀한 걸 모르고 있는데 그 사람은 그 귀한 걸 느끼며 알고 간다는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은 저에 비해서 불행하지 않다는 거죠. 하여튼 이런 식의, 아주 이상한 생각입니다만, 이상한 생각들도 있긴 합니다. 하상일 교수께서 뭐라고 욕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정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송우 : 최영철 시인의 얘기를 들어 보니까 시인이 되려고 하면 철이 덜 들어야 되고 게을러야 되고 그런 거 같습니다. 그 속에서 나름대로 시인의 성숙된 세계관이 축적된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거 같습니다. 그 질문 자체가 좀 펑퍼짐했기 때문에 토론회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아서 사회자의 권한으로 평론가에 어떤 역할을 제대로 해 주십사하고 하상일 교수님에게 특별한 청을 좀 드리겠습니다. 최영철 시인의 시 세계는 여기 오신 분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들을 많이 하고 있고 또 우리 부산 지역에서는 대표적인 좋은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최영철 시인의 이야기대로라면 몇 년을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더 좋은 시를 써 주십사라고 하는 입장에서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을 겁니다.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이런 부분을 공감시켜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대한 부분을 곁들여서 질문을 해주시면 토론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다음 질문을 부탁드릴까요.

 

하상일 : 예, 저는 열심히 시인이 되려고 그랬는데 못됐습니다. 무식하고 게을러야 된다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랬는지 하여튼 못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빨리 시인이 됐으면 좋겠는데 안타까운 것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최영철 선생님 시에 대해서 객관적 거리를 잡기가 참 어렵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시관하고 일치되는 부분도 좀 많고 그러다 보니까 이끌려가고 있는 부분도 좀 있는 거 같고. 억지로 뭔가를 말을 하려고 하니까 말문도 막히고. 지금 최영철 선생님 시는 흔히들 그냥 생활시다. 일상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이런 부분이 아까 말씀드린대로 20여 년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상당한 장점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단점으로도 부각될 소지도 많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일상과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비평가들 입장에서 볼 때는 소시민적인 생활상, 소시민적인 허무주의, 소극적인 현실주의자, 이런 식의 비판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좀 들고요. 또 아무래도 선생님 시풍 자체가 대립이라든지 갈등이라든지 하는 뭔가를 봉합하고 맞물려서 조화롭게 이끌어 가려고 하는 서정적인 세계관인데, 시선으로 시가 귀착되다 보니까 자칫하면 낡고 고루하고 뻔한 서정방식이 아니냐 라는 식으로 좀 비판 받을 소지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이런 것을 시인께서 받아들이시든 안 받아들이시든 간에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하면, 좀 다른 방향으로 좀 더 현실에 밀착되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메시지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식으로의 시적 변화를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거든요. 그런 점에 대해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좀 들어보겠습니다.

 

최영철 :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동 웃음) 그건 재능의 문제인 거 같고요. 물론 시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겠습니다만, 크게 나누면 모더니즘, 리얼리즘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문학적인 동기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고요. 밖에게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밖의 걸 받아들여야 시가 되는 경우가 있고요, 안에서 자발적으로 추동되어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깊고 내면적인 것이 강조되는 작품들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겠죠. 보석이 자기 안에 있는 거죠. 그러나 저 같은 경우 안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그냥 병든, 병든 내장 밖에 없어요. 썩은 내장 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저는 밖의 것이 안으로 들어와야 시가 됩니다. 그게 시인마다 굉장히 차이가 나는 것 같고. 제가 조금 전에 말씀 드렸습니다만 타고난 기질이죠. 그런 면에서 저는 천부적인 자질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밖의 것을 계속 끌어당기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저를 잘 아는 분들은 늘 그럽니다. 아주 얼빵한 놈, 이런 식으로 말하거든요. 어떤 친구들은 저보고 하상일 선생님 지적도 포함됩니다만 뭐 우유부단, 우유부단파 -저기 우유부단파 한 분 와 계십니다만-라고 놀립니다. 그러니까 결단을 잘 못 내립니다. 밥 먹으러 가는 것도, 어떤 사람은 끼리 막 싸우잖아요. 서너 명이 가면요. 어떤 사람 돼지 국밥 먹으러 가자, 어떤 사람은 설렁탕 먹으러 가자 이럽니다. 저는 돼지국밥 어어 좋지, 설렁탕 어어 그것도 좋지, 이러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요. 저는 제 스스로 뼈대를 안 만들려고 합니다. 뼈대를 만들려고 해도 만들 밑천도 없을 뿐더러 그건 또 제가 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뼈대는 타고난 명석한 분들이 해야 될 일이고요. 저 같은 둔재는 열심히 세상을 읽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 주어진 일인데, 그것도 우리 하상일 선생님 지적처럼 게으르고 소극적인 면이 없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살고 있는 환경, 제 거처에 치중하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최영철 네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너는 망할 수도 있고 흥할 수도 있다, 이런 주문을 외우거든요. 그래서 제가 만약에 아주 형편이 좋아져서, 또는 어떤 분이 크게 도움을 줘서 또는 로또복권 같은 게 되어가지고 아주 으리으리한 고급 아파트에 산다면 저는 시 한 줄도 못 쓸 겁니다. 아마 그러리라고 생각이 돼요. 좀 허접한데 살아야 생각도 뚫리고 감흥이 옵니다. 그게 제 체질인 거 같아요. 다행히 제 팔자가 그렇게 잘 사는 곳이 아니라 조금 허접한 곳에 살도록 허용을 하는 거 같아 다행이죠.  그래서 저는 제 환경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환경을 개척하고 환경을 찾아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맞는 환경을 심도 있게 만들어 나가는 거죠.

  제가 서울서도 한 2년 살았거든요. 제가 경남 창녕 생인데 젖먹이 때 부산에 와서 산동네에서 주로 유년시절,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셋방살이하고. 어릴 때는 백열등 하나 가지고 주인집하고 같이 쓰는 그런 집에서요. 밥상도 없이 컸다고 그래요. 그렇게 크다가 부모님이 집을 가지게 된 게 제가 중학교 때고, 제가 서울에 살았을 때도 셋방살이를 했고, 그리고 양정에서도 좀 살다가 지금은 수영에 살거든요. 고가도로 밑에요. 수영 출발지점입니다. 거기 사는 게 저한테 딱 맞아요. 거기가 3년짼데 이번 시집은 거기서 다 쓰여진 겁니다. 이 시집 안의 공간은 대부분 실제 공간입니다. 제가 직접 보았고 매일 같이 지나다니는 곳들인데 사실은 거의 자발적으로 제가 찾아간 곳입니다.

  이십년 정도 살았던 양정은 시청이 내려다보이는 중심가가 되어 버렸는데 이사를 하게 된 경위를 잠깐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집을 팔라고 부동산에서 왔더라고요. 저는 동네가 갑갑해서 탈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참이라-양정이 좀 번잡하지 않습니까?- 그냥 덜컥 팔아버렸거든요. 팔고 외진 동네로 간 것이죠. 거기는 양정과 달라요. 지금 사는 수영은요. 거리상으로는 차를 타면 양정에서 10분밖에 안 걸리는데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는 곳입니다. 양정은 시청이 있는 중심가기도 하지만 땅값도 비싸고요.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사람들이 많고 그렇습니다. 거기에 비해 수영은 굉장히 느립니다. 대낮에도요. 저희 집에서 수영사적공원까지 갔다 오는데 사람을 10명 정도 만나면 많이 만날 정도로 한적하거든요. 그게 참 좋고요. 또 사건들이 많아요. 사건들이 무슨 사건이냐 하면, 양정에서는 눈에 안 뜨였는데 거기서는 눈에 띄는 게 뭐냐면 아주 오래된 옛날 동네가 돼가지고 구멍가게가 그렇게 많아요. 구멍가게, 정말 그 콧구멍만한 구멍가게 있지 않습니까. 앞에 평상 하나 놔놓고 동네 아저씨들 할아버지들 앉아 가지고 막걸리 마시고 이런 데 있지 않습니까. 제가 뭘 하나 사러 가면 주인은 물건이 어디 있는지 못 찾고 막걸리 먹던 영감님이 찾아서 내주고 이러는 데가 구멍가게들이죠.

  우리 동네 구멍가게가 이번 시집에도 몇 군데 나옵니다만, 제가 이사 오고 나서 3군데나 문을 닫았어요. 하여튼 그런 사건들이 부지기수로 계속 일어난다는 거죠. 그것이 저에게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죠. 제가 양정에 살았으면 이번 시집의 시들은 없었겠죠. 그래서 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자발적으로, 나에게 맞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풍경이 있는 데로 옮겨 가면서 살아야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시집 한 권 얻었으니까 이제 이 집은 그냥 두고 또 어디 다른 변두리로 갈지 어디로 갈지 모르겠습니다. 계획은 가지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가 없고요. 그래서 저는 환경이 제일 중요하고, 환경을 적절하게 자발적으로 찾아서 만들어 나가고, 또 그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느냐에 제 시의 승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제가 환경을 자발적으로 찾아가도 거기에 반응하지 못한다면, 그 환경에 제가 첨예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이미 저는 죽은 것이죠. 그래서 그 때는 시를 안 써야 되겠죠. 그래서 저에게 시는 대단히 피곤한 과업입니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앉아서도 시가 되죠. 집에 앉아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그런 분들은 어디에 살든 정말 좋은 시를 써내는데 저는 시를 찾아서 끊임없이 배회를 해야 된다는 거죠. 찾아다니고 거기서 상처 받고 가슴이 뜨끔해지고 또는 뭉클해지고 이런 시 사냥을 많이 다녀야 될 팔잡니다.

 

남송우 : 시인 자신이 둔재라고 말씀하셨는데 겸손한 말씀이죠. 둔재들은 사실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감성이 예민하지 않으면 이런 정도의 시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힘들거든요. 하상일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어떻게 보면 20년 이상 시를 써오면서 이렇게 한결같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시세계의 변화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일관된 생각을 견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거든요. 그건 아마 방금 최 시인이 설명한 것처럼 생활과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시들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한 점들이 많이 있지 싶은데 어떤 문제라도 최영철 시인에게 묻고 싶은 것을 질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너무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습니다. 

 

질문1 : 예 안녕하십니까. 사상구에 사는 김요한 입니다. 다음 카페에 ***운영직도 겸임하고 있고요. 다름이 아니고 저 같은 경우 학창시절에 시하고 소통이 안 되더라고요. 시험에 나올 적에만 관심을 가졌고. 군대에서 시 같은 건 절대 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근데 요즘 보면은, 미국에서 조금 그런 경향이 많이 있다고 그러는데, 시로써 어떤 사람의 정신적인 치료가 가능하단 말을 요즘 많이 하거든요. 최영철 시인님 같은 경우에는 시가 과연 우울증이라든지 이런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림처럼, 거기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고요. 두 번째는 시인으로 사시면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유혹이 뭔지 알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남송우 : 예 아주 재미나는 질문을 해주셨는데 시 치료에 대한 부분과 시인의 생애 중에서 가장 큰 유혹, 예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최영철 : 시 치료는 부산에서 강은교 선생님이 하시잖아요. 사실 쓴다는 행위는 다 치룝니다. 우리가 표현한다는 거, 누구에게 말한다는 거, 고함지르고 누굴 한 대 때린다는 거 다 치료죠. 스스로 그걸 함으로써 안의 것이 밖으로 분출되어 나오는 것이죠. 치료가 되죠. 시도 물론 자기표현이고 안의 것을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치료가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저는 시든 소설이든, 다른 예술, 음악 미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예술의 일차적인 목표가 자기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치유. 대개 예술가들이 남다른 삶을 살아서가 아니고 천성적으로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예요.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남하고 다르게 특별히 살아서가 아니고 남이 볼 때는 정말 저 사람은 아무 부러울 게 없을 거 같은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굉장히 상처를 만들어내고 상처를 자기 안에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예요.

  그런 분들이 예술을 합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예술을 함으로써 일차적인 자기 치유가 된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거라 생각이 되고요. 자기 치유가 일차적으로 되고 다른 사람까지 치유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거 아닙니까. 그게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인데, 문제가 뭐냐 하면 자기 치유도 안 되는 사람이 남을 치유 하려고 그래요. 뭔 말인고 하면 시인이든 소설가든 쓰는 행위를 통해서 사실은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더 상처를 잘 견뎌내고 상처에 대응하는 슬기가 있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 더 못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러면서 그 상처를 대중적으로 굉장히 크게 포장하는 경우를 봅니다. 저도 그런 경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자기 치유를 해보고 자기 치유가 되면 밖에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습작할 때, 저의 10대 때는 문학소년, 소녀들이 많았습니다. 학생 잡지도 여러 권 나왔거든요. 그 시절에는 학원, 학생중앙, 진학, 또 주간 신문도 있었고요, 그런 지면들마다 독자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투고되었고 많은 글들이 실렸고요. 그래서 꼭 앞으로 공부해서 작가가 되겠다기보다는 자기정체성 확립이나 자기치유의 기능으로 문학이 쓰였는데, 지금은 문학소년 소녀를 안 거치고 바로 작가가 되는 경우가 많죠. 습작으로 자기 치유를 충분히 해보고 자기 치유에 성공한 사람이 등단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등단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아 이제는 자기 치유가 끝났으니까 이 치유의 힘을 조금 더 확대시켜 보자 하는 그런 욕망일 수가 있거든요. 나는 이 정도면 스스로 조절이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 나서보자, 하는 것이요.

 

남송우 : 그 다음 가장 유혹적인 사건이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하답니다. 두 번째 질문을 좀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혹을 받은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고걸 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치유하다가 너무 정신에 빠져가지고 유혹을 잃어버렸습니다.

 

최영철 : 유혹은 정말 그 말 자체가 달콤한 말입니다. 달콤한 말인데, 중요한 유혹이라고 하셨는데, 사실은 시인은요. 소설가하고 달라 가지고 유혹에 잘 빠져야 됩니다. 잘 빠져야 시가 됩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막 유혹을 하는데도 덤덤하게 못 느끼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 경우는 재능이 없는 것이지요. 유혹을 정말 잘 느껴서 유혹에 금방 홀라당 넘어 가주는 것이 자질이거든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그런 아주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걷으면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유혹될 수도 있고, 또는 뭐 양치할 때 느끼는 치약의 맛, 그것도 유혹이죠. 아침 밥 먹으면서 제일 처음으로 떠먹는 국물 맛일 수도 있고요. 또는 길거리 나가서 만나게 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뭐 하여튼 그런 유혹에 시시각각 걸려들어서 그것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정말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면이 다분합니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덤덤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유혹에 잘 넘어갑니다. 그 때문에 맨날 제가 집에서 욕 들어먹어요. 또 넘어 갔나 이러는데, 제가 잘 꼬입니다. 꼬여가지고, 장사하는 분들, 그 이상한 장사치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 꼬임에 잘 넘어가고요. 얼마 전에는 금융, 이상한 금융사기사건 많았잖아요. 전화 해가지고 의료 보험 뭐더라 그런 거 환급해준다 어쩐다 하는, 저 거기에 꼬였거든요. 아니 근데 저도 그 이야기 들었습니다. 억양이 중국 교포 억양이더라고요. 근데 통화를 하다가 꼬여서 제 주민등록번호 다 불러주고 주소 불러주고 하는데 또 뭘 불러달라고 그래서 제가 찾으려고 하다가 전화를 잘못 짚어 끊겨 버렸어요. 그래 가지고 하늘이 도왔죠. 사실 저는 통장에 돈도 별로 없기 때문에 해봐야 큰 건 아니겠습니다만, 하여튼 그런 식으로 유혹에 잘 넘어 갑니다. 유혹 좋은 겁니다.

 

남송우 : 박수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질문자의 핵심적인 내용은 그런 수없이 많은 유혹 중에 지금 본인이 가장 크게 당한 유혹이 무엇이냐? 이런 질문에 핵심이었던 거 같애요. 가장 크게 당한 유혹 기억나는 게 없습니까? 그걸 좀 말씀 해주십시오.

 

최영철 : 제가 금방 말씀 드렸다시피 경중을 따질 수는 없다는 거죠. 없는데 가장 큰 거라고 생각하면 그거겠죠. 문학을 계속 하느냐 아니면 이걸 그만 두고 제대로 먹고 살 방도를 구해 보느냐. 그 유혹이죠. 그 둘 사이에서 20대 후반에 좀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유혹이 똑같이 있는 것이죠. 시가 나에게 보내는 유혹도 여전하고 또 가장으로서 먹고 살아야 된다는 유혹도 똑같은 비중이었고요. 그 둘 사이의 삼각관계에서 한동안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남송우 : 유혹 치고는 참 의미 있는 유혹이었습니다. 또 다른 분 한 분 더 질문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질문해주십시오. 예, 유병근 선생님께서 질문을.

 

유병근 : 반갑습니다. 독자를 위해서 한 마디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뭔가 하면 시를 쓰시면서 그 호루라기, 호루라기 시집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어떤 애잔한 비애에 젖어 있는 저항 정신, 그런 게 보이거든요. 그런 저항 정신을 시 쪽으로 의도적으로 깔고 있었는지 아니면 시를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지 그런 것을 한번 얘기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송우 : 역시 시인이 하는 질문은 좀 어렵네요. 예

 

최영철 : 유병근 선생님.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유병근 선생님은 저하고 24년 차이 나는 띠 동갑입니다. 근데 저보다 더 젊으시고 많은 시를 쓰시고 좋은 시를 쓰시는 분입니다. 선생님께서 비애라고 아주 무거운 표현을 하셨는데 정말 시인에게는 근본적으로 비애가 있습니다. 비애가 원천이라고 할 수 있죠. 소설보다는 시가 더 감정적인 장르지 않습니까? 오로지 어쩌면 감정에 기대어서 밀고 나가는 것이 시일 텐데요. 그 감정의 가장 쓸 만한 밑거름은 비애인 것이죠. 오히려 기쁨은, 기쁨 그 자체로 이미 충만한 것이고 금방 휘발돼 버리는데 비애는 오래가고 전염성이 오히려 더 높습니다. 다른 사람이 굉장히 좋은 일을 당하면 기쁘잖아요. 아 기쁘다, 저도 같이 기쁜데, 조금 있다 생각해 보면 자기만 기쁘지, 자기만 좋지, 하고 금방 정리가 돼버립니다. 그러나 아주 슬픈 상황에 가면 같이 갑니다. 같이, 오래 갑니다. 우리가 경사보다 흉사에 가는 게 전통적인 관례인 것처럼, 비애는 아주 순한,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가장 원천적인 것이고 풍부한 자산이기 때문에 시인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 비애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문제겠죠. 다른 무엇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비애 그 자체로서는 사실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가 울어버리고 나면 개운해지듯이 비애 그 자체로써는 다른 생산력을 가지지 못하는 거죠. 근데 그 비애를 키워서 발효시켜, 분노가 되게 할 수도 있고, 격정이 되게 할 수도 있고, 함성이 되게 할 수도 있고, 또는 후회가 되게 할 수도 있고, 이런 뭐 가공하는 절차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가공을 해서 가장 성공한 것이 뭐냐 하면, 가공이 잘 된 상태는 뭐냐 하면, 비애를 완전히 숨기는 겁니다. 궁극에는 숨겨서 시를 읽는 자가 원재료로 쓰였던 비애를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성공한 것인데, 저는 아직 서툴러 가지고 선생님께 비애를 들키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잘 가공하겠습니다.

저항정신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저항정신 이건 달리 말하면 부정 정신이거든요.  이것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우리 내면 안에 긍정과 부정이 있죠. 처음에 제가 말씀 드린대로. 시에서는 역시 긍정보다 부정의 정신이 더 쓸만하다는 거죠. 김정한 선생님도 굉장히 강조했지 않습니까. 끊임없는 저항정신의 뿌리가 상하지 않고 있어야 오로지 시인이 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저항정신이 뭐냐 하면요. 우리가 흔히 시인을 잠수함 속의 토끼라 하지 않습니까? 먼저 반응하는 자죠. 먼저 반응 한다는 것은 저항, 부정의 뿌리가 푸르게 살아 있다는 것이죠. 그게 시들어 버리면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그냥 반응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그것은 시인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제 안에 있는 어떤 부정의 정신, 저항 정신이 있다면 저는 이것을 더 좀 푸르게 꼿꼿하게 살려서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송우 : 유병근 선생님이 질문해 주신 비애의 감정, 그 속에 함축돼 있는 어떤 부정적인 시, 시편들을 읽어 보면 호루라기 시편뿐만 아니고 그 이전 시집의 시들에서도 역시 면면하게 그런 부분이 많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아마 최영철 시인이 가지고 있는 특장이면서 또 시인의 개성이 아니겠는가. 앞서 본인이 이야기한 아주 작은,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의 결과를 드러낸 부분들이 아니겠느냐. 주변부로 쫓겨난 어떤 것들,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시인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다시 지정 토론자에게 마이크를 넘겨서 계속 질문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상일 : 너무 오랜만에 마이크가 넘어오는 것 같습니다. 워낙 어눌하게 말씀을 잘 하셔 가지고. 지금까지 선생님이 추구하고 있는 시적인 방향이나 주제나 이런 것들이 포괄적으로 이야기 된 것 같습니다. 시를 하나 좀 보고 싶은데요. 시집 102쪽에 보니까, 이발사의 퇴고라는 시가 있거든요. 이 시가 참 재미있는 게, 예전에 첫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연장론처럼 시 쓰기를 빗대어서, 일상과 빗대어서 유추적으로 표현한 그런 시로 보여집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여기 학생들도 있지만, 일종의 시인이 생각하는 시작법을 일상과 연관지어서 표현한 시 같습니다. 이발사가 아주 능숙하게 가위질을 하는 모습, 이것을 창작에 빗대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시인들은 언어를 다루는 분이니까 아무래도 언어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한데, 여기 이발사의 경우는 무슨 궁리가 섰는지 그 동안 일군 텃밭 한쪽을 전기 커트기로 갈아엎는데 전혀 주저함을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고. 이런 이발사의 과감한 가위질이 딱 지나고 나니까 뒷덜미가 자꾸 허전해졌지만 그 바람에 앞머리는 날개를 단 듯 천천히 휘날리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고, 또 내 몸은 벌떡 일어나 가볍게 솟구치는 삶의 활력을 느끼게 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마 시인께서 생각하실 때는 이발사의 능숙한 가위질이야 말로 시인이 정말 배워야 할 언어를 다루는 솜씨고 일종의 최고 기술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시를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뭔가 불필요한 언어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좀 모자란듯하지만 좀 부족한듯하지만 그렇게 허전하게 남겨 두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이제 이런 것과 관련지어 시 작법 측면에서 이야기를 좀 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남송우 : 예 아무래도 오늘 오신 분들이 시 창작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도 많고 하기 때문에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 됩니다. 이 시집을 읽어 보면 방금 하교수가 지적한 102페이지에 있는 이발사의 퇴고하고 108페이지에 있는 비 소리, 이 두 편이 시 창작의 어떤 과정, 시작의 어떤 과정과 또 나름대로 의미를 시화하고 있는 두 편의 시 입니다. 그래서 이 두 편의 시를 가지고 시인이 생각하는 시작과정, 창작 방법, 여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하지 싶습니다. 정리가 되셨으면 좀 대답을 해 주시면 창작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최영철 : 예, 이발사의 퇴고도 역시 저희 집 근처에 있는 이발소에 다니면서 생각하게 된 시고요. 이 이발소 역시 장사가 잘 안되어 망했습니다. 큰일입니다. 다 미장원 가는데 남자들 왜 미장원 갑니까? 이발소 가서 깎으면 될텐데. 저도 요즘은 갈 때가 없어  미용실 가거든요. 미용실 가는데 여자 미용사가 있는 경우 도저히 못가겠더라고요. 조금 더 걸어 가지고 남자 미용사 있는데 걸어가서 머리를 자릅니다. 이건 말씀하신 데로 창작에 과정인데 여기 시에서는 쓰여지지 않았습니다만 그 이발사분이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포항 분이시던데 이발 굉장히 잘 하시더라고요. 아주 노련한 이발사, 원로 이발사신데 염색에 대해서 말씀하십디다. 제가 흰 머리가 좀 많이 났죠. 그것도 참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었는데, 저보고 염색합니까? 그러시더라고요. 염색 해 본적 없습니다 했더니, 앞으로 할 겁니까? 하고 물었어요. 아니 안할 건데요 했더니, 왜 안 할 거네요? 그냥 있는 데로 보여야지 머리 검게 한다고 제가 달라집니까? 했더니 그분께서 아 진짜 맞다고 맞장구를 치시더군요. 자기는 염색한다고 사람들이 오면 염색 하지 말라고 한데요. 이발소에서는 염색하는 게 중요한 수입일 텐데 말입니다. 힘들게  가위질을 하는 것 보다 염색하는 것이 더 나은 수입임에도 불구하고 안한다는 겁니다.  그 분이 손님들에게 염색을 안 해주는 건 머리 결과 시력을 헤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던데 저는 그 염색을 자기의 어떤 본색을 숨기는 행위로 생각했습니다. 염색은 본색을 숨겨 다른 색을 만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아니라는 거죠. 결국 싫어하는 것은  자기 본색을 드러내는데 승패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본색을 드러내는 거만으로 충분하냐 이거죠. 그거는 정말 단조로운 기술이거든요. 본색만 드러내어서 그것으로 독자를 움직이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본색은 헤치지 않을 만큼의 최대한 가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가공, 그게 최고의 기술인데요. 저는 첫 시집 같은 경우는 거의 그냥 토시 정도 고치고 안 고친 시들이었습니다. 그때는 뭐 젊었을 때는 하루에도 서너 편 식 쓰고 그럴 때고요. 고치기가 싫었어요. 일도 많았고 그 때는 제가 출판 잡지사 일을 했는데 활자를 들여다보기 지긋지긋 해 단번에 쓰고 한 번 살펴보고 내보낸 시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보니까 그게 너무 형편이 없더라고요. 그만큼 에너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되겠지만 역시 손질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어떤 경우냐 하면 대체로 시 한편에 10번 이상 또는 한 달 정도 갈 때도 있습니다. 매일 컴퓨터를 열어서 써 놓은 시들을 쭉 읽어보고 고치고, 내일 다서 열어 보고 또 고치고 이렇게 자꾸 고칩니다. 볼 때 마다 달라집니다. 시가 달라 보이죠. 왜냐하면 달라 보이는 것은요. 거리가 생겼다는 겁니다. 지금 시작하시는 분들이 그럴 텐데요. 처음에는 자기가 한 줄 써 놓고 나면 그 당시는 천하 역작을 쓴 것같이 우쭐합니다. 그냥 야, 대단한 작품이야. 나는 이제 끝났어. 이제 이 한편으로 끝났어. 이렇게 생각됩니다. 근데 하루 밤 자고 일어나 보면 이게 뭐야, 이래 됩니다. 그만큼 거리가 생긴 거죠. 한 달 뒤에 보면 또 다르다는 거죠. 그러나 퇴고 기간이 너무 길면 그 본체가 흐려져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나날이 변화하지 않습니까? 변화하기 때문에 고치는 기간이 너무 길면 김이 다 빠집니다. 한 달 정도는 두고 고쳐야 된다는 것이고요. 

 

남송우 : 시 창작 과정을 이렇게 시로써 보여 주고 있는데 거기에 얽힌 비하라든지 독자들에게 들려 줄 수 있는 이야기로 지금까지 주로 퇴고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와 달리 말씀 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들려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최영철 : 사실 저는 천재들은 고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고은 선생님 같은 경우도 한달음에 쓴 시 같아요. 고은 선생님의 최근 시집이 ‘부끄러움 가득’인데 저는 정말 노시인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에너지를 느꼈거든요. 재능이 있는 시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충만한 기운이 있기 때문에 한번 이렇게 밀어 붙이면 짝 갑니다. 그게 정말 좋은 시인의 큰 시인의 창작 방법이죠. 저 같은 둔재는 오래 고쳐야 된다는 것이고요.

  비화를 말씀 드리면 컴퓨터가 있어서 요즘은 사실 원고를 분실할 경우가 별로 없죠. 그러나 컴퓨터도 위험 요소는 있습니다. 초기에는 하드가 없어 디스켓에 저장해야 했는데 그걸 잃어버릴 수도 있고 또는 컴퓨터를 망가 뜨려 날아 갈 수도 있고요. 그러고 보면  그런 변명을 많이 해요. 가득 써놨는데 다 날아가 버렸다. 그런 친구들 꼭 시 못 쓰는 친구들이예요. 근데 저도 한번 몽땅 날려 버린 적이 있는데 30대 초반이었는데 컴퓨터 안할 때죠. 안할 때고 그게 무슨 큰 보물이라고 시 노트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어요. 집에 두면 혹시 누가 쓰레기라고 버릴 것도 같고 누가 도 잘못 치워 버릴 수도 있으니까 가방에 넣고 다녔거든요. 그 가방을 통째로 잊어버린 거죠.

  그날 밤은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잠이 안 오고, 내가 잘못해가지고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는 게 났지, 시 노트 잃는 건 참을 수 없이 원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얼마나 미련한 생각입니까. 그죠? 지금은 그렇게 안할 텐데, 근데 한 사흘 쯤 지나니까요 그게 이제 수긍이 되더라고요. 아 잘 잊어 먹었다. 어서 깡그리 날려 버려야지. 지금쯤 날려 버릴 때가 됐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새로 썼다는 거죠. 여기도 습작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한 번씩은 날려 버리라는 거죠. 그건 여러 가지 자기에게 굉장히 소중한 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찢어 버려도 좋고요. 컴퓨터를 왕창 지워 버려도 좋고요. 불을 태워 버려도 되고요. 씹어 먹어도 되고요. 그렇게 함으로써 거듭나야 된다는 거죠. 창작하는 행위는 계속 그렇게 거듭나지 않으면, 기존에 했든 거기에 연연해하고 그걸 붙들고 놓지 못하면 전혀 앞으로 나아 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출판사 일 할 때 보면요. 어떤 분들은 원고 뭉치를, 그때는 컴퓨터 없을 때는 원고 뭉치를 가지고 다녔잖아요. 책을 내려 왔데요. 네 그러면 원고를 두고 가십시오. 제가 보겠습니다. 이러면 이게 얼마나 소중한 건데, 이게 어떻게 쓴 건데, 이걸 내가 두고 갔다가 그걸 베껴 쓸 수도 있고, 당신들이 잊어버릴 수도 있는데, 그냥 출판 할 건지 안 할 건지만 말해 달라고 해요.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디다. 그만큼 자기애가 강한 것인데 그런 분들은 사실 글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를 적절히 혹사하고 자기에게 비정해 질 수도 있는 그런 독한 구석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아마 시를 쓰시는 분들은 잘 알 텐데 손택수 시인이라고 있습니다. 저하고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10년 정도 후배입니다만 그 친구가 첫 시집을 냈는데 등단 작품이 없어요.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아무리 찾아 봐도 없더라고요. 처음에 이해가 안 되던데,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아 정말 대단한 시인이다. 자기의 등단 작품을 첫 시집에 실지 않고 버릴 수 있는 결단이 있다면 아주 큰 시인이 될 거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지금 큰 시인이 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물론 작품을 계속 습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적절하게 차 버릴 수 있는 것,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죠. 저는 그것을 잘 못해 가지고, 미련이 많아 가지고, 요 모양 밖에 안 되는 가 봅니다. 

 

하상일 : 저도 대학 다닐 때 시집 한 2, 3권 분량을 쓴 걸 다 버렸는데 다시 하면 될 까요. 

 

남송우 : 사실 지금 최영철 시인이 어눌하게 말씀을 하시면서 아주 알짜배기 이야기들만 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우리 부산 지역 문학하는 사람 중에 곰이 세 마리 있는데 최영철 시인이 그 곰 중에 한 마리고 저가 한 마리고 그 다음에 강경주 시인이 한 마리, 세 마리의 곰이 있습니다. 곰들은 좀 어눌한 거 같지만 굉장히 지혜롭게 처신하기 때문에 곰이 재주를 많이 부리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겁니다. 하상일 교수는 그런 곰 체질을 조금 닮으면 아마 시인으로도 등단이 가능하지 싶습니다. 계속 질문을 해주십시오.

 

하상일 : 시작 방법하고 관련지어서 조금 더 여쭤 보고 싶은 게 선생님 작품 중에 참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뒷간이 멀어서 생긴 일> 같은 거 있잖아요. 여기 보면 요강 이야긴데 말입니다. 요강을 가지고 우리가 하루 밤을 지나면서 한 가족이 한 요강에다 소변을 보면서 그 오줌이 다 뭉쳐지고 어우러지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하나의 풍경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인데 이게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이야기 해왔던 어떤 서정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는 부분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이 시작 방법에 대해서 퇴고의 중요성, 언어의 중요성,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요즘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또 지금 이 부분에서 저도 좀 냉정하게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30대 젊은 시인들을 주축으로 한 소위 미래파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써왔던 시들을 읽어 보면 도저히 따라 가기 힘들 정도의 난해한 작법들을 가지고, 어떤 환상적인 세계를 새롭게 창출해내고자 하는 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로 지금 아주 급진적으로 가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독자들은 도대체 이 시인들이 무슨 시를 쓰는지를 �아 가기 힘들 정도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쓰신 시하고는 너무나 상반된 시작방법이나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20년 먼저 시를 쓰신 입장에서 이런 시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 건지, 이런 시작 태도에 대해서 어떤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또 달리 이야기 하면 이게 도대체 읽히기는 하는지 뭐 이런 이야기를 좀 묻고 싶습니다.

 

최영철 : <뒷간이 멀어서 생긴 일>도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저희 집을 수영으로 이사하고 보니까 화장실이 밖에 달렸더라고요. 겨울이면 추우니까 밖아 나가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요강을 방에 갖다 놓고 가족이 눈 길 아침에 버리고 했던 이야긴데, 사실은 제 어릴 때 단칸방에 모든 식구들이 살 때 윗목에 늘 요강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 세대에게 물어보면 요강이 뭔지 모르죠. 갖다 주고 이게 뭐하는 건지 알아 맞춰보라고 퀴즈 내면 식구들이 같이 밥 말아 먹는 거라고 할지도 몰라요.

  그 요강이라는 게 한 그릇에 같이 오줌을 누잖아요. 그 자체가 굉장히 어떤 공동체, 그것만으로도 공동체가 된다는 거죠. 앞에 있는 누군가의 오줌이 내가 오줌을 눌 때 휘몰아치면서 섞이죠. 섞이고 그것이 다 섞여서 어딘가 넓은 곳으로 흘러간다는 거죠.  그런 의미도 하나 있고요. 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뒷간이 멀다는 것은 옛 말에 뒷간하고 처갓집은 멀어야 된다. 했지만 그런 경우하고 좀 다르고요. 뒷간이 멀다는 것은 사실은 편안하지 못한 조건입니다. 어떤 불편한 조건이죠. 그러나 뒷간이 멀기 때문에 요강을 갖다 놓게 되었고 그래서 그런 체험을 하면서 가족 공동체의 뜨거운 숨결을  느꼈다면 처음에 말씀 드린 것처럼 불행한 조건이 결국은 불행이 아니라는 거죠. 불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그리고 행복한 조건이 꼭 행복만 아니라는 거죠.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미래파는 저희들도 가끔 모이면 얘길 많이 합니다. 제가 작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위원을 1년 했는데 뒷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왔지요. 서울 시인들도 모이면 미래파, 그 친구들 뭐야 이런 애길 많이 합디다. 젊은 후배들까지도, 최근 등단한 시인들조차도 미래파 시를 제대로 이해하는 친구들이 없더라고요. 사실 미래파가 우리 시의 아주 중요한 새로운 흐름으로 이야기 되고 있는데 중요한 흐름은 아닌 듯합니다. 미래파라고 지칭되는 시인들을 다 합해도 스무 명 남짓인데 그 정도가 중요한 흐름이 되기는 아직 부족합니다. 미래파라는 용어를 쓰면서 여러 지면을 통해 그냥 계속 띄워 올린 거죠.

  그러나 우리 시가 변화해야 할 시점에는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시는 다른 장르하고 달리 굉장히 변하지 않은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문학 장르 중에서도 먼저 생겼지만 시의 틀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왔습니다. 소설이나 음악 미술 등등의 장르에 비하  변하지 않고 왔는데 이제는 변화에 대한 끝임 없는 유혹과 도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미래파는 그 중의 하나가 되리라 봅니다.

  기존에 전통 시정시가 굉장히 단조로운 면이 있어요. 한계가 있거든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극복하지 않으면 시의 죽음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어떤 시의 현대화,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거죠. 우리 삶은 엄청나게 변화했는데 또 앞으로 변화할 것인데, 전통적인 이런 방법을 가지고는 정말 아무도 감동시킬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 20대나 10대,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전통 서정시, 김소월이라고 합시다. 김소월을 읽힙니다. 반응이 없고, 아무 감흥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단한 시라고 배워 왔잖아요. 교과서에서도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공감을 주지 못한다는 거죠.

  백석을 예로 들어 보면 백석은 소월과 비슷한 시기의 시인인데 백석은 읽힌다는 거죠. 지금 십대들이 많이 읽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김소월은 전통 서정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겁니다. 그 시대 이후 김소월처럼 쓰는 무수한 시인이 있다는 거죠. 그건 이제 극복의 대상이 되어버린 거죠. 거기에 비해 백석은 현대성이 있다는 거죠. 시간이 지나도 읽히는 현대성, 우리 삶의 미세한 감정들이 있다는 거죠. 전통 서정시의 바탕은 그리움, 정한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백석 시에 보면 아주 섬세한 풍경도 드러나고 또 미세한 사랑의 감정도 드러납니다.

 그래서 시는 변화해야 되는데, 미래파가 답은 아니지만, 변화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크게 한번 뒤집어야 됩니다. 그래야 새로운 충동과 자극이 생기죠. 이거 뭐야, 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요. 그렇게 크게 한번 뒤집어 주는 게 새로운 시의 관례다. 기운이다. 이렇게 생각이 되고요. 미래파도 용어상으로는 문제가 있는 겁니다. 기존의 시를 현재파 과거파로 만들어버리니까요. 미래파가 특별치는 않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우리가 볼 때는 소통이 안 되지만 지금 젊은 독자들의 의식은 분열적이고 복합적인 요소가 있거든요. 미래파 시들은 분열돼 있고 상이한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렇게 섞여 있으니까  일정한 문맥이 없죠. 한행 안에서도 여러 이미지들이 충돌하며 섞여 있습니다.

  지금 제 딸이 스물여덟 원숭이띠고 아들이 스물여섯 개띠인데 그 놈들이 보면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합니다. 예를 들면, 이어폰 꽂고 책 보고 밥 먹고 한다든지, 컴퓨터를 한다든지 하여튼 서너 개 일을 동시에 한다는 거죠. 동시에 하는데 그 일들이 다 잘 수행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인데 지금 그 친구들은 그렇게 하거든요. 그라고 한 가지만 맡겨 놓으면 일이 안된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걸 잘못 보면 굉장히 불안하고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죠. 나이 드신 분들이 괜한 우려를 하시지만 지금 젊은 친구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잘 하거든요. 시도 결국은, 미래파의 시들도 아주 상반된 것들이 막 섞여 있는 시들인데, 우리는 이해 못해도 다음 독자 세대에게는 잘 읽힐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실험은 늘 소중하다고 생각하고요. 이 미래파가 하고 있는 새로운 시도가 우리 전통 서정시의 단조로움을 극복해 가는 한 단서가 될 수도 있고요. 저는 그렇게 나쁘게 보지는 않습니다.

 

남송우 : 네 현재 시단에서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있는 미래파에 대한 선배 시인으로써의 입장,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또 뒷간 이야기가 나왔는데 최영철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뒷간뿐 아니라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다른 시에서도 2곳이나 나왔어요. <그곳>이라는 시하고 <대변항에서>, 이런 시를 읽고 나면 화장실 공간이 어떻게 보면 갇힌 공간인데 그 속에서 어떤 구체적인 상념들이 시가 돼었습니다. 또 하나는 감옥 공간이 두 편의 시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당구치소>와 <냉동창고> 이런 시에서 보면 빨래를 구치소에 갇혀 있는 어떤 실존적인 인물로 의인화해 재미나게 시를 쓰고 있고, <냉동창고>에는 잡혀온 고기들이 냉동되어 있는 상태를 시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떤 갇힌 공간이 나타나고 있는 동시에 어떤 시들은 시장 바닥을 걸어가면서 어떤 주변, 조금 전에 최영철 시인의 생활상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열린 공간들이 많이 펼쳐지고 있고, 여행하는 시도 제법 나타나고 있는 등 어떤 대립적인 두 공간이 시집 속에는 혼재되어 있습니다.

   최영철 시인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시 세계는 두 개의 세계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 준다고 했는데, 그렇게 읽어 보니까 그런 두 개의 갇힌 공간과 열린 공간이 시집 전편에 혼재되어 있는 양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갇힌 공간에서의 어떤 의식과 열린 공간에서 어떤 의식이 동일선상에 놓이는 부분, 아니면 갇힌 공간을 경험했기 때문에 열린 공간 속으로 어떤 세계가 또다시 펼쳐지고 있는 것인지 이런 부분이 조금 궁금했거든요. 그런 측면에 대한 이야기가 시집을 읽어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싶어서 질문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화장실 공간이 나오기 때문에 화장실에 앉아서도 시를 쓰고 계신건지 요런 부분이 좀 궁금했습니다.

 

최영철 : 화장실이야 말로 정말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은 혼자 될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물론 요즘 아이들은 방에 문 잠그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건 보장된 공간이 아니죠. 그러나 화장실은 들어가서 문 잠그면 보장된 공간이죠. 화장실 오래 있다고 뭐라 하면 안 됩니다. 더 변비가 되니까 그냥 두죠. 그러니까 보장된 공간이죠. 남송우선생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그 공간을 말씀하셨는데 물론 제가 그 하나하나를 의도하고 쓰지는 않습니다만 지적하신대로 아주 재미있게 두 공간이 대립되는 것 같습니다.

  화장실은 사실 갇혀 있지만 자유로운 공간입니다. 오히려 격리되었기 때문에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정말 다 떨쳐 버리고 혼자되고 싶어 여행도 가고 그러지만 여행가도 여행가는 중에 아는 사람 만나기도 하고 여기저기 또 걸리죠. 그러나 화장실만은 혼자를 보장합니다. 보장된 격리, 그러니까 갇혀 있지만 사실은 해방된 곳입니다.

  반대편에 놓이는 냉동 창고는 뭐냐 하면요, 우리가 열려 있지만, 우리의 일상이 열려 있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넓은 우주적 시각으로 보면 정말 갇힌 거 아니겠느냐는 거죠. 그런 걸 떠나서라도 우리는 일상이 요구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에 결박당해 묶여 있는 상태죠. 그래서 열려 있지만 갇혀 있는 공간이 그런 냉동 창고와 같은 일상이죠. 냉동 창고는 우리의 일상을 냉동되어 갇힌 부정적인 상태로 본 것이고요. 화장실은 갇혀 있지만 해방된, 긍정적인 공간으로 본 것이지요.

 

남송우 : 마루리를 해야 될 시간인 것 같습니다. 혹시 참석 하신 독자 여러분 중에 꼭 질문이 필요한 분이 있으면 마지막 질문 기회를 드리고 이어서 토론자에게 마지막 마무리 질문 순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질문이 게시면 질문해 주십시오. 예, 그러면 마지막 지정 토론자에게 마무리 질문을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상일 : 예 어떻게 생각하면 앞으로 선생님 시 세계하고도 관계가 있을 거 같은데 예전에 민중시를 쓰시던 분들 상당수가 지금 소위 말하는 생명이라는 문제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명, 상태 문제 이런 것들이 시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는데 선생님 시집 속에도 그걸 대놓고 표방하지는 않지만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생명의 자리들을 보듬고 여는 시선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명 시에 대한 어떤 비판들이 요 근래 많이 쏟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생명이라는 문제를 너무 지나치게 인간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즘 웰빙, 웰빙 하는데 이런 것들도 어떻게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점에서 선생님 시집에 중요한 단서가 있는 거 같습니다. <이른 가을의 수습>이란 시가 있는데 여기 보면 김해평야에서 모를 하나 가져 와가지고 선생님 집 옥상에다 심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물주고 뭘 했더니만 이게 실실 말라 죽어 가더라는 겁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생명을 다루는 방식이고 생명을 끌어안는 것 같지만 결국 생명을 죽이는 방식입니다. 그런 한 면모를 아주 잘 보여주는 시가 아닌가 생각 되거든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선생님이 어떤 시적인  전환이라면 전환이고 생각들을 좀 갖고 계신 거 같고, 또 요즘 들어서 그런 것이 하나에 유행처럼 굳어져 가고 있어 거기에 대해서도 분명히 시적인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되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앞으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것을 말씀해 주시는 걸로 마무리를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

 

최영철 : 80년대 민중시가 주도적인 자리를 가지고 있을 시기에 저도 등단해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민중시의 그런 계보에 속하지 않았든 거 같고요. 또 생태 시들이 주류가 됐을 때도 생태시의 주역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주류를 싫어하는 거 같아요. 주류라는 게 다수가 합의하는 것인데, 다수의 합의가 최선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감시하는 게 시인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시인은 소수자죠. 소수자의 역할이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중요한 문제를 오히려 시인들이 너도 나도 모범 답안처럼 외치기 때문에 그 문제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왜곡될 수 있다는 생각도 저는 합니다. 그래서 생태시들이 가지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골격들, 정말 지당하신 말씀이죠. 말씀인데, 지당한 이야기를 시로써 또 해야 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거부감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생태나 생명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시인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얼마나 시답게 이야기 하느냐. 그러니까 정답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정답이긴 하지만 그것을 다른 식으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풀어내어야 시가 시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현재의 생태시는 방법상 문제가 있다. 이름을 가려 놓으면 비슷비슷하게 누가 쓴 건지 모르는 시들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거죠. 그건 마치 우리가 80년대에 경계했든 민중시에 대한 일종의 비판적 눈초리와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이른 가을의 수습>을 말씀하셨는데 결국 그거죠. 사람이 자연을 운영하려고 하는 거, 정말 진정한 생태주의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거든요. 두는 것인데, 자연이라는 말이 스스로 그러한 것이잖아요, 자연이 알아서 스스로 그렇게 살아가도록 두면 되는데, 인간이 그걸 가져와 꾸미려고 하는 것, 다르게 만들어보려고 하는 것이 문제지요.  인간도 그렇지 않습니까? 잘하고 있는데 옆에 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짜증나서 안합니다. 에이 안 해, 하고 던져 버리죠. 자연도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시작부분에서 말씀드린 대로 모든 가치가 동등하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미물들은 하잘 것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요, 동등하다, 그냥 똑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거든요. 지금의 잘못된 생태주의는 인간이 그걸 관장하고 운영하고 인간위주로 인간에 맞게, 사실은 인간이 더 잘 살아 보려고, 인간이 더 편안해지려고 하는 욕망이라 말이예요. 그것이 자연을 오히려 거스를 수 있다, 훼손시킬 수 있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최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제가 좀 게을러서 게으른 사람에게 맞는 가치관인데요. 인간이 모두 좀 게을러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21세기 초에 느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만 느림이라 하면  좀 좋아 보이고 게으름이라 하면 좀 나빠 보이잖아요. 그러나 자발적 게으름이 지구 생태를 위해서 굉장히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자발적인 게으름의 한 방식이 시가 될 수도 있다. 시 쓰기가 하나에 자발적 게으름의 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제 생각을, 말로만 이리면 쓸모가 없는 것이니까 올 봄부터는 실천을 좀 하려고 합니다. 김해 우리 처가 동네에 버려져 있는 산자락이 있어서, 한 300평, 거기다 밭을 일궈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보다 같이 사는 조명숙씨가 더 고생을 많이 하겠지만, 저는 옆에서 바람이나 잡고, 막걸리나 먹고 이러겠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80년대에 실천 이야기 많이 했잖습니까. 실천, 정말로 중요한 말인데 지금 21세기에 필요한 실천은 정말 자기도 하나의 자연으로, 자연의 한 조그마한 인자로, 쓰임새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해야 되고, 그것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뭐 거창한 자연 회귀가 아니고, 정말 소박한, 남에게 과시하지 않고 자연 앞에 뻐기지 않는 소박한 실천이 되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

 

남송우 : 예 감사합니다. 시간 많이 지나긴 했지만 마무리를 하면서 시인의 육성으로 이 시집 속에 있는 한 편의 시 낭송을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집의 제목으로 되어있는 호루라기를 청해도 좋겠지만 최영철 시인이 서두에서 내가 왜 시를 쓰게 됐는가? 그것을 부체의식이라고 했습니다. 그 부체의식을 노래하고 있는 게 46페이지에 있는 <자동납부 너> 입니다. 마지막 구절에 보면 평생을 지급해도 모자랄만한 내 인생의 부체. 부체의식 때문에 시를 써오셨는데 이 시도 의미가 있지만, 제가 볼 때는 최영철 시인에 이 부체의식을 가지고 시를 쓰며 우리에게 보여준 삶의 방식, 그것은 어떻게 보면 평등을 지향해 온, 어떻게 보면 아주 보잘것없는 것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애정으로 형상화 한 시들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삶의 방식을 들려주는 시편이 이 시집 제일 마지막에 있는 <서해에서> 이 시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고개 쳐들지 않고 순하게 구부러진 저 길이 희망이다. 허접한 것들 불러 모아 높이 모나게 솟지 않고 낮고 둥글게 어깨 낀 저 산이 희망이다, 라고 했습니다. 가능한 한 낮고 보잘것없는 위치와 자리를 지향하는 시인의 삶의 자세가 마지막 시편 속에 잘 드려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제일 마지막에 있는 <서해에서> 이 한편의 시 낭송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금방 시인께서 독자가 좀 낭송해주시기를 부탁하셨는데 제가 평소에 잘 알고 있는 고명자 시인이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낭송을 들여 줄 수 있지 싶습니다. 고명자 시인에게 낭송을 대신 부탁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이하 낭송)

 

 

서해에서           

           

고개 쳐들지 않고 순하게 구부러진   

저 길이 희망이다

못나고 허접한 것들 불러 모아

높이 모나게 솟지 않고

낮고 둥글게 어깨 낀

저 산이 희망이다

질풍노도로 우쭐대지 않고

가만가만 땅의 마른 입술 적시는

저 강이 희망이다

다시 솟는 찬란한 광채의 해는 너무 눈 시려

이제 막 잠깬 것들 아래로 뒤로 숨는다

우뚝한 이 산은 필시 낮은 것들을 짓밟고 온 발자국 

출렁이는 이 강은 넘지 말아야 할 사선을 넘어 온 급물살

도란도란 속삭이던 냇물을 휘저으며 온 소란한 함성

나 이제 서해로 간다

일출이 아닌 일몰로

따스한 기운 너에게 나누어주며 

느릿느릿 허리 숙여 만나는 산과 바다로 

삼보일배 눈물 떨구러 간다

거기 수런거리며 깨어나는 검은머리갈매기

나 거기 숨 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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